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극히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로 태어나, 이타적 자세를 가지기 위해서는 부단히 베이고 깎기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시간을 가지지 못한 인간은 언제까지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다가 죽는다. 단지 나이 먹음이 이타적 인간으로 살게 할 수는 없다. 인간은 그렇게 설계되었기에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남자는 여자를 좋아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처한 곤란에서 뻔뻔히 도망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남자는 여자에게 “거짓말”을 하기로 선택했다.
일하던 피시방은 폐업을 하여, 남자는 출근할 곳이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매일 출근하였다. 월급을 받지 못하니, 남자는 돈이 없었다. 여자 모르게 모텔의 월세를 밀렸다. 여자가 그 작은 방 안에서 아기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자는 다른 친구들을 사귀었다. 균열은 차곡차곡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여자는 몹시 둔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기를 찾기 위해 각종 온라인에 제보까지 하던 와중에 여자는 전화를 받았다. 낯선 여자였다.
그녀는 남자의 새로운 여자라고 하였고, 아기가 어딨는지 알지만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여자가 떠나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말했다.
“남자를 가지세요. “
여자는 이런 치정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고, 더 이상 남자가 필요하지도 않았으며, 믿지 못할 남자와 앞으로를 함께 할 수도 없었기에, 여자는 남자를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당장 아기도 찾을 수 없었고, 밀린 월세를 내고 나면 가진 돈도 없는 상황에서 친한 친구인 B가, 살던 기숙사를 나와 여자에게 함께 살기를 자청해 주었고, 여자는 그렇게 구원받았다. B는 1년간 여자의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여자와 아기를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 이제는 B와 연락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녀는 나의 구원자다. 그녀 덕분에 나는 그 모텔을 떠날 수 있었다.
낯선 여자의 연락은 아기의 행방을 입증하는 유일한 것이라, 되려 아기를 찾을 수 있다는 안심이 되어 나는 쉽사리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기는 머물던 모텔 근처 보육시설에 맡겨저 있었다고 한다. 한 달 후 돌아온 아기는 분유가 입에 안 맞았는지, 단체 생활이 안 맞았는지, 포동포동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조금 말라서 내 품에 안겼다.
아기를 돌려주러 나온 그날 본 것이 “남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30초도 안되게 남자에게서 빼앗듯 아기를 안아 들고 여자는 뒤돌아갔다.
그 후로 종종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왔었고, 처음 몇 달은 전화를 받다가 이윽고 전화를 받지 않게 되었다. 몇 년 동안은 내 가족을 통해 나에게 연락하려 한다든가, 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연락해 왔지만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십 년이 더 지났을 때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남자의 “친부”를 보았다. 사실 나는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친절히 상차림을 하였는데, 나의 아버지가 알려주어 알게 되었고 남자의 “친부” 역시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는 체하진 않았다. 또 몇 년이 지났을까 남자는 “결혼”을 하였다. 이 또한 내 부모로부터 들은 소식이다.
내 부모는 편견도 물색도 없을 때가 간혹 있다.
나는 “남자”를 이해한다.
스무 살 남자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는 너에게 치를 떨었지만, 서른쯤부턴가 나는 너를 이해한다. 네 인생에서 나와 아기가 없어진 것이 부디 네 삶에 득이었길 진심으로 바란다.
내 인생에 네가 사라진 일은 득이었다.
아기에게 득이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깐.
여자는 아기의 이름을 다시는 “이랑”이라 부르지 않았다. 여자의 성을 붙여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