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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Jul 01. 2020

쓰기의  감각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책 '문맹'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여전히 지금도, 매일 아침, 집이 비고, 모든 이웃들이 일하러 나가면 나는 다른 것을, 그러니까 청소를 하거나 어제저녁 식사의 설거지를 하거나, 장을 보거나, 빨래를 하고 세탁물을 다리거나, 잼이나 케이크를 만드는 대신 식탁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신문을 읽는 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쓰는 대신에."



나는 이 문장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인 듯 반가웠다. 아고타 같은 대가들도 쓰기보다 읽기를 즐기는구나! 그리고 쓰는 대신 읽는 것에 가책을 느끼는구나!  나도 늘 비슷한 가책을 느낀다.


사람은 다음 세 가지 노동의 발란스가 맞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밥벌이를 위한 임금노동, 봉사활동이나 글쓰기, 그림 그리기 같은 자율 노동, 밥 짓기, 청소, 빨래 같은 자활 노동.


나는 임금노동을 이유로 평소에 자율 노동과 자활 노동을 뒤로 미루거나 방치하다가 주말에 몰아서 하곤 한다. 양육의 책임에서 이제 거의 자유로운 나는 자활 노동은 가능한 아웃 소싱하거나 인공지능 로봇에게 맡길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주말은, 그러니까 자율 노동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산에 가고 책 보고 하다 보면 글쓰기는 언제나 뒷처진다. 세 가지 노동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애당초 힘든 일이라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율 노동의 균형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대 작가의 고백이 아니더라도, 자율 노동 중에 글쓰기가 가장 고난도 ‘노동’ 임은 분명하다. 읽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쓰기에 비하면 얼마나 쉽고, 재미난 일인가 말이다. 읽기는 쓰기의 게으름을 합리화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이유가 된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 조차) 자꾸자꾸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쓰기라는 녀석이 읽을수록  자꾸자꾸 더 읽고 싶게 만드는 독서와 어떻게 경쟁이 되겠나.  

그런데 , 읽고 쓰지 않으면, 읽는 즐거움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쓰기의 갈증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내 안에, 바람맞은 머리칼처럼 흐트러지고, 산발된 채 존재하는 막연한 감정과 생각들을 깔끔히 빗어 문장화하고 싶다는 허영과 욕망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가끔 책상 앞에서 끙끙거리며 뭔가를 쓰고 있는 내게 남편은 툭툭 한마디 한다. “뭘 그렇게 매일 써(사실 난 매일 쓰지는 못 한다) 작가도 아니면서. 책을 한 권 열심히 쓰던가”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작가만 글 쓰는 게 아냐. 그리고 취미로 글을 쓰면 안 돼? 취미로 수영한다고 다 선수되는 거 아니잖아? 책 안 써도 취미로 글쓰기 할 수 있다고” 같은 말로 응수하지만, 마음은 꼬맹이가 재미 삼아 던진 돌멩이를 맞아 쭉 뻗어버린 개구리 심정이 된다.


그럼에도 적절한 비난과 게으름이 만드는 쓰기의 자극과 갈증을 난 즐긴다. 이런 갈증이야 말로 임금노동과 자활 노동을 위해  돌보지 못한 작은 불씨가 어딘가에서 깜빡이고 있다는 증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알 수 없는 장소에서의 밤이었다. 나는 강한 맞바람을 안고 힘겹게 느릿느릿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사방에는 짙은 안개가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언제 꺼질지도 모를 작은 불꽃을 손으로 동그랗게 감쌌다. 모든 것이 이 작은 불꽃을 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내 안에도 손을 동그랗게 감싸고, 몸을 수그려 절대로 꺼지지 않게 보호하려고 하는 작은 불꽃 하나 있늗데, 그것이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여러 이유로 글쓰기로부터 도망 다니고는 있으나, 생각해보면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음에서 그 불꽃을 꺼버린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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