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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Nov 03. 2020

누구나 다 아는 글쓰기의 비밀

매일 쓰면서 알게 되는 것들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글쓰기 그 자체가 아니라 책상에 앉는 일이 아닐까?


일단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무엇이든 쓰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퇴근한 몸은 백만 가지 이유를 만들어 책상을 거부한다. 마음보다 솔직하고 영리한 몸을  책상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트릭과 허세가 필요하다. 일테면, 책상 배치를 바꿔 서재를 꾸며 보는 건 어떨까?


공간의 효율을 생각해 벽에 붙여 쓰는 책상을 중앙 창과 나란히 배치해 보았다. 나뭇결이 살아있는 오동나무 책상,  온종일 부드럽게 스며드는 햇살과 봄여름가을겨울을 느끼게 해주는 정원 풍경을 보여주는 통유리창 앞은 아니지만, 팽나무와 벚나무의 우듬지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책상에 앉는 부담이 조금 덜어진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서재는 어차피 이 생에서는 어려울 것 같고,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듯이, 자기의 사정에 맞춰,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고, ‘자기만의 방’이라 명명해보자. (베란다 한편에 이케아 책상 하나 두고 서재라고 한다고 안 될 것이 뭔가. 허세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 아닌가).

 

책상에 앉는 것 다음으로 어려운 것은 글쓰기의 목적을 정하는 것 같다.


일생에 책 한 권은 내 이름으로 내야지, 하는 결심을 세운 사람이라면 글쓰기의 어려움을 반쯤은 해결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단지 허세가 아니라면, 책을 내겠다는 그 마음 안에 이미 열렬히 하고 싶은 말(주제)이 들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 마음에 따라 글을 쓰기만 한다면 진짜 죽기 전에 책 한 권을 쓰는 것은 어려운 목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귀중품이 든 가방처럼 어깨에 메고 다녔지만, 아직까지도 열렬히 책 한 권 내겠다는 마음은 서지 않을 뿐 아니라,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조차 잘 모르겠다. 그러니 내게 글쓰기는 나만의 주제를 탐사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가수 장기하 씨가 책을 내고, 라디오에 출연해 재미있는 말을 했다. 장기하 씨는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실제로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독서를 잘하지는 못한다고 하면서, 그래도 책은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꼭 무언가 잘해야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나는 그의 엉뚱한 질문이 마음에 들었다. 내게 글쓰기가 그의 독서와 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쓰고 싶은 마음만큼 많이 쓰는 것도 아니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갈망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충분히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잘하는 사람이 결국 좋아하는 사람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말처럼 계속 좋아하며 따라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잘하는 날이 오겠지 생각하며, 계속 써볼 생각이다. 계속 글을 쓰는 삶을 추구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말(주제)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몇 달 전, 용기 내어 브런치 작가를 시작했고, 몇 개의 잡문들을 공개하고 있는데, 좋은 반응이 있으면 기분이 참 좋고 행복하다. 글쓰기가 주는 '쾌락'이 큰 것은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 같다. 아무리 별거 아닌 글 한편이라도 쓰는 과정에 들인 애씀은 절대 별게 아니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편의 에세이라도 마무리를 짓고 나면 스스로를 막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이다. (양 팔을 교차하여 어깨에 두르고, 토닥토닥하며 잘했어 라고 말 해보자.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글쓰기의 궁극의 목표는  ‘쓰는 몸’을 만드는 것인데, 쓰는 몸은 결국 ‘생각하는 몸’ 임을 쓰다 보니 느끼게 되었다. 날마다 쓰기 위해서는 쓸 이야기가 필요하고, 글의 소재는 내 경험에서 시작되어 점점 더 그 바운더리를  넓혀 진화하게 된다. 내 경험에서 소재를 찾는 데는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의식적으로 나와 가족의 문제가 아닌 타인의 삶도 골똘하게 관찰하게 되고, 나와 타자들의 연결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글쓰기에 성찰이나 치유의 요소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쓰기의  진화 과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글쓰기의 진짜 비밀은  


나와 나 아닌 모든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든 연결 되어 있음을 상기시켜내는 글을 나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은유 작가의 최근 홍은전 작가에 대한 인터뷰를 보면서 홍은전 작가의 글이 왜 그리도 힘이 있고 울림이 큰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 은 어느 페이지를 펴서 읽어도 먹먹하고 아프다,. 상처를 파헤쳐서 아프게 하는 글이 아니라 ‘나도 당신처럼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 내가 더 많이 행동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라는 누구나 갖고 있을 착한 심성을 건드려 마음에 댕그렁 댕그렁 종을 울려 퍼지게 하는 것 같다. 장애운동에 몸담았던 홍은전 작가가 동물권 운동으로 넘어간 것은 마음과 글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그 다운 바운더리 넓히기라고 감히 생각하게 된다.


결국 좋은 글을 문장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람을 진정성 있게 살피는 애정과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잘 쓰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정직하게 느낀 것을 글로 표현하되, 봄 햇살 가득한 마당에 앉아 있는 것처럼 읽고 나면 기분 좋아지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는 글이 있는데, 그런 ‘좋은’ 글은 일상의 이면에 흐르는 진실을 감지하는 감수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밤이 되어 책상 앞에서 타닥타닥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온전한 마음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글쓰기의 진짜 비밀이며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비밀이 아니겠는가?


 
글을 쓰는 행위는 남에게 내 보이지 않고 혼자 보는 글조차도 이미 하나의 비평이자 성찰이 된다.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에 가닿고 싶은 욕망이며,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고 타인의 삶에 귀 기울겠다는 태도이다. (전성원, 길 위의 독서, 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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