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나는 마흔에 죽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쯤이 좋을 거 같아. ”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어렴풋이 결정한 것이다. 나에게 마흔은 기어코 아줌마가 되는 나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나이. 늙고 병들고 쇠약해지는 일만 남은 나이. TV를 보니 귀신은 죽을 때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 같은데, 늙은 모습으로 죽어 늙은 귀신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무한을 살아갈 내 혼이 모쪼록 아름답길 바랐다. 18살의 나는 특별하진 않지만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나름 타당한 이유로 “마흔에 죽기로 했다.”
나의 결심은 아무 데나 어느 날 피어난 들꽃처럼 갑작스러운 것이었지만,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는 대단히 큰 비밀을 알려주는 냥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닐만치 꽤나 견고하고 단단하게 내 자아 속 깊은 뿌리를 내렸다.
스무 살. 반짝 빛나는 시절이라는데 미숙한 나는 빛나는 방법을 몰랐고, 그런 미숙한 내가 싫었다. 서른 살. 여유가 생기기 시작할 시절이라던데 내게는 여유도 안정도 없이 죽기로 결심한 마흔 살이 되면 죽어버려야지. 마음먹었던 결심만 더욱 공고해졌다.
마흔 살. 죽기로 결심한 마흔 살이 되었다.
그런데 23년 6월 만 나이 개정법이 시행되어, 좀 애매해졌단 말이지... 100세 시대라 하더니, 마흔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늙지도 성숙하지도 않은 나이였다. 여전히 사소한 것들에 감동받고 설레고 고민하고 망설인다.
나의 어림과 미숙함은 어쩌면 영원한 것이라는 사실을 마흔쯤 깨닫고 있다. 또 내게 남은 삶에 “여분의 삶”이란 별명을 지어두고, 18살의 결심을 미루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