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마주하는 풍경들
출근길 지하철의 풍경은 세상살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좌석에 앉아 있는 상류층, 좌석 바로 앞줄에 서있는 중산층, 그밖에는 전부 다 하류층. 상류층은 느긋하게 눈을 감고 부족한 아침잠을 때운다.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터질듯이 승객들이 늘어나, 숨 쉴 공간도 부족해지지만, 상류층과는 무관한 아우성이요 싸움들이다. 다리를 쩍 벌리고 출근길의 여유를 즐긴다. 중산층은 좌석 앞에 서 있으면서 상류층이 어쩌면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대박을 꿈꾸며 버틴다. 앉아 있는 상류층의 미세한 몸동작을 놓치지 않고 잘 주시해야 한다. 방심하는 사이 옆의 중산층에게 내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 경계심을 풀면 뒤에 있는 하류층에게 밀릴지도 모른다. 노오오력하고 노오오력하자. 하류층은 희망이 없다. 그냥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시간을 버텨야한다. 낯선 타인과 한뼘 사이를 두고 서있다 보면, 앞 사람이 이유 없이 미워진다. 표현할 수 없는 복받침이 발끝부터 차오르기도 한다. 성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찔리기도 하고 찌르기도 하면서 한뼘 공간 안에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같은 요금을 내고 탔는데, 세상 왜 이리 불공평해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지하철 속 세상살이가 진짜 세상과 다른 점은 이런 거다. 가끔 자리를 양보하고 스스로 하류층이 되는 용감한 귀인이 등장한다거나, 진짜 운이 좋아서, 눈치가 빨라서 자리를 잡게 되는, 계층의 변화를 가끔은 꿈꿀 수 있다는 것. 오늘의 상류층이 지정좌석 같은 걸 요구하며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영원히 자기 자리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다음날 출근길에 신분 상승을 꿈꿔볼 수 있다는 것. 아, 그리고 또 있다. 노인과 임산부, 아동에 대한 우대 정책도 꽤나 잘 정착되어 있다. 아침 출근길이 아무리 고단해도 진짜 세상살이에 비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