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통번역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기석 Oct 06. 2016

통번역사?

4. 직업윤리

별로 하는 일 없이 어벙벙하게 살다보니 브런치가 곰삭아서 곧 갓김치가 될 판입니다...-_-


그래서 마침 두 시간 후면 회식도 있겠다

곰삭는 게 아니라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뭐라도 적어보자는 마음에

한 번 끄적여 보렵니다...

(기다리신 분이 있으면 다행, 없으면 더 다행...)


제목은 직업윤리라고 적었지만 거창한 건 없습니다.


보통 영어로는 NDA (Non-Disclosure Agreement)라고 하는 비밀 서약서를 쓰기도 하는데요

통역도 통역이지만 번역할 때 더 많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지금 네 놈이 작업하는 걸 어디가서 떠벌였다 걸리면

돈 물리고, 이래저래 성가시게 해줄테다...라는 협박이라면 협박

(보통 협박을 문서로 만들어서 보여주면 서약이라고 합디다...)


통번역사는 일의 특성상 양 당사자, 또는 그 이상의 당사자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

그리고 쉬는 시간에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사이에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가장 많이, 가장 빨리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회의 한 번 하고 나면 아...이 사람들이 어떤 게 문제고

양쪽이 어떤 생각을, 어떤 의도를 갖고 지금 이 고생인가라는 걸 알 수 있죠.


직장생활과 똑같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보다 더 무서운 게 흡연이라는...


그래서 쉬는 시간이 되면 저는 꼭 당사자 막론하고 담배피우러 갑니다

그러다보면 같은 회의 참석자들하고 담배를 피우게 되는데요

그 때 살짝 살짝 물어봅니다.


그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돌아가서 저의 돈줄 (쉽게 말하면 절 데려온 사람)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줍니다. 물론 세세한 걸 다 이야기하진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가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네 놈에게 돈을 주는 건 나인데 왜 저 놈들에게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냐...

너 쁘락치냐...


그럼 대놓고 뭐라고 하죠.

"아 나 이 양반아...양쪽의 입장을 알아야 이야기할 때 우리도 주장할 게 있을 것이고

상대편의 의도를 알아야 준비할 건 준비하고, 기브 앤 테이크도 하고 그럴 거 아니냐"


(솔직히 그냥 전 담배가 피고 싶었을 뿐이고, 요즘 코쟁이들이 담배를 잘 안 피워서

나가보면 결국 한국 사람들끼리 피운다는 건 안 함정...)


그렇게 돌아가다보면 소위 양쪽 머리 위에 올라가 있게 되는 직업이지만

밖에 나가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왜 영화 인터프리터에서 니콜 키드만이 그 고생을 했겠어요...

(사실 그런 곳에서 일이라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만...)


직업윤리란 큰 거 없습니다.


안에서는 이야기 잘 하고, 양쪽의 입장을 이해하고, 최대한 돈 준 사람에게 잘 해주고

돈 주게 만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밖에 나와서는 머릿 속에 지우개가 있던 것처럼 다 잊고 이야기 안 하다가

같은 맥락의 회의가 다시 진행되면 잊은 걸 그대로 복기해서 최대한 머릿 속에 집어 넣고

전에 있던 일과 비교하면서 업데이트 바로바로 해주고...


뭐 물론 통역사들이 전반적으로 말이 많아서 성별 무관하고 셋이 모이면

엄청 수다스럽습니다만...


그냥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도 바쁜 세상이니까

혹시라도 민감한 부분을 알게 된다면 우선은 잘 갖고 있고

나중에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공익제보라도 하시는 게...


(전 아직까지 그 정도의 파급력 있는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통번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