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통역의 종류
앞의 글에선 통역과 번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번 글과 다음 글에서는 통역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통역은 화자의 이야기를 듣고 청자가 사용하는 언어로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본질은 그러하나 전달의 방식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네요.
1. 동시통역
동시통역은 연사나 화자가 이야기하는 동안 통역이 바로 나오는 걸 의미합니다. 티비에 보면 사람들이 귀에 무언가를 끼우고 듣고 있는 모습을 봤을텐데요.
이렇게 생긴 리시버를 한쪽 귀에 끼고 오른쪽 숫자 다이얼을 돌려서 자신이 듣고자하는 언어에 맞추면 됩니다. 보통은 한국어가 1번, 외국어가 2번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 영어 동시통역이 진행되는 경우라면 한국어 1번, 영어 2번으로 세팅하면 채널에 따라서 언어가 다르게 나옵니다.
밖에서 본 부스 사진입니다. 보통 회의장 맨 뒤에 보시면 공중전화 박스같이 생긴 부스가 있는데요. 통역사가 일하는 공간입니다.
부스 내부입니다. 가운데 장치가 있고 옆에 헤드폰 두 개, 마이크 두 개가 있습니다. 언어에 맞춰서 번호를 누르면 됩니다. 한국어 1번, 영어 2번인 경우를 예를 들었을 때, 외국 사람이 나와서 연설을 하는 경우 한국어 통역이 진행되어야 하므로 1번 스위치를 누르고 아래에 있는 마이크 버튼을 누른 다음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영어로 통역해야 하는 경우 2번 스위치를 누르면 됩니다.
부스 크기는 상당히 작습니다. 높이가 대략 1.7미터 정도에 폭은 1미터 정도로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찹니다. 그리고 방음포가 사방에 붙어 있으며 문을 닫고 일을 하기 때문에 답답하고, 덥고 그렇습니다. 끝나고 나면 몸에 진이 쭉 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무래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것은 물론, 그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 후 통역까지 한 번에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항상 2인 1조로 진행합니다. 혼자서 하는 경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5분 정도로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 명이 진행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잠시 쉬거나 같이 들으면서 파트너가 잘못한 부분 등을 종이에 적어서 건네주고, 숫자나 복잡한 내용 등을 적어주는 등 쉰다고는 하지만 쉬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호흡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와 일을 하면 편한 경우가 많죠. 한 번 파트너가 결정되면 쉬이 바꾸지 않고 계속 몇 년이고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동시통역이 필요하다고 하는 경우 파트너 알아서 구해오라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런데 위 부스 사진처럼 여러 개의 부스를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부스의 개수와 사용하는 외국어의 수가 같은 건데요. 예를 들어, 한-영이면 부스 하나와 통역사 둘, 채널 두 개가 필요합니다만 국제회의라는 게 영어만 사용하진 않습니다. 제가 재작년에 갔던 회의에서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사용했었는데요. 그럴 때는 통역사 여섯 명에 부스 세 개, 채널 네 개가 필요합니다. 이 떄 사용하는 방식이 릴레이 동시통역인데요. 한국 연사가 이야기를 할 때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통역사가 한국어를 듣고 통역을 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만 영어를 사용하는 연사가 나올 때 한-영 통역사가 한국어로 통역하는 걸 듣고 한-일, 한-중 통역사는 일본어, 중국어로 통역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어가 나오는 경우 한-일 통역사의 이야기를 듣고 영어, 중국어 통역사는 해당 언어로 통역을 하죠. 내가 통역을 잘못하면 나머지 언어가 몽땅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고, 아무래도 통역을 한 번 듣고 다시 통역이 나가기 때문에 쉽진 않습니다. 제한적으로 사용하긴 하지만 동시통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순차로 진행하는 경우라면 시간도 몇 배가 더 걸리고 연사와 청중의 집중력도 떨어지겠죠. 말하고, 듣고, 기다리고...
보통 동시통역은 위에 말한 것처럼 사용언어가 많을 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회의나 강연에서 이뤄집니다. 바로바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 쪽 귀로 들리는 통역과 다른 쪽 귀로 들리는 연사의 목소리가 섞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장비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는 제약을 받기도 하고, 예산 문제도 존재합니다 (물론 통역시설이 되어 있는 건물이면 좀 낫겠지만...)
2. 순차통역
순차라는 말이 의미하듯, 주고받고 하는 통역입니다. 연사가 일정 길이의 내용 (보통 30초, 1분, 또는 PPT의 경우 슬라이드 한 장 분량)을 이야기하면 통역사가 그 이야기를 듣고 통역을 합니다.
제가 갔던 강연 통역인데요. 가운데 연사가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면 통역에게 눈치를 줍니다. 아니면 너무 길게 말한다 싶으면 통역이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그렇지 않아서 3분 넘게 했던 적도 있습니다.) 마이크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설비도 간편하고, 공간의 제약도 거의 안 받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리시버를 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하기도 하죠. 그러나 연사가 이야기하고, 통역이 통역하고, 다시 연사가 이야기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보통 1시간짜리 강연이면 순차통역의 경우 다 합해서 1시간 40분에서 2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끊기기 때문에 집중력이란 부분에서 안 좋은 면도 있지만 통역사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는 건 나름 편하죠. 보통 소규모 강연이나 회의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3. 수행통역
수행비서같은 어감일텐데요...옆에 따라다니면서 통역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필요한 경우 통역을 하고, 옆에 붙어 다니면서 상황을 보는 통역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무래도 피곤한 부분이 있죠. 통역하기도 힘든데 따라다니면서 눈치도 봐야 하고...개인적으로 크게 선호하는 통역은 아닙니다만 시키면 시키는대로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에...
4. 위스퍼링
말 그대로 귀에 속삭이듯 하는 통역입니다.
사진 뒤에 있는 두 사람이 통역사인데요. 한 쪽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동시통역으로 전달하되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귀에 속삭입니다. 그리고 두 명이 나오는 이유는 서로 통역사가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보시면 될텐데요. 특히나 외교적 수사같은 경우, 아니면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 서로 통역사를 대동해서 상대방 통역이 제대로 전달하는지를 확인하기도 합니다. 방음 등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으며 통역하는 게 훨씬 어렵고, 속삭이되 제대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목소리 톤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옆에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냄새 등이 나지 않아야 하며 (물론 상대방의 냄새에도 둔감해야 하는...냄새 난다고 뭐라할 순 없으니...) 복장 등 신경쓸 게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도 피곤한만큼 많은 내용을 알 수 있고, 뿌듯함이란 게 상당히 크게 작용할 수 있는 통역입니다.
5. 비즈니스
보통 박람회나 수출설명회 등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여러 바이어들이 차례로 오면 이들을 대상으로 통역을 하는 과정이라 보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한 업체를 맡아서 통역하기 때문에 하다보면 금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업체 사람들과 하루종일 같이 있다보면 친밀감도 높아지고, 인맥으로 잘 관리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죠.
대충 통역의 종류가 이렇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물론 통역이 갖고 있는 본질은 같습니다만 그 안에서 이뤄지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서 분류한 거라고 생가하시면 될 거 같네요.
다음 글에서는 통역사가 실제 어떤 식으로 통역을 하는지, 그리고 갖춰야 할 기본 소양 등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