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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Jul 11. 2022

제9회 브런치 북 대상에서 출간까지

어떤 호소의 말들

창비출판사에서 보낸 저자 증정본 스무 권이 담긴 택배가 도착했다. 목요일(7. 8.)부터 서점에서 판매가 시작되었지만 실물 책은 택배를 받고 나도 처음 보았다. 보라색 띠지에 애정 하는 김혼비 작가의 추천사가 반짝였다. “그동안 추천사에 써본 적 없는 단어이지만 이 책에 만큼은 감히 ‘필독서’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지난해 봄과 여름, 뭘 쓸지 정확히 정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막연히 책 한 권 써보겠다는 생각만 붙잡고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쓰면서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알아가는 맛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시행착오도 컸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런 글은 써서 뭐하나’ 같은 자기 검열의 말들이 오락 기계의 두더지들처럼 고개를 쓰윽 내밀었다. 자칫 방심하면 삽시간에 두더지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쳐들고, 그러면 게임 오버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인정사정없이 나무망치로 그것들을 내려치며 봄과 여름을 보냈다.


초고의 초고를 겨우 완성했을 즈음 마침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가능성도 없는데, 시간 낭비하는 것 같아, 미루고 미루다 마감 하루 전날 겨우 열몇 편의 글을 골라 브런치 북으로 엮어 응모에 성공했다. 생각보다 절차가 너무 간단해서 놀랐다.


그리고 훌쩍 시간이 지나고, 응모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 부산행 열차 안에서 수상 소식을 알리는 이메일을 받았다.     


카카오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홍보 영상에 담을 짧은 인터뷰를 했을 때, 수상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고 나는 그것은 한그루의 큰 살구나무와 같았다고 대답했다.


어릴  살구를 먹고 나면  마당에 살구씨를 심었어요. 살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봄에 살구꽃이 특별히 예쁘잖아요. 딱히 살구나무로 자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기보다는 작은 살구씨가 커다란 살구나무로 자라는 상상을 하는 것이 좋았던 거죠


어른이 된 후에는 살구씨를 심는 마음으로 조용히 글을 썼다. 몰래 심어두면 언젠가 하나쯤은 싹이 틀지도 몰라, 하는 마음도 함께 심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서 오래전 심었던 살구씨가 아주 큰 살구나무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대상 수상 이메일을 받고 기차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감격에 겨워 살짝 눈물을 흘렸더랬다.  그러나 그런 황홀한 기쁨 뒤에는 ‘퇴고’라는 거대한 벽을 만났다. 내 체력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것처럼 높고 가파른 산 앞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편집자와 약속한 마감 날짜는 재깍재깍 다가오는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책상 앞으로 다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말 내내 방구석에 틀어 박혀 낑낑거렸지만, 월요일 아침에 남는 건 고작 한두 문장. 어느 날은 온종일 쓴 글인데 한 문장도 마음에 들지 않아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때의 막막함과 불안감이라니..


책 상자를 열면서 이런저런 상념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몰려왔다. 남편은 자기 책이 들어 있는 상자를 ‘언박싱’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계속 묻는데 여러 감정이 복잡해서 한껏 기쁨을 표현하지 못했다. 브런치 대상을 받고 출판사가 창비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총량의 기쁨의 상당량을 당겨 쓴 것 같다고만 얘기했다. 사실은 즐거움만큼이나 부담감이 마음에서 출렁였다. 억울함을 호소했던 진정인들의 이야기를 감상적으로 구현한 것은 아닌지, 동료 조사관들은 나의 글을 어떻게 읽고 느낄지, 책이 안 팔려 재고가 계속 쌓이면 면구하여 어쩌나. 퇴고하면서 미처 보지 못한 실수나 오류는 없을지.. 박스에서 책을 꺼내 넘겨 보는데 이런 걱정들이 기쁨을 앞질렀다.       


친구나 지인 중에 책을 써낸 이들이 참 많다. 그들은 책이 출간되면 저자 서명을 해서 한 권씩 꼭 챙겨주었다. 나는 그 책들을 당연한 듯 받아 챙겼다. 잘 읽었다고 쉽게 덕담이나 하면서 페이스북이고 브런치고 짧은 서평 한 줄 올릴 줄도 몰랐다. 막상 내 책이란 걸 써보고 나니 그 일이 얼마나 염치없는 짓이었는지 알게 되면서 뒤늦게 부끄럽고 민망하다.


다음 주부터 제9회 브런치 북 대상 수상작들의 특별 전시회가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시작된다. 전국 교보문고에서도 대상 수상작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이벤트도 열어 준단다. 하루에도 수십 권의 새책이 출간되는 출판 시장에서 이런 든든한 후원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동네 지인들과 함께 출판 기념회(를 빙자한 맥주 파티)가, 몇 개의 북 콘서트와 강의도 잡혀 있다. 운 좋게 상을 받고, 멋진 편집자를 만나 책이 될 수 있었던 ‘나의 다정 기록’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하다.                


브런치 책방에 ‘어떤 호소의 말들’을 등록하려고 했더니 3개월 동안 업로드 한 글의 편수가 적어서 안 된다는 메시지가 떴다. 책 한 권 낸 사람이 아니라 평생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사실은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조사관의 일의 대부분은 책상에 앉아 보고서를 쓰는 일로 점철되어 있다. 종류는 다르지만 온종일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집에 오면 다른 글을 쓸 엄두가 잘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책상 앞으로 나를 이끈 건 매일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작은 불씨 같은 욕망이었다. 그런데 그 불씨가 책 한 권과 함께 다 꺼져버린 것인가.


쓰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책 한 권 낸 작가로 남을 것인가.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브런치에 새로운 방을 하나 만들어야겠다. 매일 쓰는 방. 그 방에서 작은 불씨를 다시 살려야지. 이야기는 언제나 매일 쓰는 글 속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지.


https://brunch.co.kr/@brunch/306


어떤 호소의 말들 - YES24

돌아온 우편물.. 인권 조사관은 통곡했다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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