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의 단상 (3)
직업엔 귀천이 없다. 모든 직업들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사회가 국민을 위해 온전히 굴러가는 데에 일조한다. 다만 직업의 진입장벽은 분명히 다 다르다. 물론 그 진입장벽이란 그 직업에 대한 소질이 될 수도, 진학을 위한 성적이 될 수도, 씁쓸하지만 가계의 여유가 될 수도 있다.
이 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인구 비중의 파이가 적은 직업과 많은 직업이 있다. 재밌는 건 파이가 많은 직업은 그 종류나 형태가 유연하게 바뀌는데, 적은 직업은 거의 정해져 있다.
인문계, 자연계, 이공계, 그외 수많은 분야의 '연구자'들, 그리고 예술인들.
왜냐면 그들은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무형의 서비스나 생산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직인으로써 사회의 원동력이 될 때는 그들이 만든 이론, 논문, 신기술, 예술품 등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이다. 그것들은 사회가 굴러가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며,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러나 진입장벽도 빡세고, 일상생활을 온전히 영위하며 직업을 계속하기도 빡세다. 어느 분야든 연구자나 예술가는, 창조적 영감이든 두뇌 회전력이든 그만한 잠재력이 있어야 하며, 잠재력을 끌어올릴 환경이 주어지는 운 역시 있어야 하고, 전문가의 경지에 도달할 노력 또한 수반해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직인이 되면, 그때부터는 진짜 고생길의 시작이다. 슬럼프 같은 거야 개인의 처리능력에 달린 거니 개인 소관이라 쳐도, 적어도 그것으로 의식주를 영위하고, 결혼해서 가정이 있다면 그것까지 책임질 정도의 경제력과 건강을 챙겨야 하고, 자신의 일을 존속하기 위해 이런저런 전공/비전공적인 대외 활동도 해야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파이가 적은 직업인만큼 '하고 싶은 소망'과 '할 수 있는 능력'이 막연한 것이 아닌 뚜렷한 것이어야 진입장벽을 통과하는 건 당연하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에게 가시밭길 내지 환쟁이로 인식되는 바람에 명맥을 이을 사람이 생겨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유학을 으뜸으로 삼던 선비들은 기술자들을 상놈이라고 무시했다. 사농공상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땅에서 나는 곡식을 키우는 농사꾼은 책 달달 읽는 선비 다음이고, 농사꾼보다 못한 건 대장장이 등의 공업 기술자들이었고, 가장 천한 취급을 받았던 건 '무언가 손으로 만들지도 않는 주제에 중간 이익으로 세상에 붙어 사는' 장사치들이었다.
그리고 팔구십년대 한국의 대학에서 문과의 꽃은 금융, 재무회계 등이 되었고, 첨단기술 붐이 일면서 과학기술부 산하의 카이스트, 포항제철이 칼텍 모방해서 만든 포항공대 등이 생겼다. 피고름 만지는 고된 일이라던 '의원'은 법조인과 더불어 구름 너머의 귀한 직업으로 취급받았다. 시간이 지나 00년대엔, 문과 학생들은 경제학/경영학을 복전해서 기업체 경영지원팀에 들어가는 게 가장 안정적인 루트...처럼 보이지만 영업직만 따도 다행인 세상이 되었다.
얼마나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냐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를 지 몰라도 결국은 '종사자 머릿수가 많고, TO도 많은' 직업이다. 문젠, 그게 그 직업을 선택할 만한 가치의 유무로까지 생각이 미친다는 것이다. 주로 기성세대들에게.
멋모르고 자식 보고 의사 판검사 되라는 부모는 굳이 이 자리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다루고픈 문제는 순수하게 학문 연구나 창조적인 예술활동을 하고 싶어하며 능력도 갖춘 싹을 "네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냐?" 며 제초제부터 뿌리는 부모와, 무엇보다도 부모가 그런 식으로 나오게 할 수밖에 없는, 그 세상의 소금 같은 직인들이 생활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체제다.
얼마 전 자살한 어느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분의 기사, 그외에 심심찮게 나오는 크리에이터들의 열악한 처지를 다룬 기사, 과로사한 수많은 대학원생들의 기사, 대학원생들에게 직권을 남용해 몹쓸 짓을 하는 교수들을 고발하는 숱한 기사, 자살하는 시간강사들을 다루는 숱한 기사, 중간 유통자와 음반기획사, 소속사가 이윤을 독식하고 대부분의 작곡가, 작사가, 보컬리스트, 그외 제작에 직접 참여한 수많은 종사자들이 받는 이윤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는 기사들. 스타덤에 오르지 못한 채 단역을 전전하는 연기자들, 혹은 자살하거나 병들어 죽은 연기자들의 기사들.
직접 그들과 이야기해보거나 관련 일을 해 보거나 업계에 몸을 담거나 하지 않아도 그들의 열악한 처우는 저 키워드로 검색한 기사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 그들이 원하는 건 뭘까? 어찌저찌 해서 쓴 논문이나 신기술, 작품 등이 잭팟이 터져서 돈방석에 앉는 거? 그래, 돈방석까진 상관없다. 돈 싫어하는 사람 드무니까. 그래서 가령 돈방석에 앉으면, 유유자적하며 호화 생활 누리며, 그걸로 끝? 정말 그들이 그럴까?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로 엄청난 재산과 명성을 손에 넣으면서도, 독자들과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왕성하게 소통해 왔다는 건 유명하다. 비단 조앤 롤링뿐만이 아니다. 소위 학자나 예술가들이 갖은 강연이나 SNS를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직인으로서 자신의 생산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기고픈, 소통하고 공유하고픈' 사람으로서 당연한 욕구이다.
진짜 직인이 돈방석에 앉으면 자기가 먹고 살 돈도 챙기겠지만 돈방석의 돈으로 후배들을 양성하는 기관에 기부하거나 자신의 작품의 질을 올리기 위한 투자를 하거나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투자할 것이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고치는 건 상당히 오래 걸릴 일이라고 해도 적어도 그들의 평균적인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할 사회 구조의 개선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컨텐츠의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 또한 세상을 움직이는 중요한 톱니바퀴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부잣집 애나 하는거다?
연구는 머리 좋은 애나 하는거다?
아니다. 학문이나 예술에 대한 기회는 모두에게 균등해야 한다.
나아가 예술이나 학문 연구를 업으로 삼는 건 집에 돈이 많거나 부모가 해당 분야의 권위자인 사람이 하는 게 맞는 게 아니고, 그 분야의 재능과 노력과 애정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2015.12.24
김 영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