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
편성준 작가의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둘 다 논다고, 정말? 그래도 먹고살 수 있다고?” 부부가 같이 벌어도 부족한 요즘, 둘 다 놀고 있다고 자랑(?)까지 하니 그 실체가 몹시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 같은 질문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던지 그의 아내 윤혜자 씨가 질문에 답을 하는 책을 썼다.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 (몽스북)
윤혜자 작가는 어느 날 페이스북에 밥 짓고, 밥 먹는, 식사일기를 1년 동안 매일 쓰겠다고 선언했다. 매일 밥 짓는 것도 내겐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는데, 그 이야기를 매일 글로 쓰겠단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그걸 해냈다.
남의 부부 잘 놀고, 잘 먹는 얘기를 듣고 있는데, 이상하게 내 배가 편안해지고 든든해진다. 윤혜자 작가가 만든 음식들은 하나 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나도 은퇴하면 이 부부처럼 잘 놀고, 잘 먹고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얼마 전 육아 휴직 후에 복직한 후배와 점심을 먹었다. 정신없어서 아이 방과 후 프로그램 신청 마감도 놓치고 말았다고 한숨을 지었다. 온종일 ‘남의 일’을 하느라 내 삶에 중요한 것들은 다 미루고, 까먹고, 대강하고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다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일인데, 정작 잘 먹지도, 잘 살지도 못하는 것 같 불안해지기 일쑤다. 그 ‘남의 일’이 보람차지도 않다고 느낄 때, 종일 돌봄 교실에서 엄마를 기다릴 아이에게 더 미안하다. 나도 그런 시간을 보냈고, 그러는 사이 아이는 훌쩍 커서 성인이 되었다. “괜찮아. 일하는 엄마들 아이는 굴러다니는 돌처럼 좀 그래. 그만큼 단단해질 확률도 있어.” 위로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늘 위안하며 살았다고 말해 주었다.
윤혜자 작가의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잘 산다는 것은 막연한 관념이 아니라 매일 밥 한 끼 정성껏 차려 먹는 일이겠구나. 거창한 밥상을 차리려고 하지 말고 고슬고슬한 밥 한 그릇에 된장국을 맛있게 끓여야겠구나.
엄마와 나는 밤참을 먹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대학 입학으로 집을 떠나기 전까지, 늦은 밤에 개 다리 소반에 마주 앉아 엄마와 나는 밤참을 먹었다. 위장에 좋을 리 없고, 숙면에도 좋을 리 없겠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그 시간이 참으로 귀하다. 누룽지를 끓여 김장김치나 마른김에 간장을 찍어 몇 숟가락씩 먹던 밥. 사춘기 이후에는 다이어트를 한다며 종종 밤참을 거부했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꼬임에 넘어가 한 숟가락만 하다가 같이 먹었다. 윤혜자 작가의 밥 이야기를 읽다 보니 돌아기신 엄마와 먹던 밥이 생각났다. 살쪄도 괜찮고 위장이 늘어나도 괜찮으니 엄마랑 마주 앉아 밤참 한 번 더 먹을 수 있다면...
동네에 집밥을 함께 먹는 친구들이 있다. 저녁이나 먹으러 오라 해서 갔더니 식탁 위에 조기찌개가 있었다. 엄마가 해주던 조기찌개 먹고 싶다는 내 말을 기억했다 솜씨를 내준 친구. 나는 주로 얻어먹는 쪽이지만, 올봄에는 봄나물 한 상 차려 친구들을 꼭 초대하고 싶다. 윤혜자 작가처럼 소박한 밥상을 나누고 싶어졌다. 그리고 자랑하고 싶다. #우리 식구도 잘 먹었습니다. #친구들도 잘 먹었습니다 #이웃과도 잘 먹었습니다. 윤혜자 작가의 책을 읽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이런 자랑을 한 번씩 한다면, 잘 먹고, 잘 놀기 운동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정말 필요한 운동이 아닌가!) 그때는 윤혜자 작가를 잘 먹고 잘 놀기 운동본부의 본부장으로 추대해야지.
『소행성 책 쓰기 워크숍』 신청을 망설이며 윤혜자 작가에게 카톡을 보낸 적이 있다. 제가 쓰려는 글이 너무 개인적이고 소소한데, 그런 글도 책이 될까요? 그녀는 단호하게 한 줄로 답장을 보냈고 나는 바로 신청서를 냈다. “모든 글은 다 개인적인 글입니다.” 그러니 이 지극히 개인적인, 남의 ‘집밥’ 이야기에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추천사를 쓴 요조의 말처럼 “매일이라는 난관을 뚫고”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