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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Apr 06. 2022

숲길을 걸어 퇴근하는 삶

숲길을 걸어 퇴근하는 삶


코로나 이후 일주일에 두 번, 집 근처 스마트워크 센터에서 일한다. 원격근무에 필요한 인프라와 독립된 사무 공간을 쓸 수 있어 굳이 을지로에 있는 사무실까지 가지 않아도 모든 일처리가 가능하다.


스마트워크를 하는 날이면 우주의 물리법칙이라도 달라진 것처럼 하루가 길어진다. 실제 2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었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치장 없는 편한 옷과 운동화를 신고,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그 가벼움이 더 큰 여유를 느끼게 하는 것 같다. 퇴근 후에는 빨리 밥 먹고, 씻고,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원격 근무 덕에 저녁 산책이나 동네 모임 같은 곳을 기웃거릴 여유가 생겼다. 일주일에 한두 번 스마트 워크 센터가 아니라 아예 ‘스마트’하게, 회사 인근에 살며 출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는데, 서울 중심가의 집값을 생각하면 꿈도 꿀 수 없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원격 근무로 출근 시간대가 변하니 만나는 풍경도 달라졌다. 마을버스 정류소 앞은 등에 곰 한 마리를 업고 나온 피곤한 직장인들 대신에 앙증맞은 가방을 멘 개나리꽃 같은 꼬맹이들이 서있다. 아이들을 배웅 나온 어른들은 유치원차가 출발한 후에도 한참 동안 애틋한 눈길로 손을 흔들며 서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 키우던 시절이 떠오르는데, 출퇴근한다는 핑계로 그런 눈길로 아이를 키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한테 바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말을 배울 무렵 아이가 말끝에 엉뚱하게 “바빠서”라는 표현을 붙여 웃기면서도 눈물이 났다. 조미 김과 계란 프라이가 아이를 키웠다고 하던 어떤 직장 맘의 농담에 마음이 짠해진 적이 있다. 나도 그랬다. 계란 하나로 부실한 밥상의 미안함을 대신해 보려고 아침마다 계란 프라이를 했다. 이왕이면 단정하고 예쁘게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언제나 눌어붙거나 타거나……. 그게 또 뭐라고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계란 프라이가 꼭 나사는 모습 같아 한없이 슬퍼지곤 했다.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 2년 동안 미국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아침저녁을 천천히 만들어 먹고, 아이 도시락을 싸고, 스쿨버스 정류소까지 아이를 배웅했다. 그 시절 계란을 부치면, 언제나 너무 쉽게 써니 사이드 업(Sunny Side Up Egg) 프라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미국 계란이 특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유의 문제였다. 팬이 충분히 달궈지길 기다렸다 기름을 두르고, 조심스럽게 계란을 반으로 깨서, 가장자리가 지글지글 익을 때를 적당한 기다려 들어내야 하는, 그 시간들이 출퇴근하던 내게 없었던 거였다. 예열도 안 된 팬에 계란을 터뜨려놓고, 그 잠깐 사이에 머리를 말리고, 자는 아이를 깨우고, 옷을 차려입으려고 했으니 계란은 늘 타거나, 눌어붙었던 거였다. 계란 프라이 하나 천천히 만들지 못하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엄마는 아이가 얼마나 부대껴하는지도 몰랐다.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장면을 보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최웅(최우식) 몸살을 앓고 일어나 엄마 무릎을 베고 누었을 , 엄마가 아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들 언제 이렇게 많이 컸어? 혼자  이렇게 많이 컸어?” 혼잣말하듯 하는  말에 웅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렇게 큰지 한참 되었어.”


나도 가끔 웅이 엄마처럼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하곤 했다. 아들 언제 이렇게 커버렸어. 정신없이 직장 생활하던 사이에 아이는 혼자서 훌쩍 커버렸다. 그렇게 혼자 쑥 커버려 기타리스트의 꿈을 키운다. 기타 치는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하얗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 아이의 마른 손을 한번 잡아줄 뿐이다.


세탁기가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말이 있다. 그 무엇보다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혁명적으로 줄인 것이 세탁기의 발명이었고, 그 늘어난 시간 덕분에 여성 운동의 물줄기가 터졌다는 말이다. 코로나로 가속화된 원격 근무 덕분에 노동하는 사람들이 삶이 혁명적으로 바뀔 수는 없을까? 산과 들, 바다 가까운 곳에서 살면 일주일에 한두 번 대도시로 출근하는 삶은 불가능할까? 코로나가 정점을 찍으며 곧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기대가 커진다. 해외여행 후의 자가 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벌써부터 여행사 예약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뉴스들 가운데에서도 재택근무가 사라져 주 5일 출퇴근할 일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고 한다.


주 5일제가 처음 시작될 때 생산성이 떨어진다거나 나태해진다며 반대하던 여러 논리들이 기억난다. 몇 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격주로 토요일을 쉬다가 결국 주 5일제가 시행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경제가 나빠졌다거나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토요일까지 회사에 나갈 수 있었는지 ‘전설의 고향’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세상은 그렇게 한번 새로운 물꼬가 터지면 그 방향으로 급속히 변화하는 것 같다.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업무 문화는 그래서 코로나 이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직장 문화로 자리 잡지 않을까.


스마트 워크 센터 근무를 마치고 숲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도로로 걸으면 10분이면 되는 거리를 일부러 과수원을 끼고  둘레길을 에둘러 1시간을 걸었다. 살구꽃은  사이 활짝 펴서 분홍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옆으로 연분홍의 매화가 흐드러졌다. 진달래꽃이 아기 주먹 같은 분홍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겨울 동안 애쓴 모든 생명들에게 팡파르라도 울려주고 싶은  같다. 작은 잡목 가지에 움트기 시작한 연두색 새순들이 아기 새의 부리처럼 뾰족하다.  모습이 너무 당당하여 녀석들에게 거수경례라도 하고 싶다. 노란색 꽃이  생강나무 가지를 조금 잘라서 코끝에 대어 보니 겨우내 마신 생강청 맛이 느껴졌다. 과수원의 농막에서 사는 할아버지가 매화나무 앞에서 홀린  서있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갑소, 이렇게 말하고 싶은 눈치다.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고 하던데, 모든 은 첫 봄이 아닐까.


스마트 워크 센터 덕분에 호사를 누린다. 3호선 지하철 인파에 끼어 흐리멍덩한 눈으로 스마트폰이나 보고 있을 시간에 숲길을 걷는 호사라니. 숲의 신선한 꽃향기가 내 몸의 세포들 사이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느낌이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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