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인생

5. 제주살이 2년차의 삽질

by 안기석

정말 떠돌이같이 돌고 도는 제주도 살이란

스무 살 때부터 나와서 살던 나에게도 색다름 그 자체였다.


물론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재미도 있었고

그 덕분에 이렇게 다시 제주도에 내려와 동네 커피숍에서 한 잔 하면서

담배 빨면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거겠지만...


6월초 나에게 남은 건 진흙 투성이의, 사이즈 겨우 찾은 안전화와

서로 차가 막혀 오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표현은

Chinese cluster f***이라 알려준 암내 풀풀 나는 콧수염 외국인의 욕과

제주도와 골프장의 지질 구조뿐이었던 프로젝트가 끝났다.


후일에 다시 제주도에 내려와서 일을 했더랬고

같이 일해볼 생각도 했었지만 막판에 난 너의 메이드가 아니라며 대판 싸우고

여자 통역이랑 일하는 다른 친구는 빨래도 해주는데...라는 말을 듣고 염병한다고 했으니

굳이 그 아저씨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진 않았다

(뭐 덕분에 운전면허 취득 5년 이후 운전이란 걸 시작하긴 했다)


이사간 동네와 학교 까지의 거리는 버스로는 40분, 차로는 20분이었고

마침 운전도 배우게 됐으니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렌터카 주구장창 찾아가서

전에 뚜벅이로 살던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과 생활반경으로

아 나도 드디어 관광객처럼 다닐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만만함이

활명수 마시기 전 땡떙한 복부모냥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활명수같은 상황을 몇 번 맞이하여 다 꺼지긴 했지만...)


복학 전까지 두어 달 정도 시간도 있었고

내려온 김에 사람들도 더 사귀고 해야지, 그래야 제주도에 괸당도 만들고 하지...

(주: 괸당이란 동네 사람들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그런데 이 괸당이 우리가 생각하는 동네 사람 그 이상으로 선거 때마다 빨간당에 표 던져주는 멍청한 당보다 훨씬 세다. 오죽하면 빨간당 이기는 게 괸당이라고 했던가)


한참 대학원 준비할 때부터 취미로 갖게 된 사진을 찍겠다고 돈 조금 모아놓은 걸로

카메라도 사고, 렌즈도 사고, 이것저것 장비도 사고, 뻔질나게 찍고 다니고

아는 사람들 차에 얻어 타기도 하고, 혼자 가기고 하고 그랬다

(중고거래의 지옥 제주도니까 그나마 바꿈질 덜 했지...)


숱하게 셔터를 누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오...드디어 제주도 제대로 보는구나 싶었고

새벽에 오름에 올라가서 일출 찍겠다고 가장 가파른 면을 뛰어 올라가던 패기도 있었으나

가내 경제사정 악화로 인해 결국 장비 다 팔고 똑딱이 비스무리한 걸로 눈요기나 하다가

사진 다 찍고 돌아올 때 맞춰 가서 뒷풀이에서 입사진을 찍던...

(그래도 나름 재밌게, 대형 인화까지 하면서 찍었더랬다...그 때 그 모델은 어디에?)


렌트해서 다닌답시고 렌트비에, 기름값에

게다가 알게 모르게 생긴 스크래치 덕분에 물어분 유휴차량비에

제한속도 50km인지 모르고 달렸다가 90km 넘게 나오는 바람에 벌금도 거하게 내주시고

벌점 바가지로 먹은 것도 억울한데, 카메라에 찍힌 사진 속 조수석은 누구냐는 부모님의 추궁이...

(네 그 분도 어디에서 누군가와 잘 살고 계시겠지요...)


그러면서 8월말이 됐고

난 다시 학교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동기들은 거의 유부들이었고, 하나 남은 유부아닌 동기는 날 못 잡아 먹어 난리였고

나도 뭔가 재밌게 복학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등신같은 기대감은

등짝 스매싱을 맞은 나의 등판처럼 밋밋해져 사라졌다


그리고 돌아갔다.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늘 있던 사람들,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휴학해버린 많은 동기들

이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던 한 기수 후배들


어차피 같이 학교다닐 사람들이니 술이나 먹고 놀았다

(안 그래도 먹을 판이었지만...)


대신 대학교 3학년 때처럼 살아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당시에는 집에도 거의 안 들어가고 도서관에서 먹고 자고

그러다보면 애들이 와서 수업가자고 깨우고, 그럼 일어나서 수업 듣고

정말 뭔가에 홀렸던 시절이었다

(그 덕분에 장학금도 타고...뭐 그랬어요)


그리고 내 인생도 뭔가에 홀린듯 흘러흘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떠돌이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