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by 이랑

지금까지 살아보니, 삶은 행복이 1이고, 이도 저도 아닌 것이 6이고, 고통이 3이다. 나에게 그해 여름은 3의 계절이었다.

동동거리며, 엉엉 울던 여자는 가장 가까운 파출소로 향했다. 아기의 실종신고를 하기 위해서인데, 따지고 보면 실종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납치라고 하기에는 더 애매한 상황이라 파출소에서는 이와 같은 애매함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친부가 친자를 친모 모르게 데리고 나가 사라진 것은 “사건”이 될 수 없었고, 고로 “신고”를 할 수 없었으며, 이에 문제는 “해결”될 수 없었다.

당연했지만 부당했다. 한여름이었고, 모텔이 즐비한 거리 근처에 있던 파출소라 주취자들이나 종종 다녀갈법한 그곳에서 아이를 찾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거의 없었을 테지만, 사실상 줄 수 있는 도움이 없었고, 반드시 신고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에 못 이겨 결국 경찰서에 이관되기는 하였다. 다음날인지 혹은 이틀뒤인지 기억은 명확하지 않으나, 전화를 걸었던 친구 2명이 나에게 와주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진 않지만, 나는 약하고 추레한 모습을 들키는 것이 수치스럽다. 가장 약하고 추레한 모습을 그녀들에게 들켰다. 그만큼 절박했고 도움이 필요했다.


J와 B는 물도 겨우 먹는 나의 식사를 챙겨주었고, 정신적으로 지지해 주었고, 내가 가는 곳들에 동행해 주었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가보았는데, 그곳에서 만난 형사는 신고가 되지 않으니 남자의 연락을 기다려라. 도움 줄 수 있는 건 없다고 말했다. 이곳은 내가 사정을 한다고 해서, 도무지 무엇도 변할 것이 없는 곳이었다. 그곳을 나오면서 털썩 주저앉아 바닥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두 여자의 부축을 받고 겨우 일어난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수많은 것들을 잊었는데, 그 “주저앉음”이 여전히 기억난다.


공권력으로는 불가하니, 나를 알고, 남자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남자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으니, 남자가 어딨는지 알게 되면 나에게 연락하라고.

그 대상에는 남자의 부모도 포함되기에 남자의 부모와도 연락하게 되었다. 작은 동네에서 자란 남자와 여자라, 여자의 아빠와 남자의 아빠는 동창이다. 그 집도 사정이란 게 있는데, 아버지는 친부이고, 어머니는 계모다. 남자는 보통 여느 집안 남자처럼, 친부와는 묘하게 대면대면하고, 계모와는 묘하게 갈등이 있었다. 나는 그 둘 모두와 통화를 하고, 친부와 계모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혹은 사람의 차이였을 수도 있겠지만.


친부는 나를 원망했다. 남자가 버는 작은 돈을 모두 가져가고, 남자에게 고작 몇만 원 쥐어주는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남자가 버는 작은 돈으로 3 숨을 살아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의 앞길을 망친 사람정도쯤으로 나를 대했다. 계모는 현실적이었다. 아기를 본인들은 양육할 입장이 안되니, 아이를 찾겠다는 나에게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친부는 제 새끼가 가엾고, 계모는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여담이지만 남자의 친부와 내 아버지는 여전히 친구다.


J와 B가 떠나고 혼자 남은 모텔방에는 나와 3이 남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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