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편집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랐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과거 이야기를 꺼내면 전혀 그런 아픔이 없었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곤 한다. 사실 내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봐도, 내 또래 중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온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트라우마로 남을 법한 여러 일조차 내 삶에 큰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하도록 이끌었을까?
깊이 생각하고 정리한 끝에, 이번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꾼 생각들’ 오늘의 주제는 바로 ‘기억의 편집’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른다. 단지 오늘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각자의 죽음 앞으로 하루 더 다가갔다는 사실만 인지할 뿐이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무에서 창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조합하여 조금 다른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길을 걷다가 만날 수도 있는 빌런을 미리 제거할 수 없듯이, 부모나 자녀를 선택할 수도 없다. 이처럼 수많은 것들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인생이 마치 빠져나갈 수 없는 영화관에 갇힌 상태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무조건 봐야만 하는 상황과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재미있는 영화, 지루한 영화,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 공포영화, 따뜻한 영화, 슬픈 영화, 복수하는 영화 등등이 무작위로 재생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당장 1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먼저, 나의 주변 환경을 모두 내 마음대로 만들려는 창조주적 삶을 빨리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주어지는 복잡한 사건들을 편집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편집자의 삶을 지향해야 한다. 좋은 기억들은 크게 확장하여 한가운데 두고, 좋지 않은 경험들은 작게 축소하여 구석으로 몰아두는 방식이다.
다소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의 뇌는 이미 이런 과정을 밟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의 뇌는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꿈을 꿀 때 대부분의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뇌의 필터링 기능 때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감정적으로 혼란스럽거나 불편했던 경험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뇌가 의도적으로 기억에서 배제하는 자기 방어 메커니즘을 가동한다는 것이다.
믿음과 생각을 통해 뇌를 어느 정도 ‘속일 수 있다’는 주장은 다양한 심리학 및 신경과학 연구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는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부정적인 면을 축소하여 인지적·정서적 반응을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어떤 이는 부정적인 생각을 더욱 확대하여 고통을 키우고, 또 다른 이는 행복했던 순간들을 부각하여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 우리는 이처럼 인생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편집자로 살아가야 한다.
심박수가 빨라지면 불안을 느낄까, 아니면 불안해질 때 심박수가 빨라질까? ‘이중 과정 이론’(dual-process theory)이나 ‘두 요소 이론’(two-factor theory) 등 여러 심리학적 모델에서는, 심장이 빨리 뛰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불안을 느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즉, 우리가 심장이 뛰는 것을 ‘위협’으로 보면 불안에 빠지고, ‘운동 후 자연스러운 생리 반응’이라고 해석하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해석에 따라 감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 경기를 관전하던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종목인 만큼, 당연히 금메달을 기대하면서 지켜보았다. 금메달에 가까워질수록 내 심박수는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서 극도의 긴장감을 느낄 법한 선수들은 나와 반대로 매우 낮은 심박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선수들이야말로 진정 훌륭한 편집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경기 중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실수를 극복해야 했겠는가. 트라우마가 없을 리도 없고, 징크스가 없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끊임없이 통제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극도의 긴장 상황에서도 심박수조차 크게 변하지 않도록 다스리고 있었다.
이 과정을 두고 나는 그들을 ‘뇌 속이기 전문가’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결국 이전보다 더 나은 삶, 그리고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먼저 훌륭한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창조주가 아니므로, 인생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기억과 경험을 편집하여 재구성할 힘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기억이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주어지는 어려움이나 고통스러운 순간 속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기억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영화 속에서 편집의 주도권을 쥐는 순간, 비록 창조주는 아니지만 창조주에게 허락받은 멋진 편집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편집은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의 해석에서 출발한다. 주어진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편집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우리의 행복을 좌우한다.
이제 나는 어떤 편집자가 될 것인가? 이 질문을 품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연예인이 “인생은 기분관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참 인상적이었다. 그렇다. 결국 기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더 나아가 기분관리는 곧 ‘기억을 편집하는 일’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오늘도 ‘긍정적인 기억 편집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저는 누구를 가르칠 만한 위인이 아닙니다. 여기에 기록되는 모든 생각들은 남이 아닌 저를 가르치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과 직접 경험했던 변화에 대한 나눔입니다.
https://brunch.co.kr/@eratoss/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