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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Nov 01. 2022

당신 괜찮으세요?

타인의 안부를 묻다

을지로에는 여전히 오래된 백반집이 있다. 백 년 노포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삼십 년을 한자리에서 식당을 해온 곳들이다. 이들 백반집의 특징은 대개가 60대 중반은 훨씬 넘은 여인들이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손님들의 시중을 든다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밥값은 7천 원을 넘지 않았는데 그나마 올해 초부터 천 원씩 가격이 올랐다. 그렇다 해도 8천 원 내외인데, 밥과 국, 생선구이나 돼지고기 볶음에 대여섯 가지 이상의 밑반찬들을 내주는 밥상을 받고 나면 이 가격에 이런 밥상을 받아도 되는지 황송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렇게 팔아서 뭐가 남을까” 손님 주제에 식당의 이문을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나는 남산 중턱에 있는 충남 식당과 을지로 3가에 있는 생선구이집에서 주로 점심을 먹는다. 하루는 충남식당, 하루는 생선구이집 이런 식이다. 먼 곳에서 손님이 와도 주저 없이 이들 식당으로 손님을 모셔간다. (모두가 놀랍도록 좋아한다) 최근 을지로가 핫 플레이스가 되면서 인스타그램 맛 집으로 소개된  식당들도 많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뽐내는 퓨전 식당들 역시 하루가 다르게 늘어 간다. 이런 추세 라면 상가 임대료가 더욱 오를 텐데, 이들 백반집들이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오전에 일이 있어 1시 넘어 혼자 생선구이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카레가루를 살짝 뿌려 바삭하게 구운 고등어 반 마리에 압력솥으로 갓 지은 밥 한 그릇, 된장국, 가지무침, 시래기 무침, 도라지 무침, 호박볶음, 아삭 고추, 새콤하게 익은 총각김치가 한상 나왔다. 밥을 한술 뜨기도 전에 참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가지무침을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가지무침 한 접시가 금세 사라진 걸 보고 서빙 담당 어르신이 조용히 가지무침 한 접시를 가져다주셨다.


서빙 담당 어르신은 어깨가 많이 굽었고 걸음 거리가 조금 뒤뚱거린다. 무릎 관절이  좋으신 듯하다. 그녀는 주문을 받고 돌아서면 금세 헷갈리는지 다시 돌아와서 물으신다. “고등어 시킨  맞지요?”  번을 가면 아홉  정도는 주문 내용을 확인하러 다시 오시곤 하는데, 나는 그게  재미있다. 전쟁터 같은 점심 식당 안에서 종종걸음으로 음식을 나르고, 주문을 받고, 상까지 치워야 하니 얼마나 정신이 없을지. 나라면, 두 번이 아니라 나라면  번쯤 물어봤을  같다. 주문받은  까먹어 다시 물으러 오실 때면 미소년 같은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언젠가부터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집에서 먹는 것처럼 정갈하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음식을 먹고 나간 상 위에 음식물이 함부로 흩어져 있고, 그릇과 휴지와 먹고 남은 음식들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면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보는 내가 그럴진대, 그걸 손으로 하나씩 치우고 닦아내야 하는 사람의 심정을 어떨지. 재작년에 아들이 고깃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는 더 그렇다. 내 아들 같은 누군가가 최저 임금 받으며 일하고 있을 것 같아서, 상을 대신 치워줄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상에 음식을 흘리지 않도록, 가능하면 음식이 남지 않도록, 가능하면 상 치우는 분들의 손이 덜 가도록, 정갈하게 먹고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값싼 노동력에 기대어 비싼 밥을 저렴하게 먹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으로.


분주한 오전을 일을 마치고 한숨 돌리면 먹었던 늦은 점심. 내가 좋아하는 가지 무침에 고등어 반찬. 친정 엄마 밥상처럼 맛있고, 배불렀다. 덕분에 괜찮은 하루처럼 느껴졌다. 직장인들의 점심을 책임지는 회사 근처의 식당들. 오늘도 변함없이 직장인들의 한 끼 밥을 지어 내어 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마음으로나마 안부를 묻고 싶다. 오늘 당신의 하루도 괜찮으셨나요? 저는 덕분에 든든히 먹고, 꽤 괜찮은 하루를 보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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