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단순히 신체적인 ‘안전’만 보장하면 충분할까요?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는 감옥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행복을 느낄 아이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아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감각’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이는 단순한 물리적 보호가 아닌,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는 적절한 자유와 규율을 통해 획득됩니다. 부모가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자유를 허용하는 ‘그래’와, 적절한 한계를 설정하는 ‘안 돼’가 균형을 이룰 때, 아이는 세상을 안전하게 탐험할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생각하는 ‘안전’은 외부 세계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살피고, 날카로운 물건을 치우며, 위험한 행동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도 같은 수준의 보호만 유지된다면, 과잉보호로 이어져 오히려 안전감을 얻기 어려워집니다. 아이는 높은 곳에서 스스로 내려올 수 있어야 하고, 날카로운 물건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점진적으로 확장된 자유 속에서 아이는 세상과 친숙해지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갑니다.
또한, 안전한 환경은 단순히 물리적인 보호를 넘어 아이의 감정적 충동과 그 결과로부터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감정을 더 강하게 표현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부모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부모가 적절한 한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아이가 도전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저의 경우, 아이가 통잠을 자고 낮에 일정한 패턴이 형성되자 한동안 남편과 와인을 마시며 여유로운 저녁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아이의 패턴을 맞춰 제가 원하는 활동을 조금씩 할 수 있었고, 아이도 식사 시간에는 혼자 앉아 차분하게 밥을 먹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밥을 먹을 때 의자에서 내려가려 하거나, 엄마 아빠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아이의 감정적 충동을 인정하면서도, 그 감정이 무질서하게 흐르지 않도록 적절한 틀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강하게 표현하며 부모의 반응을 시험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모가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면 아이는 점차 자기 조절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한동안 밥 먹을 때마다 협상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와 같은 음식을 먹고 싶어 했고, 때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며 장난을 쳤습니다. 처음에는 ‘안 돼’라고 단호히 말했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전략을 시도했습니다. “이거 서아 조금만 줄까?”부터 시작해 한 껏 애교를 섞은 “한번만 먹어볼게요”까지, 협상의 기술이 점점 발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심지어 낮잠을 자는 척하면서 몰래 나와서 식탁 위 음식을 가져가 먹는 기발한 행동까지 보였습니다.
이에 우리는 식사 시간을 일정하게 정하고, 타임타이머를 설정하여 아이가 정해진 시간 동안 자리에서 식사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또, 엄마 아빠와 같은 음식을 한두 숟가락씩 맛볼 기회를 주며, 아이가 스스로 조절하는 연습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규칙이 정해지자 아이도 자신의 감정적 충동을 점점 조절하며 식사 시간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가 혼자 집 안을 탐색하며 자신의 공간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안전하게 탐색도 하고 정리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재정비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온 집안을 어지르며 물건을 제멋대로 늘어놓았지만, 며칠간 어질러진 공간을 방치했더니 오히려 아이가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정리하자!”며 자발적으로 물건을 제자리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회를 활용해 우리는 정리의 기준을 조금씩 높이며 아이가 정리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의 한계를 실험합니다. 부모가 일관성 있게 반응하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게 되고, 더욱 과감한 도전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며 아이는 감정적 충동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점차 자기 통제가 가능한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청소년기에 이르면 무모한 도전이 더욱 과감해지는데, 이는 부모의 통제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확인하려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위니코트에 따르면, 이러한 감정적 충동은 놀이와 문화적 경험을 통해 조절될 수 있으며, 부모가 일관된 태도로 반응할 때 아이는 더욱 안정감을 느낍니다.
또, 위니코트는 이러한 아이의 성장과정을 예술가가 작품활동을 하는 과정에 비유합니다. 저 또한 이와 관련하여 글을 쓴적이 있는데
(https://brunch.co.kr/@equationofmom/33),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충동과 안전감 사이의 투쟁을, 작품활동을 하면서도 반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유롭고 싶다는 충동과 시스템에 맞추고 싶다는 안전감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을 하면서 말입니다.
결국, ‘안전하다는 느낌’은 신뢰할 수 있는 보호자에게서 적절한 자유와 통제를 제공받을 때 형성됩니다. 이를 위해 부모는 일관되게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니코트는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개념을 강조하는데, 이는 부모가 특정한 ‘이상적인 부모’의 역할에 맞추어 자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장점과 단점을 포함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와 마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좋은 부모’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며 스스로를 가두고 연기하면, 아이는 부모의 반응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럴 경우 부모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지 않게 보일 수 있고, 아이는 혼란과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 부모가 자신의 감정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아이와 소통할 때, 아이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안전감을 얻고, 부모를 더욱 신뢰할 수 있습니다. 즉, 완벽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도 실수할 수 있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힘들 수도 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면서도 아이와 신뢰를 기반으로 관계를 맺을 때, 진정한 안전한 환경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외부의 통제가 점차 약해지고 자기 통제가 가능해지는 순간, 아이는 비로소 심리적으로 자유롭고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낄 때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한지 경험해 보았다면, 그리고 그러한 자유가 외부 조건과 상관없이 온전히 내면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 아이가 그런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