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동안 인권위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마음에 켜켜이 쌓인, 미안하고, 후회되고, 답답하고, 화나는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이야기가 가득 차서 마음이 무겁고 괴로울 때마다 대나무 숲에 대고 말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다!!! 그래도 남은 이야기들이 많아 글을 써야 했던 것 같다. 글로 써지지 않았다면,
홀연히 연기처럼 사라졌을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어쩌다 한 권의 책이 되어 눈 반짝이는 이들에게 가닿고 있다. 고맙고 신기하다. 그래서, 달랑 책 한 권 쓴 주제에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마음에 작가들이 쓰기의 고통을 무릅쓰고 책을 계속 쓰는 건가?
‘어떤 호소의 말들’ 출간 이후 다양한 곳에서 북 토크라는 것을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다 써놓고, 왜 북 토크 같은 걸 할까? 늘 궁금했는데, 해 보니 알겠다. 책은 책이고 말은 말이니까, 책에 나온 이야기일망정 다시 듣고 싶고, 책 너머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그런 거였다. 인권에 대해, 인권위 조사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고맙고, 특별해서 저녁이나 주말에 오는 요청은 모두 응하고 있다. 몸은 좀 피곤하지만, 덕분에 재미난 경험도 많이 한다.
얼마 전 ** 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초대를 받고 2시간 강연을 했다. 법원 건물은 들어가기도 전에 사람을 좀 졸게 한다. 계단 아래서 여전히 불이 훤한 건물을 올려다보는데, 녀석이 “눈 깔아” 이러면서 째려보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어깨를 쫙 펴야 해서, 감사함을 듬뿍 담아 말문을 열었다. “살면서 판사를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떼거지로 있는 판사들은 처음입니다.” ‘떼거지’라는 말에 2초 정도 정적이 흐르고, 아, 이런 농담이 안 통하는구나, 망했다, 하는 사이, 하하 웃음소리가 들렸다. 2시간의 강연을 무사히 마치고 생각했다. ‘오늘 이후에는 어떤 이들 앞에서도 강연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휴!’
“조금 슬프고, 이상하고, 귀엽기도 한 모순된 존재인 우리의 모습 안에서 인권을 말하고 싶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웅크린 말들’에 작은 스피커 하나 연결해 세상에 조용히 울려 퍼지게 하고 싶었다”라고 책의 프롤로그에 썼는데, 웅크린 말들이 아닌 나의 목소리에 스피커를 연결하는 건 아닌지 걱정과 불안이 쌓이는 밤이다. 북 토크를 나는 좋아한다고 주문을 걸고 싶어서... 몇 문장을 쓴다. 나는 북 토크를 사랑한다. 좋아한다, 좋아한다. 좋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