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에 만난 동갑내기 아이가 있었다.
겨울바다가 보고 싶다는 18살 소녀의 말에, 18살 소년은 꾸깃한 지폐로 택시비를 내어가며 바다에 나를 데려갔다. TV속 겨울바다는 파랗게 일렁여 윤슬이 반짝반짝 빛났지만, 소녀와 소년이 마주한 바다는 반짝이니 마니한 풍경을 눈에 담기 어려울만치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10분 서있자니 당장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빨갛게 시린 볼을 부여잡고 얼은 발을 동동거리다 뛰는 걸음으로 바닷가 레스토랑을 들어갔다. 둘이서 돈가스를 먹고 집에 가려는 버스정류장에서 자는 척 기대어 있는 나에게, 소년은 작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려주었다. 사실 크게 도움이 된 바는 아니었지만 가리려 애쓴 마음이 예뻤다. 그래서 연애를 하게 되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던 아이와 사랑이라 착각하며 연애를 하였고, 어리고 미숙한 나는 20살에 임산부가 되어있었다. 스무 살의 나는 그것이 기어코 배안에서 자연스레 죽기를 바랐다.
고등학생 때 찾아온 사춘기로 부모님과는 크고 작은 마찰들이 있었다. 부모님의 집이 너무 싫었고, 더 이상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기에 수능점수를 받아 들자마자 집을 떠나 숙식이 제공되는 빵공장으로 갔다.
동갑내기 남자친구의 소개로, 대학입학 전 아르바이트로 입사하게 된 빵공장은 컨베이너벨트가 돌아가는 악몽에 시달리게 만들 만큼 너무나 강렬했고, 그 때문에 적어도 세 달 이상 빵을 먹을 수가 없었다. 실업계에서 바로 취업한 아이들보다 늦게 입사한 나는, 한 파트에 자리잡지 못하고 매일 이 공정, 저 공정으로 팔려가는 처량한 신세였고,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홀대에 꽤나 주눅 들었었다. 공장 기숙사 생활의 어색함과 낯섦이 싫어, 퇴근 후 공장 근처에 자취를 하던 남자친구 집에 매일 머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생겼다.
나는 그것이 어떠한 상태인지 병원에 갈 만큼 용기 있는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부모님께도 말할 수 없었다. 사실 그것이 태어난 이후에도 꽤나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그것은 나와 남자아이만의 비밀이었다.
대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1학년이 되었다. 정말 그냥 그것이 죽기를 바랐다. 술도 감기약도 커피도 먹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자연스레 죽기를 바랐다. 한 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다. 마른 몸 때문에 티가 안 났지만 2학기까지 다닐 수는 없었다. 사실 2학기 학비를 낼 돈도 없었다. 스무 살 임산부는 어리고 무지했기에, 학자금대출이란 제도나, 각종 복지정책도 알지 못했다.
그해 10월 그것은 태어났고, 그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갔다. 예쁘고 건강한 남자아이였다. 흰자위 없이 검게 빛나던 까만 눈동자와, 빨갛게 달은듯한 조막만 한 얼굴. 꽤 예쁘고 사랑스러운 남자아이였다.
소녀와 소년은 그렇게 졸지에 엄마, 아빠가 되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사실 준비할 시간은 꽤 있었지만) 무방비하게, 무지하고 어린 부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