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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oo Kim Oct 13. 2019

[번역] 세 악마 (2)

루터가 말하는 악마, 밀턴이 말하는 악마, 괴테가 말하는 악마

 ‘실낙원’을 쓰며 밀턴이 극복해야 했던 난관은 헤아릴 수 없었다. 그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되는데, ‘작가가 악의 존재의 초자연적 능력을 구현하는 것과 이야기를 짓는 것을 동시에 해야 했다는’ 게 골자이다. 그는 등장인물인 천사들의 행위를 묘사해야 했고, 동시에 사건을 시간적으로 나열해야 했다. 밀턴에게 그 초인적 존재의 개념을 유지하기는 비교적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절대적 개체 혹은 현상으로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처럼 노래하며 우주를 날아다니거나 적대하는 군단으로써 서로 대치하는 존재로 말이다. 하지만 신의 대리자인 존재들로, 스스로 생각하고, 음모를 꾸미고, 실족하게 하여 개연적이고 연속적인 사건을 만들어내는 굉장히 어려웠다. 사건의 경과를 대상의 인식과 일치시키는 것, 그것이 난점이었다. 이것을 완벽하게 해내기란 문자 그대로 불가능했다. 사람의 마음으로 우주를 둘러싼 임의의 장면에 스물네 개체의 위대한 초자연적 존재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스물네 개체 사이에서 24시간 동안 무엇이 일어날지 상상하는 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주어진 시기에서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의 절대값과 역사의 분량은 사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결단력을 지닌 존재의 천부성과 용기에 좌우된다. 그래서 낮은 단계의 존재는 더 위의 일들을 정하는 존재에 관해 알 수 없는 것이다. 인과의 형태 또한 이미 숙지된 양상과는 다를 것이다. 


이것이 밀턴이 겪어야 했던 난관이다. 아니, 심지어는 그가 겪어보지 못한 난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서사를 구성해야 했다. 순수한 대상 혹은 현상으로서 묘사한 초인적 존재의 전체 윤곽을 구현하면서도, 일련의 사건 배열을 그들이 인간들 사이에서 행하는 일보다 그들끼리 더 숭고한 행동을 하도록 꾀하지 않았다. 우리 인간보다 무한히 강한 신의 대리자로서의 예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아마도 실낙원을 읽으며 어떤 부조화를 느꼈든, ‘필연성’을 염두에 두던 밀턴이 현상으로서 초인적 존재들을 기술한 것보다 더 초월적으로 묘사하여 인과를 정하지 않으려고 했단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밀턴은 필멸자로서 가능한 고귀하게 그의 상상의 고양高揚을 유지했다. 작품 전체에서 우리는 대상인 사탄에 대해 자신만의 고유한 구상을 그려내는 밀턴을 목격한다. ―


이렇게 사탄은 그의 옆에 있는 동료에게 말하며

머리를 파도 위로 올려 바라보니 눈은 불타올라

불꽃을 쏘네.. 한편 그의 몸뚱이는

홍수 위에 엎어져 길고 또 넓게 퍼져나가

둥둥 떠 누워 있으니(하략)


그리고 이것이 그 위대한 족적이다. 이 초인적 존재들을 작품 요소로서 구상을 잡으며 밀턴은 이 군체들을 필연적으로 특정 장소에 집합시켜야 함을 깨달았다. 따라서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등장하는 천사의 수를 제한했다. 이야기의 성립을 위해서다. 가령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천사를 집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치자. 대성당이나 되어야 천사들을 가득 채우기에 적합할 텐데, 작품의 작가나 독자, 즉 사람으로선 한참 열중하고 있는 대목의 배경을 굳이 ‘대성당의 이모저모’ 로 국한시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 


밀턴이 그의 작품 전체에서 유지하려던 천사의 개념은 단순한 객체도 현상도 아니다. 거기다가 대상인 천사들을 일관되게 물리적인 대행자로 묘사했다. 지고한 풍채와 용모는 상응하는 물리적 능력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밀턴의 경우, 그가 부여한 초인적 풍채와 용모를 지닌 천사들의 물리적 행위의 형태와 위력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와 수량을 탐색해야 했다. 이는 가뜩이나 난해한 작업을 더욱 복잡하게 했다. 인간이 단순히 직립한 거대한 존재의 외양을 묘사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답은 ‘충분히 있음직하다’. 예컨대 벽을 등진 데다 완전히 고장났다면 말이다. 그러나 거대한 존재가 위대한 동작을 이행하며 모종의 상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묘사하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밀턴은 그 난제를 극복했다. 천사의 ‘물리적 대행자’ 라는 개념은 단순 객체 이하로 전락하지 않았다. 가령 본작 6권에서 천사가 산을 뿌리째 헤집어 서로에게 내던지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들이 과연 세간에 익히 알려진 만큼 힘이 있다고 상정할 수 있다. 상기 문장의 연장으로, 우리는 밀턴이 우주를 무기한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힘을 천사들에게 부여함에 따라 그가 묘사하는 초인적 존재에 대한 그의 개념을 얼마나 능숙하게 활용했는지를 통찰해봄직 하다. 이 시점에서 독자들에게 스스로 검증할 수 있을 만한 통찰을 제공한다. 밀턴. 우리는 실낙원을 통해 그에게 설득되었으며, 막연하게나마 그의 마음을 느꼈다. 실낙원은 인간이란 존재와 그가 묘사한 천사의 존재 사이의 경계의 특이성, 곧 중력의 법칙이다. 우리 그리고 우리에게 인식된 것은 이 법칙의 대상이다. 그러나 천지 창조는 그에 따르지 않는 존재들로 번성할 수 있는데, 우리들에겐 이러한 존재(천사)들이 마치 따르지 않은 듯 여겨진다. 그러나 그 중 한 개체가 우리에게 인식 가능한 것이 될 때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결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자기 자신의 존재 양상을 재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래 천사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즉 그들은 자유롭게 임의의 방향으로 이동할 수단을 갖고 있었다. 반역을 일으켜 천국에서 추방당하여 처벌받았을 때 그들은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기술記述된 내용이 암시하는 한 그들이 중력을 받을 수 있는 행성도, 명확한 물질 요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추격의 업화에 따라 쫓겨났다. 그리고 몰락하고 나서 그들은 힘이 있었다. 위로 상승하고, 우주를 항해하고, 지옥을 그치게 하고, 반짝이는 행성으로 곧장 날아가, 그 둥근 표면을 비추고, 다시 이륙하여 다른 행성으로 날아갈 힘 말이다. 인간 존재와 천사의 존재 사이의 이 근본적인 차이의 귀결은 천사가 직접 수직 방향에서 동작을 취할 수 있는 반면 인간은 주로 수평적인 방향에서 동작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군대가 사각형이나 다른 평면상의 진을 칠 수 있을 때 천사의 군대는 입방체나 평행사변형의 진을 형성할 수 있다.


이렇게 천사들의 물리적 행위와 관련된 모든 것에서 설령 이 ‘천사의 존재 양상’ 이라는 개념을 실행하는 데도 밀턴은 철두철미하게 일관적이었다. 그러나 이 존재들의 연장성 전체의 우월성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하려고 했다간 이야기의 성립이 불가능해진다. 이 존재들의 개념을 단순한 목적으로서 혹은 단순한 물리적 대행자로서 격상시키기를 그가 하면 할수록, ‘이들 존재에 마땅히 있을 법한 역사를 실현’을 꾀한다는, 청교도인 작가 자신의 목을 옥죄는 일이 되어버린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의 서사처럼 육체적 우위의 개념이 조력자 역할을 하고 사건을 발생시키는 상황을 배제하였다. 그러나 동기, 추론, 그 존재들에 대한 오해, 사건의 연속을 위해 정해진 모든 것들이 실질적으로 인간적이어야 했다. 가령 서사 전체는, 그 초자연적 존재는 인간과 동등한 물리적 이점을 지닌 인간보다도 고도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며, 유사한 상황 하에 놓여 있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영적 존재를 보다 깊은 통찰력을 지닌 것으로 - 신의 전능처럼 강한 신념을 가질 수 있고, 그 평판상 그들에게 불가능한 건 없다고 여길 정도로 - 보장하는 한 밀턴의 모든 이야기는 불가능으로 점철되어 있다. 신의 전능에 대한 압도적인 신념은 의심스러운 동기로 그에게 대항하는 의견을 방지했을 것이다. 아니면 대항하고 나서라도 의심스러운 희망 때문에 다투는 것을 방지했을 것이다. 실낙원에서 악마가 신에 대해 가진 움직이는 개념은, 인간이 악한 기업을 성취하는 것을 실로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서사시가 쓰일 수 없었을 것이다. 타락한 천사들이 평판대로의 외견이나 육체적 위대함과 같은 수준의 초인적인 신의 개념을 갖고 있다고 상정해 보라. 그렇다 해도 실낙원의 사건은 일어났을지도 모르지만 의지의 연쇄는 똑같지 않았다. 인간 시인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언급들은 밀턴의 사탄을 착상하는 준비에 필요하다. 상기했듯 시를 정독하며 때때로 느끼는 것들-그들의 기업의 문제는 물리적으로 굉장히 초인적인 존재인 그들 종족에게는 너무나도 약하고 인간적이며, 시인의 개념의 일관성에 대한 경이로움이 전체적으로 순전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것은 임의의 서로 다른 개념들 사이에서도 유지되며, 시인은 주제 전체에서 그런 명확한 물질적 파악을 하고 있으며, 시종일관 그의 기술에는 신비적이거나 몽환적인 것이 거의 없다. 실낙원은 밀턴이 자신의 존재가 앞뒤로 이동하는 우주적 공간을 나타낸 도해도圖解圖로 처음에는 둘 혹은 셋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이후 네 개의 열대 내지 지역으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매우 명확해서 짧은 산문판조차 사탄의 역사-사탄 자신의 타락과 인간의 타락 사이의-라 할 수 있다. 


시인으로서의 밀턴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호메로스의 방식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천재성의 전력을 대상에 쏟아 부어, 설득력이나 창조성을 띠게 하거나 그 자신과 수반되는 사항들에 심도 있는 언급을 하는 대신, 숭고하면서도 당당하게 서사를 이끈다. 그러나 서사시와 극의 차이가 후자가 설득력 있고 반영적이며 전자가 그렇지 않다는 데 기인한다고 좀처럼 단언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법 이후 쓰인 서사시를 떠올려 보자. 즉 서사를 엄격히 유지하며 그 정신에 대해 심도 있게 설명해야 한다. 확실히 밀턴은 호메로스의 방식을 계승했으며 대체로 텍스트를 밝은 명제로 흩뿌리는 데 힘을 쏟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 결과 중 하나로 밀턴의 사탄의 관념을 얻는 방법은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특정한 말들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역사를 탐색하는 것이다.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는 반면 그가 발하는 특징적인 명제로 자기 자신을 밝힌다. 사탄은 그의 진보를 좇음으로써 연구되는 반면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의 발언에 수반하여 연구된다.


밀턴의 사탄의 역사에서 중요한 대목은 그가 대천사가 되고 나서 시작하는 때이다. 밀턴에 따르면 우리들의 세계가 창조되기 전에 우리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장대한 종족이 존재했다. 그들은 ‘영’ 이었다. 그들은 행성의 존재를 인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묘한 형태로 공간에 거주했으며 그것은 우리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혹은 그들은 심지어 모든 공간에 거주한 게 아니라, 천국이라 불리는 보다 상부의 빛 비춤을 받는 무한의 영역에 있었다. 밀턴이 말하는 천국은 지역성으로 고려되지 않는, 모든 측면에서 무한히 펼쳐진 공간으로서, 다시 말해 대륙과 왕국의 광대함의 기준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천국 아래의 무한한 어둠과 울부짖음과 소란스러움은 혼돈 내지 밤이다. 천국에 흩어져 살던 영의 정확한 존재 양식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광범위한 인구 분포를 이루던 다수의 영과 창조주의 관계는 인간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보다도 가까웠고, 혹은 적어도 보다 현명하고 즉시적인 관계가 존재했다. 이 관계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은 물리적 근접함의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가 자신의 생을 추구했고 그들의 소망과 성품에 기꺼웠으나 그들 모두 자기 자신을 전능자에게 사역하는 영으로 인식했다. 때때로 그들은 천국의 모든 말단에서 각각 다른 직분을 지닌 채 신성한 존재의 가까이에 결집할 수 있도록 소환되었다. 이 천사들 사이에는 경륜을 비롯한 차이가 있었다. 몇몇은 본질과 관행에 따라 다른 천사들보다 장대하고 숭고한 지성을 지녔다. 다른 천사들은 자신의 긴 존재의 도정에서 열의와 근면함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따라서 실제로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존을 갖고 사는 종족이지만 위계를 구성하고 천사라 불리는 것이다.


<참고 문헌>


Paradise Lost / Paradise Regained (John Milton 著 / 유영 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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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번역에 대한 권리는 David Masson과 University of Edinburgh, MACMILLAN AND CO.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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