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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oo Kim Jun 19. 2019

칸트에 나타나는 자기본위의 씨앗들

조지 산타야나 <독일 철학의 자기본위> 번역 - 2

칸트는 그의 개인의 신념과 공식적인 학문적 발견 사이의 가슴 아픈 분리로 철학자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주목받는다. 그의 개인적 신념은 온화하고 반쯤 전통을 고집하여 라이프니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는 지식에 대한 주관적 비판에 연루되어 있었다. 그는 인식의 과정이 매우 난해하고 절묘하게 인공적이라 지식을 구축하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따르면 보편적 진실이 버젓이 있어 그에 대한 빈틈없고 정확한 개념을 얻을 수 있는데, 공식적으로 그 개념을 사실이라 칭하거나 그것을 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칸트의 개인적 신념은 자신의 이러한 비판론을 인정할 수 없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의 비판론에는 자신이 결코 받아들인 적 없는 영향과 결과가 잠재되어 있었는데, 노년에야 이를 수용하게 되었다. 그 잠재적 영향 중 하나가 ‘자기본위’ 이다.


‘개개의 정신이 자신의 인식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은 주관주의와 불가지론의 주된 명제이다. 자신의 인식을 넘어 실재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존재’ 가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칸트는 ‘내가 인식할 수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그 독단적인 자기본위로 뭉친 놀라운 원칙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사람의 인식 – 그의 도덕적 가정을 추가한 – 이 저 너머 존재하는 힘과 정신의 진정한 세계의 상징이라 생각했다. 이 가정은 사람의 원초적인 백치를 원죄와 다를 바 없이 사람의 동물적 마음에 자리 잡은 체질적인 얼룩으로 낮추었고, 낭만적인 자부심과 자기만족을 완전히 발달하였고 늘 풍족한 초월성으로서 배제했다.


칸트의 불가지론의 이러한 회한적인 태도에 따라 그의 개인적 특징과 윤리가 부합하게 되었다. 샤프츠베리와 애덤 스미스의 표현에 따르면 지상과 천국의 개념을 무효화한 이후 그는 시들고 변변찮은 늙은 독신남, 늘 앉아 있는 촌스러운 문인, 타인을 반드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성실하고 정확하며 예의바른 도덕가, 전적으로 도의심을 실로 외경하던 평화주의자이며 인도주의자로서, 탁월한 진실에 전적으로 위안을 받았다. 비록 그 진실에 ‘그 표상에 주제넘은 자기본위주의자나 초인의 여지는 있지 않다’ 는 거짓말이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그밖에도 감성의 몇몇 심상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심리적 오류가 야기한 ‘정밀함’ 에 대한 그의 순수한 사랑과 지식에 대한 주저는 그를 주관주의의 막다른 곳까지 이끌었다. 이윽고 부자연스러운 진공에 천착된 그의 경직된 분별력이, 그 자신이 ‘정언 명령’ 이라 명명한 절대성에 다다랐다. 그러나 이 진공의 바깥, 이 권위적인 충고의 안에는 자기본위의 병균이, 가장 치명적인 종種의 병균이 있었다.


정언 명령, 혹은 놓칠 수 없는 양심의 목소리는 원래 외재적 – 너무나 외재적이어서 심지어 자기 자신을 도덕적 의무로서 구속할 수 있었다. 시내 산의 천둥과 욥기에 등장하는 회오리바람으로부터의 목소리는 자신들의 권위를 힘의 암시로부터 이끌어내었다.  압도적인 물리력으로써 말하며 눈앞의 우릴 미물이며 노리개로 만드는, 사람의 공의의 관념 혹은 가장 깊은 소망을 대변한 것과는 거리가 먼 목소리는 되려 그것들을 부수고 업신여기며 위협했다. 그 계율들 중 몇몇이 도덕적일 때, 나머지는 제식祭式적이거나 심지어는 야만적이었다.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도덕적 구속력은 모두 사람의 천연적인 분별력과 삶 속의 사랑에서 나왔다. 우리의 소망은 스스로에게 ‘주의 위협’을 강요했다. 예언자들과 성서는 사람의 양심으로 이 외재적인 성스러운 권위를 확인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자연과 역사의 확실한 진전 이래 원죄와 천벌에 대한 번지르르한 이론과 다른 세상의 실재를 요하는 동일화는 어떤 옳음에 대한 이상으로도 결코 상호 일치를 충족할 수 없었다.


이 문제에서 칼뱅의 지론을 따른 칸트의 경우 (마음에 내재하는 경우와 외재하는 경우 둘 다에서)자연의 진행 사이의 자주성과 옳음의 이상이 반대 방향으로 비대해졌다. 정언 명령은 항상 권위가 유효했겠지만 아마도 결코 지켜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신성한 법칙은 피히테, 헤겔, 쇼펜하우어의 경우처럼 보편적 형이상학의 명목으로서의 절대 의지나 심지어는 물질계의 흐름이 되는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대로 정언 명령의 숭고함은 질료와 삶이 그들의 강퍅한 방식 – 그들이 따라야 하며, 그들을 지배하고 운명짓고, 그를 위해 속박하는 원칙 – 에 따라 진행한다는 사실에 의존하였다. 인간성은 완전히 부패하고 최소한의 순기능조차 발휘할 수 없었으며, 스스로 올바르게 될 어떤 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자연 발생적인 동인動因일 뿐인 인간성의 우호적이고 자연스러운 미덕은 걸출한 부도덕이었다. 도덕의 가치는 오직, 개개의 의지가 분에 넘치는 축복의 손길에 따라 신성한 법칙에 대한 압도적인 외경을 향한 전적인 충동에 휩싸일 때부터만, 비로소 시작된다.


이 칼뱅주의적 방침은 모든 현실적인 성향을 비난하는 듯 보이고, 의지를 도덕에 있어 절대적으로 이끄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다. 자기본위가 그렇듯 (마땅히 소망되어야 할)이질적인 권위에 맞서는 모양새로 말이다. 물론 그것은 칸트의 표면상의 의도였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의 연출이 짐짓 고상했고, 그는 그 실재에 오히려 불만족했다. 황야에서 울부짖는 정언 명령은, 그 아무도 들을 필요가 없는 과제 혹은 경시하는 시선을 받는 과제는 오히려 버림받은 권위로 보였다. ‘절대적 옳음’의 외관을 보존하기 위해 정통 기독교가 그러하듯 또 다른 세계를 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당하게 지지되고 복종될 수 있는 세계 말이다.


형편 좋게 모든 현실의 인식을 부인하는 칸트의 회의주의는 이러한 종교적인 동기의 요구를 통해 좌지우지되었다. 만약 우리가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자연계 전체가 그저 우리 마음의 구상에 불과하면, 어떤 형태든 진정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세계가 우리 자신도 모르게 도처에 놓여 있다는 상황을 피할 방도가 없다. 가시적인 세계의 구축자인 인간성을 거부하며 다른 진정한 세계가 모퉁이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는, 정언 명령보다 그럴싸하고 시의적절한 게 어디 있었겠는가. 


이 고고히 선 행복한 사상은 약간 환상적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칸트가 학자연하며 밀어붙인 선험적 이상주의를 배후에 둔 채 사적으로 신봉한 라이프니츠의 체계를 재입증하기 위해 공들인 수단일 뿐이었다. 라이프니츠가 시작한 독단적인 체계는(성립한다고 가정할 때) 칸트가 보기에는 대부분 비판당하지 않을 여지가 없고 약간 압박감이 있었다. 그를 정제하고자 칸트는 불합리한 비판의 원칙을 차용했다. 즉 우리의 인식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라는 것. 그 원칙이 수행된다면 그 인식의 체계와 그 외의 모든 것들까지 기초가 위태로워질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재구성을 위한 교정적인 원칙을 차용했다. 말하자면 양심의 명령에 따라 어떤 정해진 것들을 현실 - 이성과 경험으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는 – 이라 가정하는, 참으로 불합리한 원칙 말이다. 그를 이를 통해 그의 본래 학설을, 조건을 충족하면서도 어딘가 애매한 형태로 회복하였다. 이 독단적인 주장의 취지는 ‘비록 하나님, 천국, 그리고 자유 의지가 존재한다고 염두할 이유는 없지만, 우리는 그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며 우리의 신념에서 비롯된 현명한 행위를 그들의 존재에서 비롯된 것이라 칭하게 된다.’ 였다.


그에 따라 칸트의 철학은 논점에 자극적인 모호함이 있다. 그는 자신이 비밀스럽게 믿은 정도보다 다소 덜 가르쳤고, 그의 제자들은 그의 비판론의 원칙은 파악했지만 스승의 보수적인 본능은 결여되어 있었기에 그가 교수한 정도보다는 다소 덜 신봉했다. 사실상 칸트 개인은 스스로가 (마치 모든 신봉자들이 지금까지 믿어온 것처럼)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고 자유 의지를 믿은 적이 없으며 초월적인 세계를 믿은 적이 없기를 바랐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독단은 단지 그것들의 비논리적인 실재를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평소의 논점이 얼마나 위력적으로 보였는지는 상관없이(그리고 그렇게 위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선험적인 확실성을 이끌어낼 수 없다. 반대로 이성과 경험에서 증거를 도출해낼수록 그것이 단지 개인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더 명백히 증명할 뿐이다. 말하자면 이는 거의 상식의 문제이다. 현실에서 소환될 권리가 있다면 ‘하나님’, ‘자유’, ‘불멸성’은 ‘지식’의 공간에서 증인 없이 잔존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경솔하게든 모순적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소환되는 개념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증거가 부족함을 모면하기 위해 하나님이 적어도 우리에게 사실과 합치하는 양심 – 당연한 듯 스스로 굳게 뿌리박은 채 우리를 속박하고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자명한 사실로 치부하는 - 을 심으셨다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칸트는 선善의 이상을 두고 현실과 이런 식으로 숨바꼭질을 했다. 


그러나 그의 선험적 방식의 여세는 아주 이질적이면서도 꽤 자기본위적인 결론으로 나아갔다. 선험주의의 신봉자들은 (아무리 그가 가정을 내렸던들) 하나님, 자유 의지, 천국이 조금이라도 실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에게 실재는 전적으로 하등한 영역이었다. 어떤 거창하고 고정된 격률을 지닌 특수한 도덕법도 그에게는 유치한 관념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한 자아가 가정하는 것은 수정된 것과 이미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그 견해를 나타내는 관념론적인 용어뿐이다. 자아가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으면 과거를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아가 계획을 세우고 있으면 미래를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아가 의식적으로 능변이면 청중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아가 가정하는 수용력 밖에서는 실재할 수도 없고 실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선험주의자들에게 정언 명령이 의미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필수적이라 할 모든 격률을 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며, 열심히 살고자 한다면 그러한 삶의 밀도를 유일한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게 전부이다. 칸트가 스스로 다다른 그 발전 단계에서 하나님, 자유, 그리고 불멸성은 실천적 이성의 필수적인 근본 원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따라 이러한 상상의 객체들이, 아직 자신의 양심이 그를 선험하지 않은 뛰어난 사상가와 유리된 채 실재한다고 가정하면, 그의 가르침은 득 될 게 없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는 단지 반복될 뿐이다. 이후 나오는 보다 심화된 선험주의자는 하나님, 자유, 불멸성 대신 그저 착실하게 (존재의 근본 원리인)질료, 제국, 그리고 전사의 죽음의 아름다움을 가정할지도 모른다. 그의 양심은 더 이상 기독교적 신조의 반향이 아니라 이교도의 나팔 소리일 수 있다. ‘가정해야 하는 것’을 판단하기 위해 가정하는 자아의 양태이다.


칸트가 지식에 기인한 주관성을 피하고자 했던 실천 이성의 근본 원리는 지식 못지않게 주관적이었으며 훨씬 더 사적이고 가변적이었다. 감각과 지성이 기만한다면 모두를 똑같은 방식으로 기만하는 듯 보이고, 마찬가지로 감각과 지성에 따라 몰입하게 되는 공상은 모두를 합일시키는 듯 보인다. 그러나 개개의 마음속의 이상이란 애매하면서도 다양하면서도 대립적이지 않은가! 칸트 철학을 자기본위에서 구하려는 의도였던 근본 원리야말로 가장 자기본위적인 대목이었다. 정언 명령에서 개인의 영혼에 본래 내재적으로 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의 감정 일부는 나지막이 ‘비가시적인 세계를 지배하기를’, ‘하나님을 보좌에 세워 인간 영혼에게 영원을 열어 주기를’ 주장한다. 자기본위는 ‘보편적 법칙이어야 하는 주관성의 감정’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언 명령은 스스로 비밀스럽게 전능함을 선언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가차 없이 그 양태를 드러낸다. 칸트는 선의지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이나 그 귀결로서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명백히 부인했다. 칸트 개인은 (천성이 도덕적이라 스스로 도덕적으로 여겨지길 부인하는)웨이크필드의 목사(*1)처럼 온후하고 친절했지만 원칙대로면 그의 도덕적 교리는 완벽한 광신주의의 온상이었다. 이제 다시 시간을 들여 의무라는 해골에 작은 살점을 되돌려놓으라. 현실과 동떨어진 모세의 십계명의 목소리가 아닌 풍요로운 기질과 어린 생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라. 그리하면 모든 고집스런 열정과 공상적인 죄에 앞서 축성祝聖을 받을 것이다. 성립할 권리도 없는 무오류의 양심의 가면 뒤에서 자기본위는 그 무책임한 이력을 등에 업고 발동할 뿐이다.


정언 명령은 칸트가 개인적으로 구상한 만큼 18세기의 양심을 답습했다. 18세기의 양심이란 곧 기독교다움을 지양하며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루소의 청교도적 양심을 말한다. 그러나 논리의 자아와도 같은 도덕에 따른 정언 명령은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오늘 지혜와 친절의 숙려熟慮에 맞서 개인적 양심에 복종한다고 해도(날 때부터 지혜와 친절을 타고났어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차 없는 의무에 대한 충절은 곧 자기희생이다), 내일은 영혼의 다른 국면에서 발동하는 정언 명령을 ‘옳음’으로서 복종할 것이다. 어떤 무책임한 진취적 정신이든, 그로 인한 희생자를 보고 가슴이 찢어지든 말이다.


어느 경우든 광신적인 원칙은 존재한다. 그리고 칸트는 초월적인 무신론 안에서 경험이나 상식으로부터의 모든 항의 또는 보다 계발된 자기이익을 차단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항의는 비열한 것뿐만이 아니라 현혹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상정하는 세계는 상상의 산물 - 내면의 인간에 의해 밝혀진 정언 명령이 모든 세계에 앞서 있는 원칙이기 때문에 – 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상상하고 있는 이 특정한 세계가 우리의 자유로운 마음에서 운행할 수 있다는 어떤 설득에도 시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로부터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독일의 자기본위주의자들은 그들의 가장 비극적인 오류가 된 확신을 끌어내게 되었다. 그들의 자기주장과 야심은 인류 고대로부터의 어리석음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천박한 열정을 우주의 창조적인 정신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표현에 다소 굴절이 있지만, 칸트 혹은 칸트 안의 혼은 새로운 독일 종교의 예언자였으며 심지어는 창시자였던 것이다.


George Santayana, <Egotism in German Philosophy> 中




*1. The Vicar of Wakefield(1766). 올리버 골드스미스(1728-1774)의 소설. 주인공인 프림로즈 목사 일가를 둘러싼 해프닝을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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