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제주생활 1년차와 2년차 사이
별 탈 없이 지내던 중 한 번씩은 찾아온다는 회의감?
나에게도 갑자기 찾아왔다...소리 소문도 없이...
무탈히 1학기를 잘 끝내고 술도 잘 먹고 잘 놀면서 일도 하던 중
과연 제주도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서울로 다시 가야 하는가에 대해
급작스럽게 고민을 하게 된 계기가 몇 개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아무래도 제주도에 있다보면 제주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란 두려움이 왔다.
제주도민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경쟁이란 것과는 거리가 있었고
그냥 제주도에 눌러 앉아 편하게 살면 되지라는 느낌이 팽배했었고
어차피 대학원은 이력서에 한 줄 올리기 위한 것 아니겠냐는 분위기가 가득했었다
인생 이거 하나 보고 온 사람인데 억울하다...라는 느낌이 들었고
다시 한 번 서울로 튈 준비를 해보겠다고 등록만 해 놓은 상태에서 자체 휴학을 했고
그리고 다시 한 번 올라가기 위한 준비를 한 결과 1차 시험에 너끈히 붙었다
그런데 1차 시험 끝나고 2차 시험까지의 기간 동안...사람이란 변덕의 동물이랬던가
제주도에서도 제대로 못하는데 육지가면 그게 될까...라는 불안함이 더 많이 다가왔더랬다
뭐라 말할 수도 없고...그렇다고 이게 옳은건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그럴 바에는 그냥 제주도에서라도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한 학기를 시원하게 말어먹었다
(물론 학점은 나중에 다 메꿨으니...)
그리고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을 맞이해 난 더 이상 황량한 학교 후문이 아닌
지금은 제주도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은 동문시장 뒤로 이사를 가게 됐고
소득없는 자체휴학의 결과인 성적표를 바라본 채로 제주도에서의 첫 해를 마무리지었다.
1년의 생활 끝에 남은 건 두어 번의 통역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1학년인데 실제 통역을 간 것도 흔친 않았다)
쓰레기와 술병으로 가득한 원룸
체념이란 걸 다시 한 번 배우게 된 헛헛한 마음
그리고 정식으로 휴학을 했다
어차피 학기 맞추려면 한 학기 휴학이 필요하던 차였으니까...
그 때 걸려온 지도교수님의 전화
"마침 골프장 통역 필요하다는데 한 번 안 해볼래?"
"가겠습니다"
그리고 2006년 2월부터 6월까지 근 4개월을 골프장으로 출근했다.
한참 제주도 골프장 붐이 있던 시절이었고
외국 조형사 (shaper)가 들어와서 코스를 갈고 닦던 시절
토목이라고는 군대 있을 때 측지병 특기로 알게 된 거 말고는 하나도 없던 때인지라
일주일 전부터 골프 용어에 공사장 용어에 벼락치기를 한 후 골프장으로 갔다
춥고 지리한 겨울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기승을 부리던
눈과 비 때문에 땅이 질퍽거려 도저히 공사가 되지 않던 시기에
진흙밭에 발이 빠져가면서 프로젝트라는 걸 시작했고
숱한 싸움과 공기 연장과 전형적인 문화 차이를 몽땅 겪고 나서야
여름이 왔다...그리고 다시 복학할 준비를 하면서
나와 같은 생각으로 다시 서울로 간 친구를 부러워하며 여름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