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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Apr 25. 2022

시아버지가 노트북을 산 이유

어머니가 외롭다

지난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맞는 봄이다. 혼자되신 어머니는 외롭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곱게 자라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나이도 살이나 많은, 얼굴만 잘생기고 우유부단한 시아버지를 만나 결혼하면서 인생이 꼬여버린 우리 어머니.


은퇴한 이후에도 주유소 운영하시면 거의 팔십까지 일하셨고 아버지 덕분에 어머니도 같이 고생하셨다. 시아버지는 다정하지만 세심한 분은 아니었고, 한국 남자 평균 허세를 뻥튀기 기계에 넣고 튀긴 만큼의 허세꾼으로 새것과 신식, 비싼 것을 좋아하셨다. 자동차 네비게이션이라는 문물이 처음 나왔을 , 백오십만 원을 주고 구입해 자동차에 달고 좋아하신 .  당시 시아버지가 운전해서 다니는 곳은 주유소농협사우나.  감고도 다니실  길에 네비게이션은  전혀 상관없는 물건이었고 비싼 물건이라 도둑맞을까 밤에 떼어 놓았다가 낮에 다시 달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덤이었다.


내가 쓰는 삼성 노트북은 5 전쯤 시아버지가 “너나 가져다 쓰라면서 주신 물건. 그때 시아버지 연세가 팔십 대였고 노트북의 쓸모란 고스톱을 치는  외에는 없었지만 고등학생이던 손주의 “할아버지 집에  컴퓨터가 없냐(그래서 게임을   없냐)” 철없는 소리에 당장에 대리점에 가셔서 구입하셨다. “ 가게에서 무조건 제일 비싼  보여 달래서 샀다.”자랑하셨다.


손주 맡아 키워주실 때도 최고급 분유에 최고급 기저귀, 신상 물건으로 채워주셨으니 시아버지 허세 덕분에 손주가 호강한  인정. 남편 어릴   형편이  어려웠다는데, 동네에 가죽 야구 글로브 가진 아이는 남편밖에 없었다는  보면 시아버지 허세는 역사가 깊다. 그러고 보니, 당신  내려고 허세를 부린 것보다 자식들 위한 허세가 대부분이었구나.     


그렇다고 해도 시아버지는 내 눈에는 좋은 남편일 수 없는 분이었건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이 살지 않은 며느리의 관점일 뿐이다. 설에 시댁에 갔을 때, 집이 너무 썰렁한 것 같아 “어머니 기름 아끼지 말고 보일러 쌔게 돌리세요.” 했더니 아버지 찬 땅에 묻혀 있는데, 어떻게 따순 방에서 잘 수 있냐고 하신다. 아침에는 아버지 안 계시니 세배도 안 받겠다고 하셔서 억지로 세배를 드렸는데 눈물을 펑펑 흘리셨다. “아버지가 보고 싶구나”’ 그러시면서.


부부 사이의 일은 당사자들만 아는 끈끈한 뭔가가 있는 법이기도 하고 아무리 미우나 고우나 오십 년을 함께 해온 배우자 상실의 깊이를 내가 어떻게 짐작할  있겠나. 일부러 “어머니가 아버지를 그렇게 사랑했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하며 호호거렸는데, 어머니는 진지하게 사랑했지,라고 하셨다. 남편은 옆에서 듣다가 당신도  없으면 어머니처럼 힘들 테니 나한테 잘해,라고 엉뚱한 말을 했다. 아버지가 잘해주셨으니 어머니가 저리 슬퍼하지, 그러니까 여보가  잘해야지라고 응수하는 . 나이 오십 넘어서 서로 잘하라고 잔소리하는 우리 부부는 아직 젊은 걸까, 철이 없는 걸까?


남편은 나이 들수록 시아버지를 닮아간다. 내가 시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얼굴이랑 점점 비슷해져서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어느 날 자는 모습을 보니, 남편이 아니라 시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시는 것 같았다. 내 얼굴도 점점 돌아가신 엄마와 비슷해지는 것 같은데, 언제 남편에게 꼭 물어봐야겠다. 나 자는 모습도 우리 엄마랑 닮았냐고. 하긴 나는 시아버지 주무시는 모습을 종종 보았지만, 남편은 울 엄마 잠든 모습을 본 적도 없으니 알 리가 없겠다.  


그리움은 그리워해야지 어쩔 수 없는 것. 그렇지만 어머니가 그리움 때문에 당신 삶의 활력까지 잃어버리지 않으시면 좋겠다. 허세 백 단인 시아버지가 원하는 어머니의 여생은 쓸쓸함이 아닐 테니까. ‘못 먹어도 고우’가 인생의 좌우명 같았던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가 외로움에 굴복하지 않고 고우를 외치시길 바라실 것이 분명하다.


시아버지의 쩌렁쩌렁하신 목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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