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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Jun 12. 2020

서로를 걱정하는 밤

그 많은 장맛비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장마철이면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곤 했다.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며 송사리를 잡고, 바닥에 손을 짚고 헤엄을 치며 놀던 개울인데, 장마에 폭우가 내리면 하룻밤 사이에 다리 바로 아래까지  물이 불어났다.


밤이 되면 불어난 개울물은 꽈앙꽈앙 화난 짐승 소리를 냈고 주민들은  어린 짐승처럼  웅크린 채 걱정을 주고받았다. 나도  개울에서 가장 가까운 집에 사는 내 친구 현주가 걱정이 돼서 잠을 설쳤다.

그즈음 저녁 티브이 화면에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가축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농부들, 지붕 위에 올라앉아 흰 천을 흔들거나 빨간 대야에 꼬맹이들을 태워서 물길을 빠져나오는 아버지들이 나왔다. 수재의연금을 내려고 몇 시간을 기다렸다는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인터뷰를 했다. 가족들이 티브이 앞에서 저녁을 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어쩜 좋아, 어떡하냐’며 탄식과 걱정을 나누던 시절이었다.
     
 폭우의 밤이 지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개울 뚝으로 모여든 주민들은 불어난 물을 구경했다. 물은 지독히도 사납게 흘렀다. 물놀이하던 우리의 개울은 흔적도 없고, 바위 수천 개를 품은 듯 사나운 황톳물이 금세 달려들 듯 꽝꽝거렸다. 나는 그 장면이 무서워서 손발이 저릿저릿하는데도 개울 뚝을 벗어나지 못했다. 작은 마을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스펙터클한 볼거리 여서도 그랬겠지만, 그곳에 있던 어른들의 눈빛에 배인 안도감과 감사가 어린 내게 그 행렬에 동참하고픈 마음을 갖게 했던 것도 같다.


밤새 쏟아지는 폭우라는 자연재해 앞에 동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오직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 말고는. 무사히 폭우가 지나간 새벽, 개울 뚝에 서서 넘실거리는 황톳물을 응시하는 것은 일종의 자연에 대한 조용한 저항 행위였을 거라고, 세월이 오래 지나 생각하게 되었다.
      
장마는 지나가고, 개울은 세수한 아기 얼굴처럼 순하게 다시 돌아왔다. 개울 바닥에 반짝이는 새 모래가 채워졌고 넓어진 개울 폭만이 폭우의 스펙터클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장마가 시작된다고는 소식을 들으면 어김없이 어릴 때 놀던 우리 개울이 떠오르곤 한다.


이제, ‘우리의 개울’은 아주 오래전에 말라버렸고 폭우에도 물은 불어나지 않는다.  개울도 사라지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밤을 지새우던 사람들도 사라져 버린 그곳에, 이 시절 내리는 장맛비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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