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단순하고 정직한 욕망
고미숙 씨가 쓴 박지원의 열하일기 해설서와 함께 완역본을 읽고 있다. 열하일기는 1780년에 연암이 청나라 황제의 생일 축하단의 일원으로 열하에 다녀온 과정을 쓴 여행기이다.
말을 타고 이동했다고 해도 하루에 100리 가까운 길을 매일 이동하는 거의 고행에 가까운 여행길, 연암은 그 길 위에서 매일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깜짝 놀란 만큼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곰이나 원숭이를 데리고 나온 장터의 약장수들 이야기가 등장하는가 하면 병자호란 때 끌려간 조선 사람들의 집성촌의 면모라든가, 조선에서는 볼 수 없는 청나라 사람들이 이상하고 진기한 풍습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호질’은 어느 집 벽에 걸려있던 족자의 내용을 연암이 직접 베껴 옮겨온 것이다. 하인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서 글자를 베끼고 있을 연암이 떠올라 미소가 절로 번진다. 어떤 것이든 호기심이 발동하면 덤벼들어 시도해 보는 성격인 것이 분명하다. 18세기 양반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단박에 뛰어넘는 유형의 사람이다. 연암이 여행기를 모두 완성하기까지 꼬박 3년여의 세월이 걸렸다고 하는데, 연암의 글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그가 쓰는 중에 여행기 사본에 시중에 나돌고, 여러 수정판까지 생겼다고 하니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할 수 있다.
열하일기의 내용을 읽다 보면 연암의 꼼꼼한 관찰력에 계속 탄복을 하게 되는데 , 사실 관찰력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유머감각이다. 무언가 딱 꼬집고 후려쳐서 비평을 하기보다는 사물이나 사건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당사자들이 위선적 속마음이나 허풍 같은 것을 살짝 들춰서 은근한 웃음을 자아낸다. 정조가 연암류의 문체를 소품체 즉 가벼운 잡문체라고 규정하고 문체반정을 지시했던 것을 볼 때 연암과 그의 친구들, 이문구나 이옥, 박제가 등의 글이 당시 얼마나 크게 유행하였는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좋아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이문구의 글을 나도 한 권 읽은 적이 있는데 별거 아닌 것 같던 대상들이 그의 글 속에서 만물의 주인공으로 활짝 피고지면서 독자의 마음에 애틋함을 자아낸다.
18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문화가 만개하던 시대였는데, 조선 땅 역시 큰 흐름 속에 있었음을 연암이나 이문구가 상징하고 있고 있는 듯하다. 이들의 글쓰기는 알고 보면 조용한 저항 운동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지배 체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 풍류를 즐기는 인물들, 그들이 만든 문장의 대유행! 문장의 혁명은 사실 총칼의 혁명 못지않게 커다란 전복의 물결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 고서를 그대로 베끼고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그것을 당대의 관점에서 새롭게 읽어내는 글들은 지배 세력의 관점에서 보면 총칼보다 훨씬 위험한 저항일 수 있다.
연암이 긴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3년에 걸쳐 여행기를 쓰고 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상상해 본다. 먹을 갈아 붓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야 하는 과정은 지금의 글쓰기와 비교하면 모르긴 몰라도 백배쯤, 어쩌면 천배쯤 더 고된 작업이었을 것이다. 연암의 직접 쓴 초고본이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열하일기를 다 마치면 꼭 한번 찾아가서 원본을 직접 볼 생각이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글씨가 그림처럼 반듯하고 아름답다. 수백 년 전 그의 글을 직접 보고 읽을 수 있다니.. 글이란 진정 얼마나 힘이 센가.
지금처럼 출판을 할 목적이 있어 쓰는 글도 아니고 좋아요나 별풍선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누구에게 과시를 하려던 목적도 없이, 사실 왕의 명령에도 어긋나는 여행기 같은 글을 그 고된 과정을 거쳐 어떻게 계속 쓸 수 있었을까?
아마도 반 고흐가 자신의 바라본 하늘색의 아름다움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다는 그 단순하고 정직한 욕망으로 그림을 계속 그려 나갔듯이 연암도,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친구들, 그리고 후대의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관대한 간절함이 그를 계속 책상 앞에 붙잡아 두지 않았을까?
단순하고 솔직하고, 열정적인, 설레는 마음이란 얼마나 힘이 센 것인가 말이다. 정말이지 그 마음을 훔치고 싶다.
photo by 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