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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oo Kim Oct 13. 2019

[번역] 세 악마 (1)

루터가 말하는 악마, 밀턴이 말하는 악마, 괴테가 말하는 악마

루터, 밀턴, 괴테. 한데 엮기엔 매우 이질적인 이름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세 위인을 각자 '악의 원칙' 을 제창한 대표자이며 또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악을 규정지은 사람으로서 연결짓는다면 흥미가 번뜩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 사람은 각자 악의 개념을 두고 가장 저주스러운 존재로, 사람의 일에 끊임없이 작용하는 자로, 악한 속성의 것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하는 자로 기록에 남겼다. 루터만큼 놀라울 정도로 인류 최악의 공적公敵으로서의 악의 존재에 대해 그 진심이 와닿는 사람도 없다. 특히 루터의 시대에는 그의 행보를 방해한 악을 그 스스로 가능하다면 "주의 은총으로부터 떼어내고 싶다' 고 여겼을 정도이다. 악에 대한 루터의 정확한 개념은 그의 삶과 저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밀턴이 말하는 사탄과 마지막으로 괴테가 말하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있다. 세 개념을 뒤섞거나 그때그때 서로 혼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 위대한 원칙을 같은 것으로 놓고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 특이성과 차이점을 연구 과제로 놓기엔 적절하지 않은 걸까? 실은 밀턴의 사탄과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는 애매한 안티테제로서 빈번하게 대조되어 왔다. 그리고 어느 저자도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를 기술하며 밀턴의 사탄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둘의 차이에 대한 논문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린 그러한 담론에 더 위대하고 수용성 높은 지론 - 즉 밀턴의 사탄과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에 대한 담론에 루터의 악마에 대한 지론을 거드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그다지 전제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목적은 세 악의 원칙의 매우 뚜렷한 윤곽을 찾아 비교하는 것이 전부이다. 경험에 기반한 하나와 시로 쓰인 둘을 두고 말이다.


위의 마지막 문장은 발제 단계부터 루터의 악의 원칙에 대한 개념과 밀턴과 괴테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구별된다는 것을 인지한 채 전개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저 셋은 모두 악을 창출하는 기능을 하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성서에 입각한 관점에서 그 근간을 두고 있다. 루터는 성서의 사소한 문장과 부호까지 굳게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악마에 대한 서술 역시 신봉했다. 그에 따라 자기 자신과 외부에서의 악의 경험을 악마에 대한 검증의 형태로서 쏟아부었다. 그가 그런 예비적인 구상이 없이 시작했다면 자신의 경험을 그 외의 방식 - 그렇게 효과적이지도, 루터답지도 않은 - 으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에 부딫혔을 것이다. 밀턴 역시 성서에서 실낙원의 사탄의 구상 요소들을 차용했다. 실낙원의 주인공은 성서의 타천사이다. 그리고 이 시의 가장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작중에서 순수한 신학적 서술로 빛나는 작가의 위대한 상상력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가 밀턴의 사탄이나 루터의 악마에 비해 성서의 정신이 발현되지 않았단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메피스토펠레스에서조차 똑같은 전승적 존재의 윤곽을 인식한다. 그렇기에 이 셋은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 악을 창출하는 저주스러운 실체의 존재에 대한 성서의 관점에 기초한 것이며 둘째, 많게든 적게든 그에 대한 성서의 근거를 차용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했듯 루터의 악마와 밀턴, 괴테의 악마는 각각 다른 범주에 속한다. 루터의 악마는 자전적, 전기적 현상이고 밀턴의 사탄,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는 문학적 발현이다. 루터는 개인의 경험을 예시로 성서의 악한 존재를 설명하였다. 그가 맞닥뜨린 방해가 무엇이든, 자신의 마음이나 외부 환경에서 찾은 성령의 은총의 장애물이 무엇이든, 복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똑똑히 본 무슨 일이든, 교단에서 부정하거나 서운한 영혼의 체험이 발생하는 어떤 사태이든, 자연에서 발생한 어떤 악질적인 기현상이든, 그는 그로부터 악마에 대한 더 선명한 이해를 얻었다. 이렇게 보면 루터는 자신의 전 생애를 악마의 형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는 데 바쳤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반면 밀턴의 사탄과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는 시적 창조물이다. 하나는 서사시이고 또 하나는 희곡이다. 밀턴은 성서에서 구상 요소들을 차용하며 타락한 대천사를 묘사하는 데 열을 올렸는데 , 그가 천지창조의 시대부터 존재했다고 가정하며, 여전히 전능자와 싸우고 있거나 거대한 복수를 획책하며 별들을 돌아다니고 있다든지 하는 역할을 심혈을 기울여 정했다. 괴테는 악령이 6천 년 동안 존재해 왔으며 더이상 이동력이나 우주에 대한 간섭력이 예전같지 않으나, 익히 알려진 그의 역할을 번잡한 도시와 개개인의 마음에 발휘한다는 묘사에 힘을 쏟았다.


그저 밀턴이 그의 서사시에 사탄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나 괴테가 그의 극에 메피스토펠레스를 등장인물로 했다는 사실이 둘의 신학적 견해에 대해 논할 여지를 준다는 것만으로, 우린 밀턴이나 괴테가 루터처럼 악마를 믿었다고 말할 권리는 없다. 물론 밀턴이 루터만큼 악마를 진지하게 믿었거나, 또한 괴테가 악마를 루터만큼 진지하게 믿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밀턴이 믿은 악마가 실낙원의 사탄으로 구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밀턴이 작품에서 추락을 노래한 저주스러운 거대한 존재를 확실히 믿은 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외에도 있다. 그리고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는 그가 인간 군상의 실제 삶과 경험에서 통찰한 정수를 표현했다는 점에선 밀턴보다도 루터의 악마와 유사하다. 그럼에도 또한 밀턴이 악령의 존재를 믿은 사실과 메피스토펠레스가 괴테의 어떤 깊은 통찰의 집합적인 표현이라는 사실이 루터의 악마와의 근본적인 구별을 무효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대기적 현실로 나타난 루터의 악마와 각각의 문학적 표현으로 나타난 밀턴의 사탄,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의 근본적인 구별 말이다. 만약 지금까지 전제한 분별의 은사 아래서 굳이 요약하는 위험을 감수한다면 아마 다음 문장이 진실에 근접할 것이다 - 루터는 성서에 쓰인 악령이란 존재의 활동에 대해 그 누구보다 강한 믿음을 가졌으며, 자신에게 발생한 모든 개개의 악의 사례를 악령의 활동으로 인식했다. 게다가 그는 이 악령과 자기 자신을 개인적인 적대자로 여기곤 했다. 그리고 마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중요한 관계로 설정하고 둘 사이에 뚜렷한 구분을 짓듯, 루터는 자신을 악마와는 분명하게 구분된 군상으로 형성하려 했다. 그리고 그 군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그의 저술을 보며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앞에서도 말했듯 밀턴은 성서의 등장인물을 서사시의 주인공으로 채택했고 그의 위대한 상상력을 통해 성서의 서사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우리는 또한 그가 분명히 악마의 존재를 믿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또한 밀턴이 문제의 악마가 엄청난 존재라고 가정했기에 그렇게 작중 캐릭터를 구상했다고 믿는 데 동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록 전체적으로 봤을 때, 밀턴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악마의 실재에 대한 일종의 지속적인 인지와 연관시킬 법한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괴테는, 다른 두 사람과 다른 문학적 효과와, 성서를 비롯한 고전 설화에서 등장하는 동일한 존재상을 적용하여 메피스토펠레스를 구상했다. 이 메피스토펠레스는 괴테에게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적나라한 비유적 존재인데, 그는 이 캐릭터를 근대 문명사회 속 악령으로 예시했다. 하지만 ‘괴테가 악을 생산하는 기능을 하는 초자연적 지성의 존재를 믿었는가’ 란 질문에 대답을 요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믿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주저 없이 ‘그런 초자연적 지성이 메피스토펠레스를 말할 리 없다’ 고 주장했을 것이다. 이 모든 단서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악에 대한 루터의 개념이 있고 밀턴, 루터의 개념이 또 하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선 밀턴의 사탄, 뒤이어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 루터의 악마 순으로 고찰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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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번역에 대한 권리는 David Masson과 University of Edinburgh, MACMILLAN AND CO.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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