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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Jun 22. 2020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나이 듦에 대하여 1

배우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로 10년째 투병 중이라고 한다. 딸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니 병세의 심각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가장 먼저 시간 개념이 사라지고 그다음은 공간 개념,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가족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리베카 솔릿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자신의 어머니의 증상을 페이지가 뜯겨나간 책에 비유했다. 페이지가 뜯겨 나간 책은 스토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거나 뭉텅뭉텅 사라진다.


인터넷 검색으로 윤정희 씨 사진을 찾아보았다. 성형은 물론이고 조명이나 분장술, 사후 사진 보정 기술이 없던 시절의 배우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새삼 놀랍다. 머리숱이 적어지고, 무너져 내린 얼굴선과 주름이 가득한 처진 볼이 가릴 수 없는, 형형한 눈빛, 서늘한 콧날, 장밋빛 뺨은 그가 한 때 얼마나 아름다운 얼굴이었는지 말해준다.

언제부터였을까? 늙은 얼굴에서 젊음, 환희, 교태, 출렁임 같은 아름다움을 알아보게 된 것이. 그 아름다움에 쓸쓸하기도 하고 다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나이를 들어가고 있다는 증표일 것이다.


나이 듦이 두려울 때도 있었지만,  한편 정말 대단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단하고 하찮은 매일을 꿋꿋하게 살아 내며, “죽거나 죽이지도 않고" 또 여전히 다정한 말과 얼굴을 한 채로 무사히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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