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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Oct 28. 2020

마음을 돌보는 방법

 식물을 돌보듯 나를 돌본다

화분이 하나둘씩 늘어간다. 친구들은 내가 식물을 돌보고 고양이랑 사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이 든 징표라며 웃는다. 정말 나이가 드니까, 삼십 대까지는 꿈꾸지도 않았던, 돈 안되고 당연히 경력과 무관하며, 혼자서 분투하기 일수인 일들에서 즐거움을 찾게 된다.


우리 집 냥이야 내가 키운다고 하기는 좀 민망하다. 밥을 챙겨주고 화장실 청소 같은 작은 돌봄을 주고 과분하도록 넘치는 사랑을 받을 뿐이다. 냥이는 사랑의 피드백이 부족하면, 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몸을 비비고, 얼굴을 핥아대며 신호를 보내므로 상태를 알아채기도 쉽다. 조금만 행복해도 골골송을 부르며 마음의 상태를 완전히 드러낸다.

그러나 식물 키우기는 좀 다른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주의 깊게 살피고 돌보지 않으며 상태를 알기 어렵다. 마른 잎사귀가 있으면 떼어내야 하고 목이 마른 상태인지, 흙 상태를 관찰해서 물도 주어야 하며, 햇볕과 바람이 적합한지도 계절별로 조정해주어야 한다.

예전에는 선물로 받거나 봄빛에 충동적으로 사들인 꽃이나 허브 화분들은 여지없이 말라죽곤 했다. 그 이유를 요즘 들어 조금 알게 된다. 화분의 꽃과 나무들을 살아있는 것으로 대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돌봤기 때문인 듯하다. 고무나무가 물이 필요할 때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일정에 맞춰, 일테면 매주 수요일 저녁 같은 시간에 물을 주는 것이다. 제라늄에게 필요한 온도와 바람을 생각해 자리를 잡아 주는 대신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곳에  화분을 올려놓고 감상하는 식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집에 새로 들이 크고 작은 화분들이 여러 개인데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있다. 원예 지식이 늘어나서도 아니고 특별한 영양 공급을 해 준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 마음이다. 식물들도 나와 같이 물과 바람과 햇볕이 필요하고,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넘치면 탈이 나는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다만 나보다 참을력이 좋고 과묵할 뿐이라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식물들이 장식품이 아니라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매일매일 아주 잠깐이라도 인사하고 살피게 된다.


언제부터 식물을 돌보듯 글쓰기로 나를 돌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분 속 흙을 비벼 건조 상태를 확인하는 것처럼, 이파리의 윤기를 살펴 건강함을 살피는 것처럼, 자판기를 타닥타닥 치면서 마음의 온도와 습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막 씻어놓은 상추 잎처럼 싱싱한지, 먼지 쌓여 시들시들한지 내가 써 놓은 문장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다. 저마다의 마음에 잎과 뿌리, 아직 움트지 못한 씨앗을 품은 아주 예민하고 여린 식물들이 살고 있다는 상상을 해 본다. 아주 예민하고 이 여린 식물은 과묵하게 돌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사랑스러운 대화가, 혼자만의 고독이, 혹은 노래나 춤이 이 식물을 돌보는 물 주기라면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에게는 글쓰기와 읽기가 그 방편이 되는 것 같다. 과습 되지 않으면서도 부족하지는 않게, 나무 상태에 따라 물량을 조절하듯,  너무 잘 쓰려고 하지 않고, 너무 많이 쓰지도 말고, 그저 적정하게, 날마다 글을 쓰는 일로써 나를 돌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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