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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석 Feb 25. 2017

6. 사카사카 오사카 (4일)

가는 이, 새로운 이, 우연한 이

까치까치 설날도 밝았고, 1월도 벌써 2일이 됐고 오사카 일정도 슬슬 막판으로 달려가고.

솔직히 더 있고 싶었는데 주인장네 휴가간다고, 그래서 아쉽지만 내일까지만 있고 다음 일정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오면 되니까라는 희망으로.

엣헴. 잘 잤느냐 닝겐놈아. 일어났으면 おはようございます라고 인사해야지 않겠니?

はい、はい、エンペさん。

오늘 아침은 곁다리로 얻어먹은 오니기리. 소금 살짝 찍어서 옆에 있는 참치랑 먹으니 맛이 그리 좋더라. 원래 밥 주면 안 되는데 그냥 달라고 해서, 운 좋게 한 점하게 됐다는.

왼쪽은 네코네코 주인장인 앙트완, 가운데 골무 쓴 여자인간은 포르투갈에서 현대무용 전공하고, 일본 들어와서 일자리를 알아본다는 松尾芭蕉 (마츠오 메이)짱. 알고보니 망년회 거하게 하고 지하철에서 주무셨다며...

이 날 메이짱은 고베로 간다고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나의 다음 행선지는 고베니까 만나자 이야기하고 라인 아이디 주고받는데, 라인은 흔들면 서로 인식한다고 해서 라인 깔고 쉐킷쉐킷했다가 새끼새끼 욕할 뻔.

왼쪽에 있는 냥반이 주인장 카오루 (芳)씨. 이래저래 잘 챙겨줘서 정말 좋았어요. 곧 봐요.

사브리나. 도쿄에서 넘어와서 여권을 잃어버리는 참극을 맞이했으나 카오루상이 분실물보관소에 전화하고, 찾으면 연락달라며 부탁했는데, 정말 운이 좋게 지갑을 찾았다. 덕분에 사브리나는 웃으며 세밑을 보냈고, 결국 만취하여 침대에 실려갔다는. 이 날 아침에 체크아웃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아저씨라길래 삐쳤더니 아저씨 맞다고, 자기 엄마보다 한 살 많다고...(으흑흑) 공부 잘 하고 있으려나?

대만 아해 제임스. 의학 공부한다고 했고, 윗 침대에서 자던 친구. 술을 많이는 안 먹으나 같이 이래저래 먹자해서 친해진 아이. 도쿄에서 오사카오는 밤 버스타고 오다가 힘들어 죽을 뻔했다고. 그 이야기 듣고 야간버스 접었다. 그거 탔다가는 내 몸이 접힐 거 같아서.

새해맞이, 왼쪽부터 앙트완, 대만 커플, (나), 사브리나

이러고 두어 시간을 더 마셨다. 결국은 나 혼자만 남음.


사실 건넌방에 한국 남자애들 둘이 있었다. 새해고 하니 같이 한 잔 하자고 했는데 자기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그래서 안 되겠다고 말하더라. 아침에 씻고 나오는 것만 보고 낮에는 하루종일 안 보이고 저녁 늦게 들어와서 자기네끼리 방에서 뭐 먹더라는 (원래 게스트하우스는 방에서 취식 안 돼요).

글쎄, 뭔가 꼰대기질일지 모르겠지만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정보도 공유하고, 놀고 즐기는 곳이 아닐까 싶다. 그 재미로 계속 게스트하우스만 다녔더랬고. 친구와 같이 오는 여행도 좋지만 친구끼리만 어울리는 게 아니라,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노는 재미는 어떨까 싶은, 그래서 더 아쉬운 느낌이 남았다. 관광이야 언제건 할 수 있지만 이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가정요리 톤보쵸. 이 곳에 대해선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한국사람이 하는 이자카야라며 꼭 가보라는 카오루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저녁에 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2일부터 영업을 한다고 하니 가기 전에 딱이지 않겠냐며, 밤을 불사르리라고 굳은 결심!

다시 우메다역으로 나왔다. 돌아다니던 중 작은 신사 비스무리한 게 있어서, 동전 몇 개 넣고 새해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 두 번, 박수 두 번, 인사 한 번. 들어주십셔...

우메다역 안에서 찾은, 진짜 재밌고 맛난 맥주집. 이름은 molto. 스탠딩이라 서서 마시고, 낮에도 사람들이 꽤 많고, 맥주는 물론 와인에 여러가지를 파는 정말 맘에 드는 곳. 오사카에 사는 거였으면 회수권 끊어서 먹어도 될 거 같았다. 스몰 사이즈가 5,800엔, 미디엄이 10,000엔, 10잔 가격으로 11잔 먹고, 산 당일부터 유효하니까 두세 번이면 본전 뽑을 각. 

오오. 말로만 듣던 히타치노네스트, 게다가 생맥주라니! 이건 꼭 먹어야겠다, 안 먹으면 후회할거다라는 생각으로, 난바 까짓거 안 가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눌러 앉아 먹었다. 물론, 담배와 함께. 일본은 흡연과 음주를 함께할 수 있는, 정말 좋은 나라입니다. いいね。

역시나 오스스메인 돗토리현 (鳥取県) 와규로 만든 로스트 비프 & 감자 샐러드 (ポテサラダ)

밀맥주와 함께 슉~ 역시 술은 낮술이랬다. 오후 세 시에 벌써 와인 한 잔에 맥주 두잔으로 시작.

캬하하하!!!

다시 도톤보리로 가서 길거리를 배회하던 중 시선을 끌던 F1 시뮬레이션 오락실

10분에 1,000엔이라길래 까짓거 한 번 해보자고 들어갔는데 우오, 겁나 어렵다.

게다가 스티어링휠은 따로 떼서 부착하는 형식으로 F1과 동일한 모델.

기어는 역시 패들 시프트, 시동도 버튼으로 걸면 된다.

아이 사고 싶어 ㅠ

이렇게 생겨 먹었다. 장갑 안 끼고 운전하면 수전증 덜덜할 판이라 장갑을 끼고 운전을 했는데도 손 아파 죽을 뻔. 10분이 이렇게 길었나 싶지만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나는야 막돼 먹은 운전자.

밤에 피는 구리코상을 보러 갔다가 길거리에 나앉은 관광객 코스프레가 하고 싶어서, 타코야키에 생맥주를 먹기로 한다. 어차피 오늘 밤은 무슨 밤? 먹고 죽는 밤. 끄어

대략 850엔 정도면 생맥주 한 잔에 타코야키 다섯 개를 먹을 수 있다. 사람들도 많고, 맘 편하게 앉아서 담배도 피우고, 사람 구경도 하는, 그래서 더 재밌는 곳.

다시 우메다역으로 컴백. 재작년에는 헵파이브에 가서 관람차도 타고 그랬지만 오늘은 패스하겠다. 술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까 위에 있던 톤보쵸로 왔다. 정월 추천 메뉴만 판단다. 물론 정초에만 잠깐 이렇게 파니까, 메뉴판은 소용없다고 하더라. 이런저런 안주가 눈에 들어오니, 배는 덜 고프지만 이것저것 먹어보기로 하고 슬슬 시켜보자. 혼잣말로 한국말을 했더니 주인장이 놀라면서 

"한국사람이에요?" "네"

"이 동네는 무슨 일로?" "관광 반, 일 반 뭐 그래요"

그러더니 신년 서비스라며 내준다.

금박 (金箔)이 들어 있는 사케에, 멸치 조림은 서비스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길래 그러십시오라고 했다. 

새해 복은 역시 먹을 복으로 시작하는거다.

로스에 곁들여 먹는 파 (ネギ), 양파를 일본어로 다마네기 (玉ねぎ)라고 하는 건

말 그대로 달걀같이 생긴, 둥근 파라서 다마네기라고 한다. 직관적이군요.

츄하이 (チューハイ) 한 잔. 라임 츄하이였는데, 츄하이란 탄산이 들어간 과실주 비슷한 것으로, 위스키를 탄산에 섞어 먹는 하이볼 (ハイボール)과는 차이가 있다. 맛도 상쾌하고, 도수도 낮아서 식전에 한 잔 쇽~하면 음료수같이 쑥쑥 들어가는 맛. 그래서 날 더울 때나, 피곤할 때 먹어도 슉.

내가 찾던 딱 그런 집이었다. 주방을 둘러싼 바, 많아봐야 8명이면 가득. 담배 태우면서, 주인장과 같이 이야기도 하고, 옆에서 이야기하다 쓰윽 참견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 친해지기도 하는. 지나가던 손님이 들러서 인사도 하고 가는, 그런 심야식당의 동네 버전이랄까? 그런 환상을 갖고 있었고, 딱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어떤 관광지를 찾은 것보다도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맛도 깔끔하고.

토마토가 들어간 따뜻한 국물. 걸쭉하니 소주랑 곁들여도 딱일 듯한, 밥을 말아도 괜찮은 비주얼.

토마토 츄하이. 토마토 맛이 강하진 않았으나 알코올 먹은 토마토를 먹으니 오이소주 속 오이를 먹는 듯한 기분이랄까. 가게에 있는 츄하이란 츄하이를 종류별로 다 먹은 듯.

옆자리 일행. 가운데 있는 아줌마는 한국어를 곧잘 했다. 게다가 한류에도 관심이 있어서 한국도 몇 번 왔었고, 서로 검색하면서 한국은 이러네, 일본은 저러네하면서 한 시간 넘게 이야기했던. 글쎄, 막상 동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큰 적대감은 갖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우리가 일본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이들도 그랬고, 그냥 사람 사는 분위기 정도. 주인장이 재일교포 (在日)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본에 있는 동안 한국인이라고 식당에서 차별받은 적은 없었다 (딱 한 번 퇴짜맞은 적이 있다).

주인장 장태선씨. 할아버지 때 오사카로 넘어왔으니 재일교포 3세. 나보다 두 살 어리더라. 알고보니 고향이 제주라며. 김녕이라며. 그래서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고 제주에 오면 꼭 보자고 했다. 1, 2년에 한 번은 제주도 들어와서 성묘도 가고 한다고 하니까.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어렵게 지킨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엄청 고민했고. 일본에서는 조센진이라 차별받았다고.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자기는 한국사람 대우를 받을 거라 생각해서 따로 어학당에서 공부도 했는데, 알고보니 자신은 한국인도 아니었다고. 한국 사람들이 일본인 취급하더라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일본 국적으로 돌아설 걸 그랬다고. 

갑자기 추성훈이 생각났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함께 붙이고 다니는,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귀화해서 일본 대표선수가 됐던 그의 이야기가 결코 허구가 아니었으며, 여러 재일교포들이 겪고 있는 일상의 문제였음을.

이런저런 가족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일본어, 한국어 섞어가면서 하다보니 밤 12시였다. 슬슬 문을 닫는다고 하길래 아쉬움을 접고 여기까지만.

못 생겨먹기는 둘 다 마찬가지...그래도 내가 어려보인다고 (아니라고?)

12시 좀 넘어 들어오니 카오루상이랑 앙트완이 이런 글을 적어놨다.

오늘은 같이 술 먹을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오사카의 밤을 즐겨보길 바라.

잘 즐겼지요. 그리고 리빙구에 갔더니 웬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야호~

물론 이 날 먹은 술은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세밑에 먹은 술이구나) 진로 막걸리가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날도 역시, 마지막 날이라고 일본 사람들 넷과 소주에 뭐에 새벽 네 시까지 주구장창 달렸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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