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유 없이 하루 휴가를 내고 공연히 늦잠을 잤다. 게으르게 커피를 내려 마시고, 비 내리는 검은 숲을 오랫동안 산책했다.
올 해는 1년 동안 자기 계발 휴직을 내고 긴 여행을 나겠다고 다짐하며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다 경제적인 몇 가지 문제가 생기고, 급기야 코로나 19가 도래하면서 휴직도 여행 계획도 모두 중단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마치 타야할기차를 놓친 여행객처럼 망연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다.
숲길은 걷는 중에 왜 휴직을 내고 여행을 가려고 했는지 천천히 처음부터 생각해 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가능하게는 할 수 있지만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미치도록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것도 없지 않던가. 여행이 아니라 그저 출발지와 목적지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낯선 것들과 만나는 날 것의 시간이 그리울 뿐이었다. 그런 것들은 멀리 떠나지 않아도, 1년이나 휴직을 하지 않아도 틈틈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긴 여행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나의 핑곗거리일 뿐이고 결국 반복되는 일상에 틈을 내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나의 행동.
어딘지 쪼그라드는 듯 한 느낌이 들면 멀리 도망가려 하지 말고 일상에 여유를 만들려고 노력해 보아야겠다. 오늘처럼... 여유, 물질적ㆍ공간적ㆍ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은 꽉 채우는 것 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오랫동안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배워 것이 습속이 된 탓이다.
머핀을 만들 때, 머핀 틀에 반죽을 다 채우면 망한다. 빵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를 20%의 공간이 폭신폭신 식감 좋은 머핀이 되게 한다. 내 일상에도 20%의 부풀어질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낭비하는’ 빈 시간과 공간이 내 몸과 마음을 부풀린다.
철학자들은 이 여유의 시간을 고독할 시간이라고 한다던가. 나는 이 시간을 머핀이 부푸는 시간이라 불러야겠다.
오늘, 나의 머핀이 약간 부풀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