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페이지 - 입대 20주년
원래 7편을, 그리고 그 이후를 계속 써보려 했으나
새벽에 술 마시던 중 달력을 보니 10월 21일...
그리고 20년 전 10월 21일이 생각이 났더랬다...
아...그렇구나...20년 전 그 날 새벽에 나는 입대 당일을 맞이하여
한참 천리안에서 채팅을 하고 있었고, 역시나 그 날도 내 옆에는
1.5리터 콜라 한 병과 싸구려 국산양주 한 병이 놓여 있었으며
시원하게 마시기 위해서 창문을 살짝 열여놓고 그 틈바구니에 콜라를 끼운 상태로
깡통인지 뭔지 모를 작은 통 하나를 준비해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실 나의 예상 입대일은 1996년 10월 21일이 아닌, 7월 1일이었다.
입대 당시 생겼던 상근예비역이란 제도를 한껏 활용했고 그 결과
체중으로 인한 4급 현역 판정으로 상근예비역이 됐고...
그러던 와중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2월에 청주에 가서 공군 입대 시험을 봤다
4개월이 더 긴, 30개월이었지만 도중에 자주 나올 수 있다는 장점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뭐 정 안 되면 상근으로 가면 된다는 생각에 필기 시험에 신체검사까지 다 받고
가뿐히 합격을 하고 입대를 기다렸던 결과 7월 1일로 잡혀서 진주 공교사로 갔다.
부모님도 오시고, 대구사는 고모 내외분도 오시고, 여러 식구들이 와서 배웅해주고...
아 나도 이제 이대로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들어갔는데 이건 뭐 아수라판이었다...
대체 뭘 어쩌자는건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고, 죄다 뛰어 다니기만 했고...
머리를 거의 삭발 수준으로 밀어놓고, 뛰고, 뛰고, 또 뛰고...
그러다 더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아니 그냥 못 논 게 아쉬워서 나와버렸다.
집에 갈 사람 나오라고 할 때 무슨 정신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는지...
그리고 교관들은 집에 간다고 하니 갑자기 존댓말을 쓰는건지...
마산 터미널에 와서 집에 전화했더니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동물농장 사파리같은, 세상 듣도보도 못한 동물 이름이 귀에 꽂혔다.
(내가 욕을 많이 하는 건 다 유전...인가...)
그리고 며칠 가출아닌 가출을 한 후 집으로 갔다.
다시 한 번 난 자연농원 사파리에 온 듯한 기분이었으며 현장감은 더 했다
게다가 뭔가 날아다니기까지 했으니...얼른 사파리 문을 닫았으면 하는 바람만...
그렇게 근근이 버티던 중 영장이라는 게 날아왔으며 거기에 찍힌 날짜는 1996년 10월 21일
그리고 난 그렇게, 살다가 군대 두 번 가는 흔치 않는 놈이 되었으며
교회에서도 두 번째 군대가는 저 총각을 위해 기도해줍시다...라는 축도를...
(알고 봤더니 식구들이 날 외면했단다...꼴도 보기 싫어서였겠지...그 맘 안다...)
그리고 다시는 기어나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논산훈련소에 갔고
연병장을 건너는 순간, 요단강을 건너는 기분이랄까
-다, -다라던 말투는 -야, -야로 바뀌면서, 다시 한 번 사파리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사파리는 더 살벌했다. 소수의 동물이 다수의 동물을 굴리고
다수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딩굴딩굴...
머리 깎이고, 담배 피우다 걸린 놈 때문에 다들 얼차려를 받는 동안
머리 깎아야 한다는 이유로 이발소에 앉아 있어서 참사를 면했던
(그러나 그 전에 얼차려 따로 받은 건 안 비밀...)
금연 훈련소라는 명분으로 그 날부터 담배 구경도 못했고
꽁초 피우다 걸린 놈들은 퇴소시키겠다고 해서, 이번마저 그러면
사파리가 아닌, 껍데기가 벗겨진 채 마룻바닥이나 벽에 걸릴 거 같아서...
(그 후로 6주간 금연을 했다...물론 한 방에 무너졌지만...)
그리고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첫 날 밤이 왔고
극렬 올빼미족이었던 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취침 소등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아마 2년 후 겨울
2018년 12월 20일이 되면
난 아마 다시 자리에 앉아 제대 20주년이라는 명목 하에
술을 진탕 먹겠지?
지금은 민방위도 끝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