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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석 Feb 28. 2017

11. 구비구비 고베 (마지막날)

얻어걸린 곳이 더 좋았더라

그렇게 술을 먹고, 그리고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동네 슬슬 돌면서 체크아웃 준비를 합니다. 보통 게스트하우스는 체크아웃이 10 - 11시 정도이고, 오후 늦게까지, 아니면 초저녁까지는 짐을 맡아주기 때문에 편하게 관광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저는 나라로 이동하는 거라서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왔다갔다 더 귀찮게 되는지라.

크게 특색은 없었지만 편하게 지냈던, 뭔가 클럽같기도, 카페같기도 했던 유메 노마드 안녕. 비용도 싸고, 편한 것도 좋았는데 게스트들끼리 모여서 자연스럽게 놀 수 있는 공간은 그닥이었던 거 같았어요. 코쟁이들은 아무래도 좌식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죄다 카페에서만 있고, 스탭들은 자기네끼리 이야기하느라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은 두지 않았던 것같은 (전형적인 일본 문화일 수도 있겠죠).

금, 토요일 저녁은 공용공간이 카페로 변신합니다. 커피 400엔, 카페오레 450엔, 그리고 의외의 맛을 보여줬던 하버랜드맥주 (ハーバーランドビール)가 500엔. 하버랜드 맥주는 라거 맥주인데 하이네켄과 비슷한 맛이랄까? 상당히 상큼하니 괜찮았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가던 중 배도 고프고, 동네에서 밥이나 먹고 가자는 생각에 서서 먹는 우동집에 스윽하고 들어갔습니다. 메뉴는 상당히 여러가지였고, 각 메뉴에 따라 면을 선택할 수 있어요 (우동이냐 소바냐). 일본와서 느낀 건, 늘 먹던 냉소바가 아니라 온소바도 상당히 많았다는 거? 아주 좋아하진 않았는데 일본와서 온소바에 그나마 맛이 들었습니다 (물론 전 아직도 라멘이 가장 좋습니다).

오니기리와 이나리 초밥에, 온타마고 (달걀이 들어 있는) 소바도 있고, 가격도 상당히 저렴한 편입니다. 평균 270엔에서 300엔 언저리?

니쿠타마고 (肉玉子) 우동을 시켰습니다. 따뜻한 우동에, 소고기가 들어가고, 그 위에 날계란을 송송. 날계란 덕분에 약간은 느끼한 맛이 났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날 쌀쌀할 때 후루룩~

면만으로는 부족한지라 이나리 (유부) 초밥도 하나 사 먹고. 두 개들이 한 통에 150엔 정도 하니까 싸다고만 할 순 없지만 우동에 곁들여 먹기에는 딱 맞습니다.

타치 (立ち)라는 단어가 식당에 보이면 서서먹는 곳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서서먹는 우동소바 후쿠이 (ふく井). 신카이치역가는 길 시장에 있습니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나라가는 길목에는 뭐가 있을까 알아보던 중,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곳을 찾게 됩니다. 바로 하쿠츠루 (白鶴) 주조자료관이었는데요. 말 그대로 하쿠츠루사의 제품을 전시하고, 사케 주조 공정도 보여주고, 게다가 시음까지 가능하다고 하니...여긴 꼭 가야해!

그래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구글맵으로 찾아봅니다. 한신우메다행 열차를 타고 미카게역 (御影駅)에서 내렸습니다. 코인라커가 있으면 캐리어 넣어 놓고 슬슬 갈랬는데 웬걸, 역이 워낙에 작다보니 라커가 없어서 결국 500미터 이상을 끌고 다녔다는 (이렇게 외진 곳이었다니). 한참 걸어갔더니 하쿠츠루 공장이 나오고, 공장을 들어갔더니 뙇.

하쿠츠루주조자료관 간판이 보입니다. 뒤에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구경 시작. 캐리어 때문에 불편했는데 다행히도 직원들이 캐리어 맡겨놓고 다니라며 흔쾌히 맡아줘서 좋았어요. 입구부터 들어가봅니다.

사케통이 보입니다. 대체 저 한 통의 용량은 어느 정도인가...

안에 들어가면 사케 주조 공정을 모형으로도 보여주고, 동영상으로도 틀어줍니다. 각 코너에 가서 버튼을 누르면 일본어, 영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데, 찬찬히 보다보면 의외로 재밌는 부분도 많고, 전보다는 사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면서 아 이렇구나, 저렇구나를 배울 수 있달까.

쌀을 씻고, 널고, 말리고, 깎고.

사케 주조 시 사용했던 틀이나 도구들도 같이 전시를 해놨습니다.

일 잘 하고 있냐?

대체 몇 리터인지 가늠이 안 갑니다만, 옆에 있는 병이 2흡짜리니까...대략 7리터는 되려나 모르겠어요.

출구입니다.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대체 저 병은 몇 리터인가? 

시음 코너 옆에 저렇게 모형을 만들어놨습니다. 왠지 분위기는 차를 마시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시면 돗쿠리가 보입니다 (차를 돗쿠리에 담아 마시진 않겠죠). 그릇이나 이런 것들을 보면 확실히 한국과는 술 문화가 다른 듯합니다. 자기 앞에 자기 먹을 거 두고, 자기 마실 술 알아서 덜어 마시게 되어 있는 걸 보면 말이죠.

역시 출구에는 매장이 있습니다. 정말로 다양하게 팝니다. 술은 물론, 술찌끼미로 만든 비누, 과자, 사케잔 등등. 사케 좋아하고, 잔 수집하는 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강추.

유자술도 먹어봤는데 상당히 답니다. 뭔가 유자차에 소주탄 거 같은 느낌이랄까? 도수도 낮고 좋아요. 분홍색으로 된 건 매실주입니다. 일본 매실주는 달달하기도 하고, 뭔가 씁쓸하기도 한 맛이 있는데 좋은 술은 많이 달지 않은, 씁쓸한 맛이 적당히 섞여있다면 저렴한 매실주는 단 맛이 강하고 물 탄 듯한 느낌이 있어요. 오른쪽은 매실 원주, 즉 원액입니다. 보통 매실주가 10% 정도인데 반해 매실 원주는 20%, 두 배입니다. 그만큼 매실맛이 강하고 도수도 높지만 진짜 맛있습니다. 온더록스로 마셔도,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위스키처럼 쓰지도, 독하지 않았던지라 한 병 사서 온더록스로 잘 먹었습니다.

다루마 세트. 주전자에 잔 두 개가 5,400엔이니 아주 비싼 건 아닌 듯.

하쿠츠루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쌀입니다. 고베시가 있는 효고현 (兵庫県)산이라고 엄청 자랑하더군요. 술 쌀의 독특한 맛을 느껴보세요라는 홍보 문구도 참 재밌는 듯.

오후 한 시가 안 된 시간이라, 나라에 가면 할 게 없을 거 같아서 뭘 할까 고민고민하던 중, 지하철 노선도를 봤습니다. 아 여기가 어디로, 목적지인 킨테츠나라 (近鉄奈良)까지는 한 시간은 더 가야 하니 가다가 맘에 드는 곳에 내리자라는 생각으로 노선도를 들여다보니 앗! 고시엔 (甲子園).

어릴 때 갑자원이라고도 했던 바로 그 고시엔이 가는 길목에 떡하니 있더랬습니다. 야구팬이라면 응당 여긴 가줘야해, 재수! 그래서 고시엔으로 결정합니다. 한참을 달리다 고시엔역에 내렸죠.

역 앞은 생각보다 썰렁합니다. 잠실구장 생각했다가는 낭패. 고시엔역에서 내려서 3분 정도 걸어가니 떡하니 보이는 바로 그 곳.

정문으로 들어가면 고시엔역사관이 눈에 보입니다. 안에 전시관이 있고, 옆에는 기념품샵도 있고. 지금은 비시즌 기간이라 900엔을 내면 고시엔 투어가 가능하다고 해서, 바로 신청했습니다. 물론 일본어로 진행되지만 듣다보면 아는 말도 들리겠지라는 생각에 투어 900엔, 역사관 입장료 600엔, 총 1,500엔을 과감히 지출 (따로 하는 것보다 패키지로 하는 게 쌉니다. 야구 좋아하시고, 구장 구경도 하고 싶다면 강추).

아, 고시엔 구장은 간사이 지역 최대 인기팀인 한신타이거즈 (阪神タイガース)의 홈구장입니다만 고교야구인 고시엔의 상징이기 때문에, 고시엔 본선부터는 홈경기를 치르지 못합니다 (고등학교 야구가 프로야구를 밀어내다니...역시 5천 개 이상이 참여하는 리그답다).

오 엄청 오래돼 보입니다. 구장 벽면에 등나무가 있는데 일전에는 수두룩 빽빽했다고 합니다. 이후 다 걷어냈다가 다시 심기로 계획했다고...(삽질하고는) 역사관 입구 오른쪽에 기념품샵이 있습니다. 역시나 고시엔역도 코인라커가 안 보여서 역사관에 캐리어 맡겨놓고 구경.

기념품 가게에 보면 왠지 사고 싶은. 일본 야구는 많이 보질 않아서 선수들을 잘 모르지만, 이렇게 유니폼을 보면 하나 사고 싶은 건 모든 야구팬의 공통점이 아닐런지. 7번 이토이 선수의 백넘버와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이군요.

구장 지도입니다. 휠체어 입구도 있고. 일본 사람들은 뭔가 이름 짓는 걸 좋아하는 듯한데, 예를 들어 등나무 좌석 (아이비시트, アイビーシート)은 외벽에 등나무가 둘려 있던 곳일텐데. 대체 알프스석 (アルプス席)은 뭐냐? 알아보니, 고시엔 응원오던 넥타이부대 아저씨들이 더우니까 자켓을 벗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캐스터가 "아, 저기 하얀색을 보니 알프스같네요"라는 멘트 때문에 바로 알프스석이 돼버린...(만년설 시트인가)

잠실처럼 휑하지 않은, 뭔가 공원같이 오밀조밀한 맛이 있습니다. 구장 한 켠에는 베이브 루스 기념비가 있는데요. 실제로 베이브 루스가 일본에서 진행된 미일 친선게임에 참여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답니다.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90주년, 선발고교야구대회 80주년 기념비입니다. 고시엔은 봄 고시엔, 여름 고시엔 이렇게 나뉘구요. 

선발야구대회, 일명 봄 고시엔은 마이니치신문이,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여름 고시엔)은 아사히신문이 개최합니다. 80, 90년이라니...게다가 현재진행형이라니 (프로야구 출범 이후 쫄딱 망해버린, 50개도 되지 않는 팀으로 꾸려가는 한국 고교야구 지못미).

드디어 투어 프로그램 시작. 한신의 마스코트 토라키와 럭키입니다. 5만장이 넘는 지하철표를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3루 워밍업존입니다. 출입금지선 너머로 마운드가 있어서 투수들이 몸을 풉니다. 안에 인터폰과 카메라가 있어서 벤치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하고, 인터폰으로 통화할 수도 있죠. 프로용입니다. 고시엔 본선 기간에는 하루에 몇 경기씩 진행이 되기 때문에 다음 경기를 치를 학교의 대기실로 사용됩니다.

31번 이시하라 포수의 미트 (물론 쓰던 미트는 아니고).

한신고시엔구장.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서 공 한 번 받아보고 싶습니다.

3루 라커룸입니다. 물론 한신타이거즈는 안 씁니다 (어차피 홈구장이라 1루에 있을 뿐더러, 홈구장이니 이것보단 더 좋은 곳에 있겠죠). 좌우로 삥 둘려 있는데 일반 선수들은 한 칸, 고참급은 두 칸도 쓴다고 합니다.

데크 높이가 생각보다 낮아서 머리 두어 번 찍힌 건 안 비밀. 의자 옆에는 슬리퍼가 있어서 스파이크 안 신을 때는 슬리퍼 신고 왔다갔다.

드디어 구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맨 위에 보이는 좌석은 개인이 보유한 게 아니라 단체에서 구매한다고 합니다. 언젠가 저런 곳에서 양주 마시면서 야구를 볼 날이 오련가 모르겠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어요).

파노라마로 한 번 남겨봤습니다. 한참 구장 공사중이라 엄청 번잡하더라는. 천연잔디 구간과 내야 부분은 출입금지라 멀리서 보기만 했습니다만 뛰어 나가서 슬라이딩 한 번 해보고 싶더라는 (빨래 늘어나겠지).

3루 벤치 옆에 박스로 된 좌석이 있어서 감독석이냐고 물었더니 사장석이랍니다. 아, 그럼 삼성 경기했을 적에 김응용 사장이 저기에 앉고 그런 건가?

구장 정비중. 흙 배합에도 엄청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실제로 샘플을 만져보니 부드러운 흙과 까칠한 흙을 반반 정도 섞은 듯했는데, 슬라이딩 한 번 하면 온몸이 검게 변할 판. 고교야구와 프로야구는 같은 재질의 흙을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3루 알프스석입니다. 물론 좌석까지 하얗진 않습니다만, 올해 봄이나 여름 고시엔에선 분명 알프스가 되겠지요.

투어 끝나고 역사관으로 갔습니다. 우승학교별로 공에 이름을 새겨놨네요.

동영상도 볼 수 있습니다. 뭘 볼까 하다가 8번에 많이 보던 이름이 나왔네요. 바로 마츠자카 다이스케 (松坂大輔). 제목도 살벌하군요. 헤이세이의 괴물이라니. 8분 정도 되는 동영상을 보니 그럴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름 고시엔 결승 1차전에서 17회 완투 (무승부), 2차전 마무리 (9회), 3차전 선발 완투. 3일동안 27일 이닝을 던졌으니...(사람이냐?) 괴물 소리를 들어도 당연.

우승기에 달아주는 우승학교 띠. 다이쇼 (大正) 12년이니까 1923년이네요.

역시 한신의 수호신 어쩌고 했던 오승환. 오승환 등장 이후 역사관에 한국어 지원을 제공했다는 소문이...2014년 최다 세이브를 획득했던 오승환이라고 써 있네요. 실제로 동영상보는데 살벌합니다. 불펜투구하는 걸 바로 뒤에서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보여주는데 처음엔 슬쩍 날아가는 거 같다가 갑자기 뻑...(맞으면 진짜 뻑)

고시엔을 주제로 한 만화는 참 많죠. 그 중에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은 봤다는 터치입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고시엔 주제 만화들. 한두 개가 아니라 이렇게 벽으로 해놓은 듯하네요. 이래저래 재밌는 만화들도 많이 보이고,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만화들도 눈에 띄고.

역사관 한 켠은 고시엔을 주제로 했다면 다른 한 켠은 한신타이거즈를 주제로 했습니다. 2005년 재팬시리즈 우승 기념.

역사관은 구장 외야쪽 공간을 사용하기 때문에 계단으로 올라가면 이렇게 외야 백스크린에서 홈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 구장 내부에 이렇게 들어올 수 있다니, 감동이야 감동.

백스크린에서 맥주 마시며 야구보면 어떤 재미려나요?

한신고시엔구장역입니다. 한신선으로 올 수 있고, 건물 자체도 생각보단 작더라는.

엘리베이터 버튼입니다. 누가 야구장역 아니랄까봐 야구공 모양으로 버튼을 만드는 센스라니...


마지막 날은 무계획으로, 얻어걸린 곳만 다녔는데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다 썼네요. 물론 일정에 쫓기지 않는 걸 모토로 했던거라 문제는 없었습니다.

뭔가 허전하던, 그렇지만 쏠쏠한 재미가 있었던 고베를 뒤로 하고, 간사이 세 번째 지역인 나라로 갑니다.

마치 한국의 경주와 비슷하다던데, 어떤 느낌일까 한참 궁금해하며 고베와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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