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숨만 쉬는데도 돈이 필요하다. 세 개의 숨이 있었다. 여자, 남자, 아기. 이렇게 세 개의 숨이 매일 숨 쉬려면 돈이 필요했다. 경제적 지원은 없었다. 그저 그런 가정형편에서 자라, 부모에게 기댈 만큼 남자도 여자도 넉살이 좋진 않았다. 하물며 “아기”의 존재는 여전히 세상에 신고도 되지 못한 채 그 둘만의 비밀이었다.
한 달 월세로 모텔에 방을 빌려 그곳에서 아기를 키웠다. 스무 살 남자는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스무 살 여자는 갓난아이를 돌보았다. 사실 누가 누굴 돌보고 말고 할 입장은 아니라 함께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나온 지는 여자가 한참 더 오래되었으니, 어느 정도는 돌보았을 테다. 남자가 아르바이트를 하여 번 돈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작은 돈이었다. 그 작은 돈으로 세 숨이 살아야 했다. 월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식비를 쓰고, 또 남은 돈으로 필요한 아기 물품을 사고, 또 남은 돈으로 생활용품을 살 수 있었으며, 그리고 남은 돈은 통장에 남겨 저축의 개념으로 두었다. 모텔이라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은 들지 않았고, 딸이 뭐 하고 지내는지 알길 없는 부모가 고등학생 때 납부하던 통신요금을 그대로 내주었다. 아기에게는 필요한 물품들이 꽤 있었는데, 출산한 병원에서 한눈에 봐도 아기인 여자가 진짜 갓난아기를 낳아 안고 있으니, 가여웠던지 분유나 젖병, 배냇저고리와 기저귀 같은 당장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챙겨주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그것들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다 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보통 아기를 낳으면 신생아실에 기대어 본인 아이를 들여다 보고 매일 가서 안아보고 하는데, 나는 입원 내내 찾아가질 않았다. 서툴고 무지하고 모든 게 낯설고 불안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은채 그냥 하라는 대로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능동적으로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평범한 축하와 기쁨이 있는 것이 당연한 “출산”. 그 당연함이 일상처럼 매일 일어나는 “산부인과 입원병동”. 모두가 원하는 아이를 기다리다 출산을 하고 축하를 받는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 낯섦에서 어린 여자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아기에게 필요한 짐을 한가득 받아 들고 퇴원을 하고서야, 나는 내 아기를 마음껏 예뻐하고 귀여워할 수 있었다.
분유는 먹지 않고 뱉어버리기에 모유수유를 했다. 비싼 일회용 기저귀를 매번 사용할 수 없어 천기저귀를 빨아 썼다.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는 아기의 예방 접종을 위해 늘 병원을 갔어야 했고, 또 돈이 들었다. 사람들이 어린 아기와 어린 여자만 쳐다보는 거 같아 그 외출이 여자는 너무 싫었다. 오픈마켓에서 가장 저렴한 우주복이나 내복을 샀고, 참치나 김 같은 간편식으로만 남자와 여자는 끼니를 해결하였다. 그 시절 저해상도의 핸드폰으로만 아이의 사진을 찍는 게 싫어, 아기의 백일쯤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그 지출은 아기를 위한 가장 큰 투자였을 것이다. 비눗방울을 불고, 풍선을 몇 개 불어 아기의 백일사진을 찍었다. 첫눈이 오던 겨울날에는 눈이 처음인 아기를 안고 모텔 옥상으로 올라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리고 가난한 부모는 그들 나름대로 아기를 아끼고 사랑했다. 여자는 아기의 이름을 “이랑”이라고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