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아는 변호사 중에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책부터 찾아보는 분이 있다. 그는 수영법도 책으로 배우는 분이다.(물론 유튜브가 없던 시절이었다) 수영복도 구입하기 전에 수영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사서 밑줄을 쫙쫙 치며 영법을 익히는 것이다. 음에서 숨을 참고, 파에서 머리를 물밖로 내밀기, 팔을 내 뻗을 때는 겨드랑이 안쪽이 살짝 귀에 스쳐야 한다, 등을 암기하며 허공에다 팔을 휘젓지 않았을까. 나는 그처럼 책으로 모든 것을 배우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지만,
글쓰기만큼은 책으로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이십 대에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 쓰기'를 시작으로(사실 이 책을 작법서는 아니다) 글쓰기를 소개하는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모았다'. 글쓰기 책을 모으면서 알게 된 것은 글쓰기의 비법이란 사실 별거(?) 아니라는 것이다. "계속 써라, 꾸준히, 성실히 써라" 이 간단한 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 (나탈리 골드버그)'거나,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 그리듯 쓰라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거나, 스스로를 믿고 매혹되어 쓰라(글쓰기의 유혹, 브랜다 유랜드)는 것이다. 대단한 작법을 소개하는 듯 하지만, 일단은 우선 계속 쓰라는 것, 결국은 쓰지 않고 쓸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 선생들이 알려주는 대로 착실히, 꾸준히 써봤을까? 그럴 리가. 시도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글쓰기에 가장 어려운 것은 계속, 꾸준히, 착실히 쓰는 일이라서 웬만하면 그 뻔한(?) 비법을 따르기 어렵다. 그렇다고, 글쓰기 책을 사고, 눈을 반짝이며 읽고(그리고 별로 쓰지 않고), 다시 새로운 글쓰기 책을 사서 믿줄을 긋는 스스로에게 실망을 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렇지 않다. 스무 살부터, 어쩌면 아홉 살 소녀 시절부터 글쓰기를 계속 부여잡고,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쓰지 않아도 쓰려고 하는 내가 좋았다고 말해야 할까? 밥벌이 아닌 순전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막연하지만 부여잡고 꿈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래서 꿈꾸고, 열망하는 동안은 계속 실패해도 좋았다. 실패한다는 것은 내가 계속 열망한다는 증거 같았다. 새벽에 글을 쓰기로 작심하고 삼일도 지키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면 뭐 어떤가. 매일 밤 9시에 무심히 책상 앞으로 걸어가겠다고 다짐하고 오늘도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또 어떤까. 혼내는 선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고서처럼 마감이 있는 글도 어차피 아니니까. 다시 내일부터 새벽에 일어나기, 매일 30분씩 쓰기 같은 계획을 세우면 되니까.
신비한 것은 성공의 시간만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시간도 쌓인다는 거였다. 지키지 못한 작심삼일 동안 쓴 글도 시간과 함께 몰스킨 노트에, 노트북 글쓰기 폴더에 수북수북 쌓여갔다. 조금씩 쓰다 만 글이, 도대체 알 수 없는 마음이, 자괴감이, 어느 날의 정념이, 삶의 무미건조함이, 초라한 한숨이, 삶의 나태함이 거기에 다 있었다.
글쓰기란 어쩌면 실패가 없는 도전이 아닐까. 쓰려는 그 마음, 서점 신간 매대 위 글쓰기 책을 보면서 두근대는 마음, 그 자체만으로 충분할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젓한 책 한 권의 출간도 중요하지만 매일 거울을 닦듯 마음을 닦는 글 한편 쓰려는 그 마음이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어쩌다 운 좋게 책 한 권을 출간하게 되었지만, 오늘도 나는 서점의 신간 코너를 어슬렁 거리며 글쓰기 책을 찾는다.
그러니 글쓰기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설령 글을 쓰지 않더라도 무조건 글쓰기 책 한 권씩 사서 모을 일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책을 읽다가, 슬그머니 노트를 꺼내거나, 노트북의 빈 화면 앞에서 잠시 상념에 젖었다면, 설령 글 한편 못 썼더라도 책 한 권 값은 이미 충분히, 넘치도록 한 것이 아닐는지.
그래서 오늘 또 한 권의 글쓰기 책을 읽었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북 바이 북, 2022. 7)
한차례 폭우가 지나가고, 매미가 다시 울기 시작하고, 끈끈이주걱 같이 공기가 몸에 달라붙는 이 밤,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끈 이 책은 편성준 작가처럼 ‘살짝 웃기다’. 실없이 웃게 만들고, 밑줄을 빡빡 긋게 만드는 편성준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글쓰기라는 세계의 큰 그림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이 책을 글쓰기 지도책처럼 읽었다. 지도책을 한번 보고 난 후 길을 떠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글 쓰기를 욕망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지도삼아 자신에게 맞는 글쓰기 여행 계획을 세워 보면 좋겠다.
글쓰기 책도 시절 인연이 따로 있다. 은유의 ‘글쓰기 최전선’을 읽고 나는 고등학교 교지에 글을 쓰던 이후에 처음으로 공개적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의 유혹’ 덕분에 강경 외갓집에 머물던 어린 시절, 이제는 말라버린 시골 개울과 홍수, 달밤에 엄마와의 산책 같은 이미지들이 떠올랐고 이미지를 그대로 사진 찍듯 옮기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인 ‘쓰기의 감각’에서 이런 건 써서 뭐하나’ 하는 자기 검열과 자괴감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비로소 찾았다. ‘살짝 웃기는 글'의 유의미는 편성준 작가 책을 통해 이해했다.
나의 첫 책 ‘어떤 호소의 말들’을 읽다가 중간중간 흐흐흐 웃었다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순전히 이 책의 저자인 편성준 작가의 지도편달 덕분이다. 글쓰기 한번 해볼까, 궁리하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글쓰기는 글쓰기 책을 읽고, 모으는 것에서 싹이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