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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Jan 06. 2023

오타루에서 만난 시간

영화 윤희에게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지는 때..” 영화 ‘윤희에게’의 윤희가 조용히 읊조리는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그런  때가 있지. 애써 용기 내지 않아도, 용기가 나는 때. 더 없는 확신이 들어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게 되는 순간. 그런데 그런 확신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한 겨울 삿뽀르에서 기차를 타고 오타루로 간 적이 있다. 도시를 빠져나온 오타루행 기차는 어느 순간부터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철로와 바다가 얼마나 가까운지 기차가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듯 느껴졌다. 백설기 가루처럼 포실포실 내리는 눈은 바다로 스며들고 기차 창문에 달라붙어 녹았다. 기차의 속도에 맞춰 2배속, 3배속으로 뒤로 물러가는 눈 내리는 바다 풍경을 나는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붙이고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초월적 감정을 잠깐 느끼면서, 이 순간을 내가 영원히 기억하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순간이 있다. ‘이건 내가 언젠가 경험해 본 것 같아’하는 데자뷔의 순간이 있다면, 이 장면은 내가 평생 동안 반복하여 생각하겠구나 하는 미래를 예지 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스물몇 살 때, 영어학원에서 만난 띠 동갑 요가 선생님과 한참 동안 친구처럼 지낸 적이 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유럽 배낭여행도 혼자 갔고, 그녀를 따라 요가를 처음 배웠고, 그녀로부터 성취하는 사람의 꾸준함을 보았다. 겨울이 끝나고 햇살 끝으로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지던 어느 오후, 상계동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에서 그냥 햇볕을 쪼이며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었던 기억이 그랬다. 서둘러야 할 일도, 미래에 관해 불안해할 필요도 없는 (내 당시 상태와는 정반대로) 그냥 편하고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아무 이유도 없이 먼 미래까지, 당시의 내게 먼 미래란 지금의 내 나이 정도였을 것이겠지만, 그날 오후가 기억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언니와는 십 수년 전에 인연이 끊어졌지만 어느 날 문득 그 놀이터에서 앉아 있던 순간이 떠오르고, 걱정 없고, 한갓지고, 이유 없이 충만함 기분에 젖게 된다.


어떤 관계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과거형인  관계에서 빚어진 어떤 정동이 마음에 자국을 남겨서 현재에 영향을 준다. 관계는 순간처럼 지나가는 장면도 아니므로 훨씬 진한 흔적을 남길 것이 분명하다. 영화 ‘윤희에게 보면서, 과거의 일이 현재까지 어떻게 진행될  있는지 많이 생각했다. 마침  영화의 배경이, 내게 기차 여행에서 자연적 아름다움의 어떤 절정을 맛보게   오타루여서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윤희와 쥰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느끼던 순간, 쥰이 윤희를 갑자기 떠나던 , 윤희가 정신병원에 감금된 ,  모든 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지만  둘에게  시간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것처럼 보였다. 과거에  무엇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과거지만 과거가 아닌, 그렇다고 현재도 아닌 무엇이 되는  같다. 순간 이동하듯 그곳에 머물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적 감정은  아니다. 윤희와 쥰은 오랜 그리움 끝에 오타루에서 재회하지만, 정면으로 응시하지도 부둥켜 안지도, 울지도 못하고, 반갑다읊조리며 눈물만 흘린다.


윤희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삶에 더 용기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할 수 없어도, 그리움의 힘만으로 용기를 내볼 용기를 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쥰과 윤희가 다정하게 서로 한번 안아주기라도 할 것이지. 나는 못내 아쉽기만 했다.      


오타루에서의 오후 3시, 금세 저녁이 내려앉기 시작한 오타루 역 앞은 온통 하얀 눈이었다. 길 옆으로 치워진 눈 탓에 좁아진 인도에서 사람들은 살금 거리며 줄지어 걸었다. 먼 곳에서 눈을 찾아 오타루에 온 사람들이 눈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길 옆으로 치워진 눈이 내 어깨 높이의 언덕이 되어 쌓여 있다. 봄이 될 때까지 언덕은 얼마나 더 높아질까? 눈 언덕이 다 녹아야 진짜 봄이 되겠지. 구글맵은 예약한 호텔까지 2킬로라고 알려줬고 선뜻 걷기도 택시를 타기도 애매한 그 거리 위로 여전히 백설기 가루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오타루의 겨울은 그렇게 흰 눈으로 시작해서 흰 눈으로 마중하는 도시다. 쥰과 함께 사는 늙은 고모는 겨우내 말한다 “도대체 눈이 언제 그치려나.” 그렇게 말한다고 눈이 그치는 것도 아니고, 눈은 봄이 되어야 멈춘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말함으로써 적어도 막막함을 조금 녹여 보려는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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