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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Jul 12. 2020

만년설에 묻어야 하는 마음

한지와 영주(쇼코의 미소, 최은영)

대학원에 다니는 나, 영주는 뒤처지면 안 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영주의 부모 역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한 번도 가난의 굴레를 넘어서지 못했다.  영주는 그래서 늘 불안하다. 자신도 결국 같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영주는 프랑스로 짧은 여행을 갔다가, 젊은 수도사가 시골 마을에 세운, 이제는 세계적 명소가 된 수도원에서 6개월째 장기체류 봉사 중이다. 방문객들을 위해 밥을 짓고 청소를 하는 자원봉사자로 남기 위해 대학원에 갑작스러운 휴학계를 낸다는 것은 그녀 답지 못한 일이지만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영주는 그렇게 하기로 한다.


영주는 그곳에서 나이로비에서 온 봉사자, 한지를 만난다. 자신이 본 사람 중에 피부가 가장 검고 눈은 맑은, 명랑한 사람, 한지에게 그는 한순간에 빠져든다. 영주는 한지에게 자신의 마음을 애써 감추려 하지만 한지와 함께하는 짧은 시간들이 숨 막히게 좋다. 일기장에 날마다 한지의 이야기를 쓰고, 일과를 마치고 보리수나무 앞 벤치에 앉아 한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길을 걸어 숙소로 되돌아오는 그 시간이 멈춰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지가 3개월의 봉사기간을 마치고 나이로비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지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두 사람. 그렇게 다정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한지의 귀국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어느 아침, 한지가 돌연 영주를 모른 척한다. 그 전날 밤에도 둘은 나란히 앉아 보리수 꽃 내음을 맡으며 자판기에서 콜라를 꺼내 나눠 마셨고, 한지의 내일 만나, 라는 인사를 듣고 헤어졌을 뿐인데... 한지는 어떤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영주를 외면한다. 영주는 어느 날 길가에 버려진 애완견처럼 어리둥절하고, 왜 낯선 거리를 헤매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영주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특히나 고통을 드러내고 시위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은 상대방을 괴롭히고 자신도 괴롭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주는 그래서 마음을 숨기기로 한다. 한지라는 사람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한지가 자신을 모른 척한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다른 봉사자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게임을 하고 늦은 시간까지 깔깔거리다 숙소로 돌아와 혼자 울면서 잠이 든다. 한지가 떠나던 날, 영주는 한지에게 자신이 6개월 동안 써왔던 일기장을 보내보지만 한지는 그것이 영주에게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돌려보낸다. 영주는 그렇게 마음조차 고백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거절당하는 것보다 슬픈 일은 없는 것 같다. 영주는 한지가 자신을 거절한 이유가 자신의 어떤 실수에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하고, 생각한다. 한지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더라면, 한지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한지를 위로했더라면, 또는 한지에게 자신의 단순함을 고스란히 들키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만약과 어쩌면 사이에서 자신이 저지른 실수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애쓴다.

 


정말 그랬을까? 영주가 만약에, 다르게 행동했다면, 한지가 영주로부터 그런 식으로 냉담하게 돌아서지 않았을까? 한지에게 그러지 말라고, 그렇게 떠나지 말라고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고백했다면 그 끝은 달라졌을까?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시작과 끝이 있다고 하니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음도 끝이 있는 것이 이상할 리 없다. 시작이 왜 그렇게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끝남 역시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 어쩌면 우주적 섭리와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작과 끝이 하나처럼 연결된 것이라서 사람의 힘으로 붙잡아 두겠다는 것이 불안을 자초하는 일임을, 그것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만남의 끝은 끝없이 사람을 그 끝에 붙잡아 묶어 두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무한 반복되는 끝, 영원히 멈춰지지 않는 끝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영주처럼 헤어져 본 사람들은 알 것 같다.


영주는 한지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한 일기장을 만년설이 만든 얼음 구멍 사이로 집어넣는다. 한지에 대한 기억들이 얼음에 붙어 떠나가기를 빌면서. 정말 기억이란 것이,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떠날 수 있는 것일까? 영주는 기억이 그렇게 떠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일기장을 불태우는 대신 만년설 얼음 구멍으로 밀어 넣은 것은 아닐까? 만년의 얼음 속에 기억을 묻어 둠으로써 무한반복되는 어떤 마음의 끝을 또 다른 만년 동안 동결시켜 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영주는 더 이상 많이 불안하지도, 너무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덮으며 나는 조금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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