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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석 Mar 04. 2016

통번역사?

3. 노트테이킹

바쁘다는 핑계로 한참 동안 글을 올리지 못하다

이제서야 시간이 나 겨우 올려보네요.


오늘은 노트테이킹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노트테이킹 (Note-taking)이란...

쉽게 말하면 상대방이 이야기 한 내용을 적는 과정입니다.

적어놓는 이유는 당연히 상대방이 한 이야기를 통역하기 위해서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부분을 전달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적어놓는, 일종의 커닝페이퍼랄까?


그래서 통역사마다 적는 방법도 천차만별입니다.

어쨌건 나만 알아보면 되는 거고, 딱 봤을 때 한 눈에 들어오게끔 하면 되는거니

형식 등에 구애받을 일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기호가 있긴 합니다만...)


예를 들면 150만이라면 1.5m

15억이면 1.5b 이런 식으로 적던가

서울에서 평양까지면 서울 -> 평양

집에 9시에 도착했으면 집 <- 9시


충분히 다른 식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만 중요한 건 일관성입니다.

같은 내용을 적을 때는 같은 기호를 사용해야 한다는거죠.

내가 출발하는 걸 오른쪽 화살표로 했다가 다시 왼쪽 화살표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규칙을 정했다면 그 규칙에 따라가야 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노트테이킹을 했다고 해서 모든 내용이 다 기억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규칙 하나 잘못 사용했다가 스텝이 꼬이는 경우가 다반사인지라...


그리고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이면 노트테이킹은 한국어로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거라면 영어로 하는 게 좋습니다.

영어로 적어놓은 걸 다시 한 번 한국어로 생각해야 하고, 그 반대의 과정을 겪기 때문에

시간이 더 소요될 수도, 도중에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걸 방지하려는거죠.

(물론 한영통역에서 저도 아직은 한글로 적는 게 더 많습니다만...-_-)


그럼 노트테이킹의 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딱 보면 엉망입니다...개발괴발...


그런데 말입니다.

저만 알아보면 장땡입니다. ㅋㅋ


밑줄을 그은 이유는 의미단락이 한 번 끝난다는 것, 즉 여기까지 이야기한 상태에서

통역을 해도 무리가 없다는 걸 의미하구요.

아니면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어놓기도 합니다. (강조하라...이거죠)


화살표를 그은 것은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의 이동

즉, 이게 끝나면 다음으로 가라~ 뭐 그런 의미이기도 하구요.


앞에서 글씨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자기는 알아볼 수 있게 써야 합니다.

안 그러면 뭐라고 썼나 쳐다보다가 말짱 도루묵이 되는 수가 있고

그렇다보면 힘들여 적어놓은 종이와 펜 잉크는 낭비일 뿐이고...

(그래서 몇 번 날려먹었습니다...-_ㅠ)


위에 노트테이킹이 몇 분짜리라고 생각하시나요?

경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30초가 될 수도

3-5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의 예는 4분 분량의 이야기였습니다)


즉, 노트테이킹은 상대방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적는 게 아니라

중요한 사항들, 이건 반드시 전달해야 한다는 것들

아니면 내가 이 단어를 보면 아...이 이야기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는 것들

(이걸 트리거 (trigger)라고 하는데요...말 그대로 방아쇠란 말입니다. 방아쇠를 당겨 총을 쏘듯 머릿 속에서 생각을 팍~하고 떠오르게 해주는 단어)

아니면 수치 등을 적는 거지, 받아쓰기를 하는 게 아니란 거죠.


대학원 초기에 보면 대부분은 받아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토씨하나 안 틀리게 적으려고, 내용 다 적으려고...

그러다보면 상대방의 말의 의미는 모른채 읽기에만 급급한 경우가 많죠.


노트테이킹은 주가 아니라 부입니다.

즉, 머릿 속에 얼개를 짜면 살을 붙이는 과정에 불과하다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름 이야기의 흐름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록하지 않고도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의 흐름을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옆에 악세사리로 포인트를 주듯

노트테이킹으로 보충하는 거라고 보시면 될 거 같네요.


그래서 통역사들은 노트테이킹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노트나 필기구 등도 하나씩만 갖고 다니는 게 아니라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길 걸 대비해서

두어 개씩은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펜도 1미리 이상 두꺼운 펜을 쓰기도 하고

노트도 위로 넘기는 노트를 한 면씩만 써가며 넘깁니다.

그리고 노트 끝까지 가면 다시 뒤집어서 쓰다보면 한 권을 채우게 되죠.


보통 순차와 같이 연사와 통역사가 시차를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에 노트테이킹을 하지만

동시에서도 사용합니다. 특히 파트너 보조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수치 등이나 기관명과 같은 고유명사 등을 적어줄 때도 유용하게 사용하죠.

큰 글씨로 알아보기 쉽게 적어주는 건 센스~


노트테이킹을 하기 전에 우선은 1분 정도 되는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로 소화해서 전달하는 연습을 먼저 해보세요.

그러면 머릿 속에서 나름 정리하는 습관도 길러지고

메모리 스팬 (memory span - 기억력)도 커지기 때문에 계속 하다보면

2분, 3분 정도로 늘어납니다.

게다가 의지할 수단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집중해야 하구요.

(이래서 사람은 필요의 동물, 노예근성...이런 건가 싶습니다 -_-)


1분 정도 뭐 기억 못하겠냐...라고 하시겠지만

뉴스 기사 한 꼭지가 1분 30초 언저리고

한 꼭지를 듣고 어떤 내용인지 아무런 보조수단 없이 정확히 전달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의심가시면 한 번 해보시길~

(도발은 아닙니다...네네)


간만에 글을 적느라, 늘 그랬듯 두서가 없네요.

다음엔 다른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어떤 주제로 적을지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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