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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Aug 11. 2020

허브티와 바흐

나의 글쓰기 연상어

아침에 6시에 일어나 출근 전 1시간씩 글을 쓰려고 했으나 거의 몇 달째 지키지 못했다. 나의 생체리듬은 7시에 맞춰져 있는지, 고작 1시간여 더 일찍 일어나 글을 쓴 날은 오전 내내 머리가 돌지 않아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누군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늦게 자는 탓이라고 해서 10시에 취침도 해 보았지만 결과는 늘 비슷했다. 아마도 10시 취침을 2주 정도 해보면 생체리듬이 바뀌어 새벽 형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밤 10시 취침 하기는 5시 기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안타깝지만 새벽 형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퇴근 후 9시부터 글을 쓰기로 작전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 역시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고서를 읽고 쓰다 퇴근한 내 몸은 다시 책상에 앉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나의 글보다 훨씬 아름답고 의미 있는 글들이 책 상위에 누워서 나를 유혹했다. 허브티 한 잔을 만들어 그중 한 녀석을 안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우면 더없이 한가하고, 편안한 밤 시간이 되었다.


늘 비슷한 패턴으로 일주일이, 한 달이, 한 계절이 지나가는데도 이런 날들이 익숙해지지 않고, 머리 감지 않고 출근한 날처럼 남들은 모르는 근질거림과 끈적임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아주 가끔 책상에 앉아 쓰게 되는 날이 있고, 또 가끔 그 글이 마음에 쏙 들어오면 진짜 머리를 감지 않아도 사우나 다녀온 사람처럼 온몸이 가뿐하고 개운했다.


내가 쓰려고 하는 여러 이유 중에 그 개운함의 맛보기가 어쩌면 맨 앞 줄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 개운함이란 만족감과 연결되어 있는데, 무엇에 대한 만족감인지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대한 이상한 열망이 있었는데, 그 만족감은 그 열망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확인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막연했던 생각들이 글로 표현되었을 때 느껴지는 명료함이 기분을 전환시키는 것도 같다.


글쓰기를 하면서 글쓰기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나는 왜 쓰려고 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책들의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도, 앤 라모트(쓰기의 감각), 브랜다 유랜드 (참을 수 없는 쓰기의 유혹)도 ‘계속 쓰기’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계속 쓰다 보면 쓰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쓰는 이유를 묻지 말고 쓰라는 말이다. 내가 계속해서 쓰는 이유를 찾는 것을 보면 나의 글쓰기는 여전히 시작 단계일 뿐인 듯하다.


올봄에 100일 글쓰기를 했다. 늦게 귀가하는 날에는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간단히 몇 문장을 적어서라도 하루의 글을 마쳤다. 그렇게 70일을 매일 썼다.(남은 30일은 사정이 생겨서 아예 참여하지 못했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은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신하는 일처럼 내게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글을 쓰는 일이 내게 부담이 되었던 것은 너무 잘 쓰려고 했다는 것, 그리고 특별한 영감이 찾아와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매일 쓰기에는 내 생활이 너무 루틴 하다는 것 등 글쓰기에 대한 오래된 나의 관념을 체험을 통해 바꾸는 경험이었다. (글쓰기 책을 통해 이미 그런 생각이 틀렸음을 배웠겠지만 체험을 통해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매일 쓰니까 더욱 많은 이야기가 내게 다가왔다는 것, 생각을 더 잘 표현하려고 고심하다가 오히려 한 문장도 제대로 써 내려가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기 일 수였는데, 그렇게 억지로 애쓰지 않으면서 생각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문장들도 꽤나 괜찮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 매일 쓸수록 낮 동안 글쓰기에 대해서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는 것, 고작 70일 동안 매일 글을 썼을 뿐인데도 꽤나 괜찮은 작가적 경험을 했다.


요즘의 글쓰기 목표는 자기 검열하지 않고, 잘 쓰려고도 하지 않으며 무조건 매일 쓰는 것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브런치 매거진으로 등록한 주제에 맞는 글들을 조금 더 써보는 것.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매일 쓰는 몸을 만드는 것. 어떤 신문에서 운동을 계속하는 사람과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의 차이를 연구한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운동을 계속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운동을 떠올리며 개운함, 성취감, 활력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을 연상하는 반면 운동을 중단하는 사람들은 고통과 관련된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는 것이다. 근육통, 숨 막힘, 힘들다, 같은 것. 맞는 말인 것 같다. 등산을 좋아하는 나는 산을 생각하면 진초록의 향연, 확 트인 시야, 성취감, 한걸음의 정직함 같은 긍정적인 것들을 먼저 떠올리는 반면 등산을 싫어하는 남편은 무릎 통증부터 걱정하니 등산을 계속하지 못한다. 아마도 글쓰기도 같은 법칙이 통용될 것 같다. 아직까지 글쓰기는 ‘허리 통증, 막막함, 내 글의 유치함, 써서 뭐하나’ 같은 따위의 부정적인 단어들을 연상시킨다. 매일의 습작이 이런 부정적인 단어들을 나의 글쓰기 사전에서 조금 삭제하는 연습이 되게 하고 싶다. 장마가 지나고 가을이 시작될 때까지 옷 방 한 구석에 마련된 글쓰기 책상에 조금 더 가볍게 앉을 수 있도록  좋아하는 허브티 서른 개, 클래식 음악 서른 곡을 준비하려 한다. 글쓰기를 생각할 때 향긋한 허브티와 바흐를 떠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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