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노인요양시설이 있다고 한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요양원이 많을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가 훨씬 인기라고 했다. 직장 다니는 자식들 오가기 편한 곳이어야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갈 수 있어서 그렇단다.
동네 언니가 7월부터 노인요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언니가 요양보호사로 일을 시작하고 나니 인근 상가 건물의 노인요양원 간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주 다니는 상가 건물에도 노인요양원이 세 개나 있었다. 자동차 소음과 매연 때문에 창을 열기도 어려운 상가 건물에 자리 잡은 그곳에서 '요양'이 가능한 걸까?
“요양원에서 치매 걸린 할머니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 줄 아니?” 얼마 전 언니를 만났는데 내게 대뜸 물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집에 갈 거야”
치매 걸린 할머니들은 잠잘 시간에 부스스 일어나, 집에 간다며 보따리를 싼다고 했다. 버젓한 보자기가 있을 리 없으니 기저귀며, 옷가지 같은 걸 네모 반듯하게 개켜서 홑이불로 보따리를 싼다. 아이들이, 남편이 기다는 집에 가야 한다고.
리베카 솔닛은 알츠 하이머를 앓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그녀의 기억이 '드문 드문 페이지가 찢겨 나간 책' 같다고 표현했다. 치매 할머니들의 기억은 드문드문이 아니라 아예 후반부 이야기 전체가 사라진 책 같은 걸까?
할머니들이 싸놓은 보따리는 할머니의 성정을 말하는 듯하다고 언니가 말했다. "네 모서리 각을 딱 맞춰서 보따리를 얼마나 예쁘게 싸놓으시는지 몰라. 평생 집안에 물건 하나 흐트러지지 않게 해 놓고 사셨을 분 같았어" 지금은 밤이니 푹 자고 아침에 집에 가셔야 한다고 알려드리면 할머니들은 대개가 순하게 다시 침대로 돌아간다. “할머니가 왜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줄 알아? 밥을 해야 한대. 아이들도 먹고, 남편도 먹여야 한다고” 아휴, 나는 그 대목에서 공연히 울컷 눈이 이 낫다. 평생 때 맞춰 얼마나 많은 밥을 했으면 치매에 걸려서도 밥 걱정을 할까?
여자들에게 밥은 그런 것일까? 교사로 일하며 아이 둘을 키운 친구 K에게 밥은 미안함이었다. K는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꼭 국하나 반찬 한두 개 만들어 놓고 출근한다. 남편은 아이들 버릇 나빠진다고 성화를 부리지만, 어느덧 성인이 되어 손 밖에 난 자식들에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밥이라고 생각한다.
밥 먹었냐는 말을 인사말로 쓰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는지는 모르겠다. 미국에서 2년 동안 안식년을 보낼 때 미국인 친구들을 만나면, 하이, 하와유 두잉 하는 인사 끝에 꼭 아침은 먹었니? 점심은 먹었니? 같은 말을 했다. 밥 먹었냐고 묻는 것이 순 한국식 인사말인 줄도 몰랐다. 끼니때 만나면 밥 먹었냐고 물어보는 것은 헤어질 때 다음에 만나,라고 인사하는 것처럼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어느 날, 미국인 친구가 내 말이 그렇게 고맙고 다정하게 들린다고 했다. 누군가 끼니때 밥 먹었냐고 물어봐주는 것이 처음이라며.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계시는 어머니에게 일부러 부탁을 드린다. 어머니표 오이지, 어머니표 코다리, 어머니표 떡볶이 좀 해주세요. 예전에도 원래 해주시던 반찬이었지만 부탁받고 해주시는 것은 다른 느낌이 아닐까. 아직 내 손으로 자식들 원하는 걸 해 줄 수 있다는 기쁨.
울 아들은 나중에 엄마 밥을 어떻게 기억할까? 출퇴근에 쫓겨 제대로 된 엄마표 밥을 해준 적이 없었다. 늘 사 먹이 거나, 할머니가 만들었거나, 동네 친구들이나 반찬가게 여자들이 만든 반찬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침밥은 꼭 먹여 보냈다는 자부심. 한 그릇 음식이거나 조미김과 계란 프라이 반찬일망정.
언니는 지난밤, 집에 가겠다는 할머니를 겨우 달래서 침대에 눕혔다고 했다. 의자를 끌어다 놓고 침대 옆에 앉았더니 할머니는 말짱한 정신인 듯, 편하게 침대에 올라와 자라며 곁을 내주더란다. 그래야 할머니가 주무실 것 같아 할머니 옆에 모로 누웠는데, 당신 이불을 끌어다가 언니의 어깨에 덮어주는 게 느껴져, 조금 더 자는 척 할머니 옆에 누워있었다는 언니.
언니는 할머니들의 삶을 생각하면, 기저귀 케어 같은 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평생에 밥하고 누군가를 위해 노동을 해왔을 할머니들이 인생의 굽이를 돌고 돌아 삶의 끝자락, 요양원에 누워있다. 밥하러 간다고 보따리를 싸는 할머니의 기억은 인생이란 골짜기의 어디쯤 가 있는 걸까. 종달새 같은 꼬맹이들이 엄마하고 달려드는 어느 순간이거나 작은 밥상에 마주 앉아, 다정한 눈빛을 보내는, 수염 깎은 자국이 여전히 푸른, 젊은 남편이나 연인이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문득 치매 걸린 할아버지들은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할까 궁금해졌다. 여보 밥 줘, 라는 말이 아닐까 웃으며 이야기해보다가 어쩌면 일하러 가야 한다고 가방을 챙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노동하는 몸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끝이 컴컴한 굴속 같은, 소음과 매연으로 창문조차 열 수 없는 요양원이란 사실은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