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배경지식
회식까지 아직 50분 남았고
밖에서 기다리기 심심해서 커피 한 잔이랑 끄적여봅니다...
(불목이라고 하니 불어터진 라면을 먹을 순 없잖아요...)
배경지식
흔히들 background knowledge라고도 하는데요.
통역사에게 배경지식은 개인차가 워낙에 큰 부분입니다
대부분 저와 같이 일하는 분들은 문과 출신들이 많아서 인문사회 분야나
어학 분야라면 저보다 훨씬 많이들 알고 계십니다만...
전 약간 종특이라서...
(네...이과 중에서도 가장 이과답다는 물리학과 출신에 프로그래머 교육도 받았습니다...)
갖고 있는 지식 분야 자체가 딴나라입니다...
(마치 제주도 사람과 강원도 사람이 만나서 사투리로 떠드는 듯한...)
분명 배경지식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저번에 나갔던 IBS (기초과학연구원) 통역의 경우
아무래도 파트너보단 제가 편한 건 사실입니다.
연구단별 특성이나, 연구단 용어나 이런 것들은 아무래도 익숙한 게 있고
기관명 (예를 들면 APCTP - 아태이론물리센터)은 이름 자체가 난해하기도 하고...
개념이나 동의어 같은 경우에도 분야별로 쓰이는 게 다르죠.
예를 들어 uncertainty는 일반적으로 불확실성이라고 하지만
현대물리학에서는 불확정성이라는 용어로 쓰이고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원리 (uncertainty principle)가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원칙이라고 하면 바로 사람들이
"통역 뭐여...물리 모르는 사람인데?"라고 바로 생각해버리게 됩니다.
그럼 통역이 뭐라고 말해도 저거저거 물리 모르는 놈이네...이래 버리는 경향이 있죠...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implementation을 보통 이행이라고 하지만
IT, 특히 프로그래밍 분야에서는 구현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각자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고,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적절한 배경지식을 갖추는 건 상당히 중요하죠.
그리고 같은 용어라고 하더라도 주최측에 따라 다르게 써줘야 합니다.
nuclear power plant라는 단어를 봤을 때, 그리고 통번역할 때
정부기관, 특히 한수원이나 한전에서 돈을 준다면 원자력발전소
시민단체, 특히 반, 탈핵운동을 하는 곳이라면 핵발전소
이렇게 상황에 맞게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통역사는 중립의 위치에서 어느 쪽도 치우쳐선 안 되는 게 기본이지만
화자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통역사는 화자의 입이니까요...
그렇지만 모든 분야의 배경지식을 다 가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히려 어설프게 알고 있다간 뒤통수를 맞을 확률도 상당히 높습니다.
통역사가 언어를 잘 하는 건 사실이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명확하고 간결한 배경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배경지식에만 의존하지 말고 화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 후
그에 맞는 입장과 용어를 반영해서 이야기를 하는 게 필수입니다.
통역이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해한 내용을 말로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야 말로
이들이 통역을 쓰고, 돈을 주는 이유니까요...
사족 1.
일전에 통역할 때 사람들이 IT 부서는 말만 하면 뚝딱인 줄 안다라고 말했는데요
이 때 "People in the company think the IT department like McDonald"라고 했었습니다.
다들 뻥 터져서...그 날 다른 직원 한 명이 업자 맞네...라면서 술 사주더군요...
배경지식과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롯데리아라고 했으면 못 알아들었겠죠?
사족 2.
과학교사 연수 통역할 때였을 겁니다.
지지라도 싫어하는 생물, 그것도 식물 구조 통역을 하는데 단엽상, 맥상 이야기가 나왔더랬구요
담배피우러 가는 길에 어떤 선생님이
"뭐 전공했슈?" "네?" "아니, 그 용어를 알길래...생물 했나 싶어서..."
"저 물리학과 나왔어요..." "아....거 봐 과학 전공했다고 했잖아...그런데 어떻게...?"
"네...1학년 때 일반생물학 배워서요..."
사족 3.
사막 레이서 통역할 때였나...
"cookies and chocolate"이라고 한 부분을...
"과자 부스러기"라고 통역했다가 맥주 먹었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먹으라면 먹어야죠...
(원래는 안 됩니다...만 워낙에 캐주얼한 분위기라...그냥 먹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오버워치를 하는 게 아닌가...
(참고로 tracer 좋아합니다. Cheers, love! The cavalry's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