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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Dec 24. 2020

새해 사주 보고 생긴 일

"신빨 좋을 때 한번 만나봐"

살면서 점집을 처음 찾아 간 것 날은 서설이 가득 내린 새해 둘째 날이었다.  친한 후배가 신학대학에 다니던 친구가  갑자기 신이 내려 점쟁이가 되었며, 신빨’이 좋을 때 한번 가서 만나 보라고 했다. 신학생의 신내림.. 믿을 수 없는 조합에 궁금함이 동했다.

 

엄마 덕분에 점집 경험이 많은 동료 제이를  꼬셔서 해질 무렵 정릉에 있는 점집을 찾아갔다. 소위 쪽방이라고 불리는 집들이 총총히 박혀있는 골목의 문 하나를 열었더니 바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방이 나왔다. 한때 신부 수업을 받았다는 것이 영 믿기지 않는 후덕진 외모의 삼십 대 후반의 남자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로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혼자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상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제이와 나는 준비해 간 각자의 사주를 꺼내 놓으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남자는 우리가 내 민 사주는 무시한 채 결혼 여부를 묻더니 미혼인 제이에게는 부모님의 사주를, 내게는 남편 것을 물었다. 여자 팔자는 결혼하면 남자에게, 결혼 전에게 부모에게 달렸다나 뭐라나 하면서.. 당장 나와야 할까 싶은데 제이는 원래 점집은 다 그렇다며 내게 눈짓을 보냈다.


내가 알려 준 남편의 생년월일과 대강의 태어난 시간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남자가 말하는 남편의 성격과 나와의 관계가 딱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그냥 짐작으로 던졌다고 하기에는 너무 정확하다고 느껴졌다. 남자는 남편이 곧 직업을 바꾸게 되는데, 대중 앞에 크게 나서는 일이라고 했다.(나는 그때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었다) 사실 나는 남편의 인생보다 내 앞날이 훨씬 궁금했기 때문에 됐으니 내 사주나 어서 봐달라고 보챘다. 남자는 남편 잘된다고 하면 끝난 거지 네 건 왜 궁금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볼 것도 없어. 아주 좋아. 다 좋아. 그냥 편안한 사주야. 보다보다 이런 편안한 사주는 처음 봐. 지금 유학 준비한다고? 뭘 망설여. 그냥 가면 되지. 걱정 말고 갔다 와


공연히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좋다고 하니까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내 순서는 휙 지나가 버리고, 남자는 제이의 사주를 붙잡고 한숨을 푹 푹 푹 쉬었다. 허름한 지붕이 내려앉을 기세의 한숨이었다.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어 못 죽네”

남자에게 제이와 내가 같은 직장을 다닌다고 했을 뿐, 제이가 비정규직이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니 기가 막혔다. 당시 제이의 경제 사정은 가족 문제가 얽히며 최악이었다.


“일단 집에서 나와야 해. 무조건 짐 싸서 나와. 그래야 부모도 좋고 당신도 좋아. 그러면 중년 이후에 잘 풀릴 팔자야.” 그냥 재미 삼아 보려던 신년 운수였는데 제이의 상황을 족집게처럼 맞추니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밤 점집에서 나와 서설 쌓인 정릉의 골목을 걷던 순간들이 생생한데 어느덧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난 십 년을 돌아보니 결과적으로 그 점쟁이 말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나는 그해 여름 미국행을 결정하여 2년 뒤에 무사히 돌아왔고, 이후에도 남들 보기에 별일 없는 단순한 삶을  살고 있으며, 남편은  그 뒤에 남자가 말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제이는 점괘대로 곧 옥탑방 월세를 얻어 집과 가족으로부터 탈출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우연과 행운, 물론 노력의 결과로 버젓한 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속 편한 남자와 40대 후반에 결혼을 하여, 부자는 아니지만 돈 때문에 걱정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이 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신통방통하게 들렸던 남자의 점괘는 사실 우리의 상담 내용에 다 들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점쟁이 말을 듣지 않았어도 나는 유학을, 제이는 출가를 결정했을 것이다. 갈팡질팡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자의 단언이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리고, 재미난 후일담이 하나 더 있는데 그 점쟁이에 관한 것이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사실인데, 남자는 몇 년 뒤에 점보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생을 크게 전환했는데, 어느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되었다. 정치인 개인의 운세를 보는 '보좌'를 하는 것은 아닌가 했는데, 듣자 하니 진짜 공무를 수행하는 보좌관이 되신 것이다. 그 남자는 본인의 인생이 그렇게 흘러갈 줄 알았을까?

  
인간의 뇌에 대해 현대 의학은 사실 거의 밝혀낸 것이 없다. “신기’라는 것은 어쩌면 주술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밝히지 못한 뇌의 특별한 전기 작용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올리버 섹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보면 인간의 뇌신경이야 말로 디즈니 만화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신묘한 일들을 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뇌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외부적으로 뇌 조작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조금씩 예지력을 가질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시대가 오면 미래를 발설하는 것을 법으로 금할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미리 안다면 사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재미없겠는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이 우리를 두렵고 힘들게 하지만 그 알 수 없음 때문에 다시 희망을 품고 용기 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믿거나 말거나 하면서 신년운수를 찾아보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을 테고.


그날 우리는 정릉의 점쟁이와 꽤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같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걱정거리를 털어놓을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했었다. 그리고 복채로 각각 3만 원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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