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들(2)

by 이랑

“오빠”.

그는 6년간 나의 연인이었고, 그 후에는 “오빠”로 내게 남았다.

B와 지내던 중, 나보다 3살 많던 오빠를 알게 되었고, 곧 그는 나의 연인이 되었다. 만난 지 채 며칠 지나지 않아 오빠는 아기를 보게 되었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오빠는 우리가 불쌍했다고 한다. 그냥 두면 다 죽을 것만 같아서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주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이다. 내가 가엾이 여겨지는 것을 못 참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알기에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1년간의 B와의 동거가 끝났다. B가 먼저 떠났고, 나는 학교로 복학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오빠는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와 아기가 기거할 월세방의 보증금 백만원을 친구에게 빌려 지원해 주었고, 승용차에 얼마 되지 않는 짐들을 우격다짐 다 넣어 옮겨주었다. 한 칸짜리 월세방을 구석구석 닦아주었고, 중고 냉장고를 구입해 넣어주었다. 오빠도 학생이었고 가난했다. 나는 오빠보다 더 가난했다. 정말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빌린 100만원을 갚을 수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제도는 가난한 나와 아기를 보호해 주었다. 막 복학을 며칠 앞두고, 수급자지정에 대한 조사로 구청직원 두 명이, 나와 아기가 사는 단칸방에 방문했다. 사지육신 멀쩡해 일을 전혀 하지 못할 상황은 아님에 한 직원이 갸우뚱거렸는데, 단발머리를 한 직원이 ”학교를 졸업을 해야 제대로 된 일을 하죠. “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이 고마웠다. 나를 동정하진 않으면서, 내 입장을 헤아려 준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나는 겨우 22살이었고 아기는 3살이었는데, 그 당시 지원된 60만 원가량 되는 돈은, 월세를 충당하고, 아기를 양육하고, 대학을 다니고, 식비를 충당할 수 있는 돈이었다. 어린이집 원비라든가, 공과금 등이 감면 또는 지원되는 혜택들이 있었기에 가난했지만, 부족하진 않았다. 내가 그러한 생활을 하는지, 학교 내 사람은 아무도 알지 못할 만큼 숨길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고, 아기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그 기간 동안 나를 지켜준 것이 나는 “국가의 제도”와 “오빠”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최소한의 지원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었고, “오빠”는 내가 필요한 모든 순간 내게 도움을 주었다. 나에게는 이동수단이 없었는데 그에게는 운전면허와 오토바이가 있어, 아기를 병원에 데려다주었고, 대형마트에서 식료품을 싸게 구매할 수 있었고, 아기를 데리고 유원지며 공원이며 다닐 수 있었고, 내가 학교행사 참여로 아이를 돌볼 수 없을 때 아기를 나 대신 돌봐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오빠를 “아빠”라고 불렀고, 그는 기꺼이 아빠행세를 해주었다.


아기를 처음 본 날, 오빠는 고작 24살이었다.


나는 꽤나 오랜 기간 24살이 의미하는 바를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24살이었을 때도, 30살이 되었을 때도, 오빠는 늘 나보다 어른이었기에 그가 내게 행했던 선의의 크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아기가 20살이 넘어서야 24살의 오빠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아이가 그 나이가 다돼 갈 무렵이나 돼서야, “소년”이었던 오빠가 보였다.

아이었던 내가 아기를 길렀다. 그것은 내 책임과 선택이었지만, 소년이었던 그는 아이었던 나와 아기를 “선의”로 지켜내 주었음을,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깨닫게 된 나는 참 무심한 모질이다.


내가 27살이 되던 해, 우리는 이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변심한건 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변심했다기보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5년 정도 지날 무렵부터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인으로서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결혼이라는 것은 매일 보고 싶은 사람과 해야 되는 것인데, 나는 오빠를 매일 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일주일에 한두 번이면 충분했다. 나는 오빠를 사랑한 적이 없다. 애초에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별하고 싶었고, 그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했으며, 천천히 이별했다. 흔히 이별은 다시 안 볼사이로 남는 것인데, 오빠와의 이별은 그런 이별이 아니었다.

오빠는 그저 내게 “오빠”가 되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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