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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페디엠 Aug 10. 2020

12명의 성난 사람들

자유로운 인간의 징표(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영원히 고뇌하는 불확실성)

  헨리 폰다 주연의 오래된 흑백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묵직한 주제를 던져줍니다. 뉴욕시 빈민가에서 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인을 저질렀다는 소년에 대한 재판에서 배심원 12명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유죄라면 소년은 사형을 받게 됩니다. 이들의 과업(task)은 합당한 근거에 의해 유죄와 무죄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영화 초기에는 만장일치가 매우 쉽게 이루어질 것 같아 보였습니다. 사형을 다루는 심각한 사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고 농담까지 하면서 곧 유죄로 결정할 것 같았습니다. 위원장이 된 야구코치는 의논할 것인가? 아니면 거수할 것인가?를 물어보고는 사람들이 거수를 원하자 유죄 여부를 거수로 신속하게 결정을 합니다. 그러나 12명 중 11명은 유죄에 손을 들었는데 유독 한 사람만은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반대의견을 낸 사람은 극 중 건축가인 헨리 폰다였습니다. 유죄라고 생각하는 배심원들은 헨리 폰다를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를 문제 해결적인 의사결정 단계에 따라 살펴보면 보다 깊이 있게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상황과 문제를 파악하고 정의하는 단계입니다. 영화에서는 ‘합당한 근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주인공을 제외한 사람들의 주장이 합당한 근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직관과 편견에 의한 잘못된 믿음에 의한 주장이었음이 영화를 통해 여실히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참 많습니다.  


  둘째 단계는 자료의 수집과 분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칼과 증인의 진술에 대해 ‘진짜 그러한가?’ 하는 의심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헨리 폰다는 ‘정당한 의심’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다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매우 특이한 모양의 칼은 결정적인 증거로 보였지만 주인공은 똑같은 칼을 보여주며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전당포에서 구입했다고 보여준 칼은 매우 흔한 칼이었습니다. 증인들의 이야기도 실제로 재연해보니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눈이 안 좋아 안경을 끼는 사람이 안경 없이 본 믿을 수 없는 증언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미리 결정해놓고 그에 맞는 이야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당화와 합리화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매우 강렬한 본성입니다. 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그 회의를 하기 전에 충분히 알아보고 검토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회의에서 알아보고 결정해야지!’라고 생각해서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 애가 사는 동네를 산책하다 전당포에서 6달러 주고 샀소(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칼)

  셋째 단계는 대안 모색과 검토의 단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사안이면 너무 쉽게 생각하고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에 그냥 동조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대안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싫어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의견을 말할 때 일부로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표현 중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은 중세 로마 가톨릭에서 추기경을 뽑을 때 일도적으로 후보자의 약점을 말하는 사람을 두는 제도였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어느 한 사람의 의견을 모두가 같은 문제없이 받아들이게 되었을 경우 그 결정이 잘못된 결정일 경우 질주하는 열차에 올라탄 것과 같이 헤어 나올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단의 자기 합리화와 집단의 결정을 반대하는 사람에 대한 마녀사냥을 하기 쉽습니다. 의사결정을 해야 할 경우 너무 빨리 결정하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가설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며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야 합니다. 만약 내 대안이 틀렸을 경우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다시  모색해야 합니다.


  넷째 단계는 선택된 대안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입니다. 선택된 결과에 대한 예측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는 만약 유죄라면 소년은 사형에 처해지며 무죄라면 사면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선택된 대안이 가져오는 결과는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바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반대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좋은 결과가 생기기도 합니다. 선한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합니다. 수많은 정책과 복지서비스와 프로그램들이 모두 국가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개선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의도와는 다르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괴테는 '양심은 관찰자의 덕목일 뿐 행동하는 사람의 덕목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현실은 너무도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다섯째 단계는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만장일치로 소년에 대해 무죄를 결정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 과정에 있어 주인공의 합리적인 의심과 근거에 의한 문제 접근 방법이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정하는 선택은 목소리 큰 누군가의 강한 주장에 어쩔 수 없이 이끌려 가는 결정이 의외로 많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결정과 선택인데도 분위기에 휩쓸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이를 막기를 위해서는 주인공이 했던 것과 같이 배심원들이 모이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왔습니다.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고 사실에 근거한 자료를 준비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모양의 회의에서 아무 준비 없이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하고 ‘분위기도 모르는 이상한 사람’이 되곤 합니다.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과연 논쟁과 논의가 가능한 사회인가? 에 대해서는 의심이 듭니다. 만장일치로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제도를 적용한다면 과연 우리의 수준에서 가능할 까? 하는 의심이 들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나이가 많거나 윗사람이 이야기하는 하고 결정한 것에 대해 토를 달거나 반대하는 것을 매우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으로 보는 문화입니다. 좋은 전통일 수도 있으나 매우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아랫사람의 역할보다는 나이가 많거나 윗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90년생이 온다 책의 '직장인 꼰대 체크리스트'를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섯째 단계는 결정된 사항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만장일치로 결정된 무죄판결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결정된 것을 그대로 잘 이행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단계일 것입니다. 모두가 손뼉 치며 잘 결정한 것을 어처구니없는 시행으로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하고 점검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막상 무엇인가 중요한 결정을 해 놓고 그 시기를 놓치거나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결정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점검하고 다시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한 명만 하기보다는 서로가 크로스 체크(cross check)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곱째 단계는 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무죄로 결정된 결과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 한 실수를 다시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닥치면 똑같은 잘못된 선택과 결정을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잘못된 선택과 결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 바둑에서 ‘복기’를 하듯 그 결정 과정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단계 한계 살펴보면 의외로 많을 것을 깊이 있게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보다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아래층에 살던 노인의 증언입니다. 노인은 복도 아래쪽에 있는 침실의 침대에 누워 위층의 소년과 아버지가 씨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죽여버릴 거야!’ 하는 소리를 들었고 곧이어 아버지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자 현관문까지 갔을 때 아들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법정에서 진술합니다. 누구나 그 이야기를 들으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중요한 논쟁의 지점을 찾아내었습니다. 한쪽 발이 불편한 노인이 과연 그 짧은 시간 안에 현관문까지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 상황을 재현한 결과 모두가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간이 무려 41초나 걸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짐작한 것을 그대로 믿어버리거나 그럴 것이다 라고 결정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인공처럼 중요한 이슈와 논쟁의 소지가 있는 상황이 있다면 가설을 세우고 실제적인 검증작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에 의해 과학적인 검증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가슴에 꽂힌 칼에 대한 증거입니다.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간 소년이 밤에 영화를 보고 돌아오니 아버지가 칼에 찔려 죽어있었다고 소년은 주장합니다. 소년은 집을 나갔을 때 칼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합니다. 배심원 중 한 명은 아버지를 죽인 이 칼은 매우 희귀한 칼이기에 소년이 잃어버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칼을 봐요. 이런 칼이 흔합니까? 전 이런 건 처음 봐요’  주인공은 가져온 증거물인 희귀한 칼이 꽂혀있는 테이블 위해 자신이 가져온 똑같은 희귀한 칼(?)을 멋지게 꽂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그 순간 모두가 놀라 입이 쩍 벌어집니다). 주인공은 소년이 사는 동네 전당포에서 단돈 6달러에 이 칼을 구입했다고 말합니다. 매우 희귀하여 그 소년만이 가진 칼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칼인 것입니다.


  셋째, 키가 작은 소년이 거구인 아버지를 칼로 찌를 때의 각도입니다. 거구의 아버지 몸에 칼은 위에서 아래로 꽂혀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빈민가의 칼싸움을 자주 목격한 배심원은 키가 작은 사람은 아래에서 위로 칼을 찌른다고 말하며 위에서 아래로 찌른 것은 소년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더욱 가지게 합니다.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 할 경우 그 판단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분야 전문가를 찾아 그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료를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넷째, 아파트에 사는 여인의 증언입니다. 여인은 잠자리에서 창박을 보았을 때 전철이 지나는 창문을 통과해서 소년이 아버지를 찌르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안경을 끼는 사람이었고 20미터나 떨어진 곳을 그것도 밤에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자 그 여자자 제대로 못 본 것을 이야기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거 놔, 죽여버릴 거야! (배심원 중 한 명이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뱉은 말) - 헨리 폰다는 '정말 날 죽이겠다는 뜻은 아니지요?'


사람에 대한 분석


  리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야구코치인 위원장은 리더로서 이 중요한 결정을 잘 이끌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공식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접근하기보다는 쉽게 쉽게 일을 진행하려는 모습으로 그 회의의 온도를 너무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빨리 일을 끝내고 나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위원장마저 그렇게 진행하면 중요한 것에 대한 결정이라기보다는 그냥 요식행위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리더는 주인공처럼 회의에 오기 전에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작업과 실제적인 노력(전당포에 가기 등)이 필요합니다. 그 사안에 대해 가장 많이 고심하고 알아보는 노력을 해야 할 사람이 바로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다수의 의견을 이끌어가야 하는 공식적인 리더(골치 아픈 것은 싫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


  태업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회의에서는 농담과 장난을 하거나 회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가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가 당면한 과제에 몰두해서 이일에는 관심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의견이 무시되었다고 생각하고 격렬하게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도 있으며 개인적인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폭발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모임이나 회의에서나 이와 같이 태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없는 것은 천국에서나 가능할 것입니다. 땅을 디디고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태업을 하는 사람이 늘 존재하고 그려려니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태업하는 사람들을 회의 주제에 참여시키고 공통된 의견으로 이들을 이끌어야 하는가? 늘 고민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업하는 사람을 배제하지 않고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 늘 고민해야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처럼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집단, 편견에 쌓여 주장만 하는 집단, 우유부단한 집단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경계들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어느 모임에서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가 어느 모임에서는 편견에 쌓여있을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모임에서는 케세라세라(뭐가 되든지 될 것이다)를 외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합리적인 대안에 대해 늘 고민하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그러한 사람이 못된다면 그래도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자유로운 인간의 징표는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영원히 고뇌하는 내적인 불확실성에 있다'(런드핸드 판사)-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알렌 스키) 중


* 사진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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