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by 이랑

짧은 토막 뉴스였다. 사회적 차별을 받는 집단에 관한 뉴스였고, 그곳에 당당히 높은 순위로 자리매김한 “미혼모”는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와 함께 최상위권에 랭킹 되어 있었다. 다수는 권력이고 집단의 편견은 합당하기에, 소수는 차별받고 차별은 당연시되는 사회가 내가 살아가야 할 사회였다. 어린 나에게 사실 그 사회는 조금 버거웠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회적 불평등이나, 차별 따위를 못 견디는 편이었다. 도덕적 배움의 이유라기보다는 정말이지 그냥 그렇게 태어나서다. 어린이들은 누구 하나 약하거나 놀릴만한 것이 있으면 우르르 몰려가 놀리며 괴롭히길 좋아하였다. 같은 어린이로서 나는 그런 행동이 싫었다. 특별히 내가 착한 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도 엄마아빠에게 거짓말을 하고 용돈을 더 받아가기도 하고, 주운 돈은 누가 다시 찾아올까 봐 얼른 다 써버리기도 하는 그냥 “어린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폄하한다든가, 본인보다 약해 보이는 자를 무시하거나 피하거나 신기하게 쳐다보며 놀림거리로 만드는 일에는 화가 났다. 강자와 약자의 기준은 매우 상대적인 것이라 언제든 전환 가능함에도, 이 사실을 간과하고 약자에게 유독 강자행세를 하는 꼴불견인 꼴을 나는 참으로 많이 보아왔다. 때문에 약자에 대한 불평등, 차별, 무시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매우 불쾌하다.

그러다 생긴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내가 살던 동네에는 ”동네바보“가 있었다. 지금 상기해 보면 지적장애가 있는 성인인거 같은데, 민머리를 하고 회색면티에 반바지를 입고 동네를 활보하고 다녀, 어린이들은 그 남자를 “중대가리”라고 부르며 그를 마주치면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웃거나 도망을 가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하였다. 간혹 학교에 나타나기도 했는데, 넓은 운동장에서 점점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그 남자가 다가오자, 주변 아이들은 크게 놀리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 꼴이 볼성사나워 동조하지 않고 그 남자가 오거나 말거나 묵묵히 내 짐을 챙기던 중, 나와 가까워졌을 때 그 남자는 나의 반바지를 내렸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운동장에 퍼졌고, 정말 빠르게 바지를 올리고 아무 일 없는냥 그 운동장을 벗어났다. 나의 선의는 내게 큰 수치심을 안겨주었으나, 그 일이 내가 가진 차별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진 못했다. 그냥 나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


차별과 불평등을 몹시도 싫어하던 내가 차별과 불평등의 대상이 되었다. “미혼모”


공공연히 알리고 다니지 않았고 감출 수 있는 경우에는 감추며 살았다. 굳이 편견과 섭입견에 나를 내몰고 싶지 않았다. 내가 미혼모임을 알게 된 사람의 태도는 3가지로 분류되었다. 첫 번째, 알게 된 전과 후가 차이가 없다. 두 번째, 나를 가엽이 여긴다. 세 번째, 나를 업신여긴다. 가장 최악은 세 번째였다. 안타깝게도, 첫 번째는 거의 없었고 세 번째가 가장 많았다.

내가 미혼모가 된 것은 나에게는 책임과 선택의 일이나, 어떤 종류의 인간에게는 나를 공격하기 좋은 치부이자 약점이었다.

나의 일을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인과 공유하는 일은 흔하디 흔했으며, 어떤 이는 나에게 “네가 그러니, 그 모양으로 살지.”라는 말을 하였고, 어떤 이는 나에게 “ 네가 어떤 애인지 다 폭로해 버릴 거야. “라고 말했다.

아는 이가 거의 없으니 이 같은 말을 듣는 일은, 가끔 겪는 일이었지만, 자격 지심이 몇 스푼 더해져 차마 입으로 뱉지 않았던 말들이 그들의 눈으로 전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크게 상처받지 않은 이유는, 내가 그다지 섬세하거나 감정적이지 않아서였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모여 나는 인간에게 “실망”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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