딸기와 중산층
마트에서 딸기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몇 개 담기지도 않은 플라스틱 한 상자가 2만4천5백 원. 딸기를 좋아하지는 않아서 “어머 비싸네. 안사면 되지 뭐” 하고 돌아서는데, 문득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사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남편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았다. “여보, 딸기 좋아하지?” “엄청 좋아하지. 나이 들수록 베리 류를 많이 먹어야 한다던데..”. “마트에 딸기가 벌써 많이 나왔어. 살까 하고 봤는데, 작은 거 한 상자에 2만 4천5백 원인 거 있지? 두 상자는 사야 식구들 먹겠던데…나는 간이 작아서 못 사겠더라. 당신 같으면 그거 두 상자 카트에 무심하게 담을 수 있겠어?” 남편은 뭘 그런 걸 주저하냐며, “그럼, 그럼 당연하지.”하며 웃었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마트에서 가격을 안 보고 딸기 두 상자를 카트에 담는 사람이 진짜 중산층이라고. 웃자고 하는 얘기겠지만, 어쩐지 정곡을 찌르는 말 같다. “당신은 중산층입니까?”라는 질문에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실제로 사회경제적 위치가 중산층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답하지 않는 경향이 높단다. “당신은 중산층입니까"라는 질문을 대신해서 "딸기 두상자를 가격 걱정 없이 살 수 있나요?" 이렇게 물으면 훨씬 더 정확한 조사가 될 것도 같다.
딸기 상자가 콩나물 한 봉지나 두부 한모인 것처럼 무심히 카트에 올려놓은 적, 생각해보니 없다. 콩나물과 두부도 국산, 중국산, 유기농인지에 따라 가격차이가 커서 사실 무심히, 툭 집어 들지 못하고 이것저것 비교하지만. 요즘 딸기 한 상자 값이면 웬만한 귤 한 상자를 살 수 있겠다. 이렇게 비교하니 정말 딸기가 비싸군! “딸기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할 만큼 딸기를 좋아하면 모를까, 딸기 대신 먹을게 얼마나 많은데, 귤, 사과… 블루베리.. 그래도 딸기, 딸기처럼 달콤하지는 않지만…이런 생각을 하며 다른 걸 집어 드는 순간 중산층이 아닌 거다. 아껴 쓰고 낭비하지 말라는 부모 말을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란 사람은 현재 가진 돈이 많아도 자기 먹겠다고 비싼 딸기 두 상자를 무심하게 집어 들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딸기 집어 들기’는 경제적인 요인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요인들도 반영된, 나름 설득력 있는 중산층 지표 같아 보인다. 믿거나 말거나.
어제저녁 남편이 마트에서 장을 봐서 들어왔다. 장바구니에서 야채와 김밥 재료들을 꺼내는데 바나나가 나오고 딸기는 없다. “여보 왜 딸기 안 샀어?” “딸기를 사려니까.. 당신한테 막 혼날 것 같고.. 그래서 블루베리와 유기농 바나나를 샀네. 하하”
혹시나 남편 덕에 중산층 등극 한번 해볼까 싶었는데, 허세 백 단인 남편도 딸기 두 상자는 무리구나. 역시나 우리는 진정한 중산층은 아닌 걸로. 치, 블루베리에 유기농 바나나를 섞어서, 요구르트를 얹어 먹어도 얼마나 맛있는데... 난 원래 딸기 안 좋아해. 딸기가 잘못인 것처럼 투덜대 본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딸기가 먹고 싶지?
ps. 생각해보니 돌아가신 시아버지는 딸기 두 팩이 아니라 세 팩도 가능하셨던 분이었다. 남편의 허세는 시아버지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