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서관
첫 번째 도서관
기옥이네 집에는 우리 집에 없었던 소년소녀 세계 문고 같은 전집류가 많았다. 초등학생인 나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지 않고 기옥이네로 갔다. 천장 높이의 짙은 색 나무 책장이 있던 작은 방은 해가 잘 들지 않아 늘 어두컴컴했다. 툇마루에는 노란색 그 집 고양이가 그루밍을 하고 있고, 주인도 없는 그 방에서 나 홀로 창문의 한 줌 햇볕에 기대서 책을 읽었다. 기옥이 엄마는 나에게 친절하게 말하곤 했었다. "기옥이도 같이 불러서 읽으면 얼마나 좋겠니?"라고. (기옥이는 야구와 피아노 치기를 좋아했다.) 책장 위에는 고등학생이던 기주 오빠가 쓴 '표어'가 붙어 있었는데 그 문장은 이랬다. '책은 빌려주지도 빌리지도 맙시다!' 느낌표까지 꽉 찍힌 그 표어 때문에 감히 책을 빌릴 생각은 못하고,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소공녀, 소공자, 빨간 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같은 책을 읽고 또 읽고 했던 것 같다.
두 번째 도서관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무슨 이유에서 인지 나를 사서로 임명한 후 도서관 열쇠를 주셨다. 덕분에 나는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방학이 되면 그 아담한 도서관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되었다. 그 오롯한 느낌 때문에 도서관에 자주 가서 앉아 있었다. 그때 읽었던 책들 중에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지만, 도서관 창가에서 앉아서 운동장을 바라보던 열다섯, 열여섯의 감성은 언제나 생생하게 떠오른다. 교정을 둘러싼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서 은동전 같이 빛나던 햇살이라던가, 사선으로 꼳히던 여름 소나기가 남긴 운동장의 희뿌연 모래 거품, 땅거미 길어지는 텅 빈 운동장에 불러오던 막연한 공포, 맑은 날 멀리 보이던 테니스장의 하얀색 횟가루 경계선 같은 것. 그리고 긴 복도를 걸어가 도서관 문을 열었을 때 확 풍겨오던 오래된 책의 냄새. 내 뺨을 물들이던 단감 색 석양. 해가 질 때까지, 혼자서 무섭지도 않았던 걸까? 내 감성의 팔 할은 중학교 시절 도서관에 빚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도서관
정확히 말하면 중앙도서관 앞 광장. 중앙도서관 앞에서 사회과학대 학생들은 거의 날마다 집회를 했었다. 특별히 오월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그 앞에 앉아 “오월, 혁명, 투혼” 같은 푸른 생선의 등줄기처럼 퍼덕이는 노래들 불렀다. 오월의 햇살만큼 찬란했던 청춘의 한 때, 지금도 그 시절 부르던 노래를 흥얼대면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그때 중앙도서관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학생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때는 공부보다 데모가 더 중요했고, 필요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도서관 건물은 우리에게 공부하는 곳이라기보다 학생운동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몇 학년 위 선배들 여러 명이 도서관 옥상 난간에 몸을 묶고, 현수막을 걸고, 광주항쟁의 진상을 알리는 전단지를 뿌렸다가 체포, 구속되기도 했다. 중앙도서관은 오래전에 리모델링을 해서 층수가 높아졌고 내부도 완전히 바뀌다고 들었다. 한 번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중앙도서관의 책들.... 그때는 책들과 행복하게 만나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멀리 가 있었다. 다시 태어나서 대학생이 된다면, 도서관에 처박혀, 손수레로는 끌지 못할 만큼의 책을 읽으리라. (다시 태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뭐 은퇴하고 해 볼까? 책을 볼 수 있는 건강과 시력이 허락되기를..)
네 번째 도서관.
일리노이주 어바나 샴페인 도서관은 2층 규모의 아담한 현대식 도서관이다. 내가 어바나 샴페인에 있었을 때, 이 도서관이 막 개장을 했었는데 당시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100개 중에 하나로 뽑혔다. 미국에 도서관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면, 100번째에 들었다는 것은 정말 정말 대단한 일이다. 미국 도서관에 다니면서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이 싹 깨졌다. 도서관은 조용히 앉아 암기하듯 책을 보는 곳이 아니었다. (조용히 책만 볼 사람은 별도로 마련된 '콰이어트 룸'으로 들어가야 한다) 도서관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둘레둘레 앉아서 책에 대해 대화를 하고, 사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의자, 책상, 책꽂이 하나 편리하면서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시골 구석구석마다 있는 그런 멋진 도서관들이 '문제 많은' 미국을 지탱하는 힘일 것이다. 해질 무렵, 창마다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가운데, 푸르스름한 저녁 빛으로 감싸인 도서관은 언뜻 고독한 섬처럼 보였다. 그 섬에는 읽고 쓰기의 황홀감을 아는 고독자들이 머물렀다. 어바나 샴페인 도서관이 이방인인 내게 얼마나 큰 위로의 장소였는지는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또 다른 도서관
지역 도서관에서 '사람책'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자신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5~8명의 독자(참여자)에게 들려줄 사람들을 모집하는 광고였다. 책의 대부분이 결국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활자로 전하든 목소리로 전하든 크게 다를게 무엇일까. 도서관의 사람책이라니 얼마나 자연스러운 조합인가! 사람책 컨셉대로라면 세상의 모은 사람은 한 권의 책이다. 그러니까, 나의 친구, 동료, 학인이 있는 일터가, 동네가, 독서모임이 바로 나의 도서관인 셈이다. 내 주변에 아름다운 ‘움직이는 책’ 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금씩 알게 되는 요즘이다. 도서관에 가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귀한 문장에 밑줄을 치듯 사람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사람이 있는 곳이 이 즈음 나의 도서관이다.
오늘도 테이블 너머 당신에게 수줍게 말을 걸어 본다. 당신의 도서관은 어디인가? 그 곳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