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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Jun 30. 2020

쓰기의 이유

이기호 ‘한정희와 나’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에 앉아서 이기호의 소설 ‘한정희와 나’를 읽는데, 돌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겁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환대하는, 소설 속 '마석 엄마'가 그냥 고맙고 귀해서 눈물이 났어요.  

나는 '마석 엄마'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은 안 하면서, '마석 엄마' 같은 사람이 내 곁에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입니다,라고 고백하는 눈물일 거예요.

공연히 창피해서 하품하는 척하면서 눈물을 닦는데, 내가 앉은자리 바로 옆, 출입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여학생이 그 때야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미 몇 정거장 전에 그 여학생을 힐끔 보았었어요. 서있는 게  힘들 나이도 아니고, 힘들어도 그렇지 출구를 턱 막고 앉아 있는 꼴이 영 못마땅해하면서 그냥 못 본 척했었던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그 여학생이 무례해서가 아니라 아픈 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마석 엄마'를 읽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을 해볼 기회도 없이 그냥 못 본 척했을 것이 분명한데, 순전히 '마석 엄마' 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학생 곁으로 갔지요.

학생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물었어요. "학생 어디 아파요?"

학생이 고개를  들면서 희미하게 네, 그럽니다.

"여기 자리에 앉아가요. 미안해요.. 아줌마가 학생이 많이 아픈지 몰랐어요"

그 학생은 갑작스러운 낯선 사람의 괸심에 놀란 듯, 괜찮은데, 괜찮은데 하면서도 일어나서 내가 내어준 자리에 앉았어요.

나는 그가 미안해할까 봐 한번 맑게 웃어주고, 옆으로 조금 비켜서서, 다시 '마석 엄마'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리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이런 글은 아닐까, 문득 생각했어요.

그런 글들이 있잖아요? 읽다 보면, 마음이 선해지고, 어쩐지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은 감흥을 주는 글.

윤리적이고,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는 마음과는 다른, 이 세상을 앵두알만큼이라도 좋아지게 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 같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글. 이런 글을 읽고,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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