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선의”란, 타인과 무관히 오롯이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행위를 “선의”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을 행하고, 내가 행한 선을 누군가 알아주길 원하는 순간 그것은 선의의 범주에 속하기는 하나, 자긍심에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달까. 자긍심을 위한 선의는 때때로 “위선”으로 변질되기 쉽다 여겨져, 나는 내가 가진 “선의”가 위선이 되지 않길 바라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선의”를 베푼 이들이 있었다.
나의 구원자들.
B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나보다 똑똑하고, 예쁘고, 강인한 아이였다. 성적이 비슷하다 보니 묘한 경쟁관계였던 (나 혼자 경쟁했을지도 모른다.) 터라 간혹 불편한 부분이 있었지만, 나는 B를 좋아했고, B도 나를 좋아했다. B는 앞서 얘기했듯이, 그 모텔방에서 나를 꺼내준 아이다. 일 년이란 긴 시간, 나와 아기의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똑똑하고 예쁜 B는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바로 S그룹에 취업을 하였다. 허영이 있던 나는 내 등록금을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였는데, 시작부터 남다른 선택을 한 그녀는 나와 같은 21살에 그녀가 살던 기숙사를 나와서, 기꺼이 나를 돌보아 주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녀가 얼마나 훌륭한 여성인지,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매일매일 들려줄 텐데 어린 나는 그러질 못했다. 떠안은 현실이 버거운 고작 21살 어린 계집아이는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을 해본다.
B와 일 년을 함께 살고, 나는 대학교에 복학을 하여 B와는 떨어지게 되었다. 복학 후 간간히 연락하던 B와 완전히 연락을 하지 않은 건 같이 밀양을 여행하고서이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 명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는지도 그날 이후 그녀와 나눈 대화가 없기에 모른다. 사실 오랫동안 묘하게 경쟁관계였던 터라 그랬는지, 나의 자격지심이었는지 밀양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꼈고, 그 후로 그녀도 나도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결혼소식을 나중에 “오빠”에게 전해 들었다. 나는 그것이 서운했다. 내게 그녀의 축의금이 부담스러울까 봐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서운했다. 연락처에서 B를 지웠다. 그녀와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내가 그녀에게 연락할 일은 이제 없을 거 같아서였다.
하지만 B야. 네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너에게는 큰 빚을 졌고, 나는 예쁘고 똑똑한 네가 너무너무 고맙다. 네 덕분에 내가 그 해 여름을 견딜 수 있었다. 제대로 전한 적이 없었다면 그것은 내가 너무 미숙해서지, 네가 덜 훌륭해서가 아니다. 평생 그럴 일은 없을 거 같고,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되지만 혹여나 만약 네가 삶을 살다 어려운 일이 생겨, 나를 찾아와 준다면 나는 너를 돌볼 것이다. 너는 영원히 변치 않는 나의 구원자다. 하지만 B야. 나는 왜인지 내가 너에게 차인 여자친구 같다는 마음이 들어, 너에게 먼저 연락하고 싶지는 않다. 차인 내가 너에게 연락하는 일을, 네가 반길지 불편해할지 몰라서 혹은 내가 아직도 너무나 미흡해서 그럴 용기도 마음도 나에게는 아직 없다. 그럼에도 내가 너를 다시 마주하는 일이 있다면, 네가 어린 나이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전하고 싶다. 예쁜 너는 아직 예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 고맙고 사랑한다. B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