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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Aug 17. 2020

반가운 여름밤의 ‘노멀’

퇴근길 공원에서


퇴근길에 집 근처 공원에서 꼬맹이들을 만났다. 앙증맞은 마스크를 끼고, 한 발을 핑크색 킥보드에 올려놓고 다른 한 발로 땅을 휙휙 구르며 앞으로 나가는 운전 솜씨가 프로 선수 급이다. 이제 세상에 태어 난지 몇 해 밖에 안 되었을 녀석들은, 나도 살만큼 살았어요, 세상 물정도 다 안다니까요, 하는 듯 나를 쌩쌩 가로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아예 공원 끝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녀석들 노는 모습을 구경하기로 한다. 이 동네 꼬맹이들한테 킥보드가 유행인가 싶다. 한 녀석이 지나가면 또 다른 녀석들이 등장했다.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젊은 엄마들 무리가 그 뒤를 따라다녔다.


유래 없는 길고 긴 장마가 이어지면서 오늘처럼 맑은 하늘이 다들 많이 그리웠는가 보다. 오랜만에 공원이 꽤나 분주하다. 산책 나온 부부, 나처럼 퇴근길에 공원을 가로지르는 직장인들, 운동복 차림의 중년 여성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공원을 지그재그로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여름밤의 ‘노멀 한’ 풍경이다. 때마침 공원 농구장에서 들리는 탕탕탕, 농구공 튀어 오르는 소리가 재즈 선율처럼 여름밤의 공원 분위기를 조금 더 고조시켜 준다. 공 소리만큼 탄력적인 몸놀림으로 남학생들이 농구장을 뛴다.


산책 나온 작은 푸들이 내 앞에 멈추더니 까만 눈으로 빤히 나를 쳐다본다. 낯선 여인이 공원 풍경을 관찰 중임을 감지한 듯하다. 공원의 나무들은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초록이다. 이 모든 풍경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평범한 삶의 풍경이 낯설고 귀해서 한 점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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