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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라 Nov 24. 2020

20200101

베트남에서 맞이한 새해.

 얼마 전 명동을 다녀왔다. 동네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연말 분위기를 한껏 느끼고 왔다. 코로나 때문에 연말 분위기도 못 느끼나 했는데, 덕분에 짧지만 연말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올해는 참 빨리 지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 뉴스에 집중했던 시기고, 그렇게 여러 번의 고비를 지나니 벌써 해의 마지막 달을 앞두고 있다. 특히나 나에게 올해는 많이 무료했다. 1년 만에 학교를 갈 생각에 신이 났지만, 그 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었고, 인생의 마지막 졸업식도 취소되었다. 교문 한 번을 보지 못하고, 졸업생 신세가 되었다. 여름쯤 여행 가려던 계획은 당연히 무산되었고, 자주 가던 여행을 못 가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여행과 관련되어 할 수 있는 거라곤 추억을 회상하는 것 뿐이라 무기력하기도 했다. 언젠가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점점 흐려져서 그런지, 다녀온 여행마저도 꿈같았다. 그럼에도 추억할 여행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남은 날들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동남아 일주를 계획했다. 계획이라기보다는 그냥 희망사항 정도. 그러다가 기말고사 기간에 종강과 동시에 떠날 수 있게 티켓을 예매했고, 연말과 연초를 베트남에서 맞이했다.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해외에서 보내는 연말이었다. 중국에서는 친구들과 함께했다면, 이번엔 1월 1일에 맞춰 엄마도 합류해 가족끼리 보낼 수 있었다. 2020년의 첫날부터 액땜을 한 스토리를 풀어보려 한다.

 

1. 도착하자마자 피곤한 엄마는 대충 저녁을 때우고 쉬자고 했다. 베트남은 배달이 아주 편리한 나라! 바로 배달시켰다. 쌀국수를.

2. 결제 중에 오류가 나서 다시 결제했다.

3. 전화가 왔다. 음식을 받으러 내려오란다.

4. 음식을 받았다. 쌀국수가 육수 따로 면 따로 비닐봉지에 담겨있다. 알고 보니 일회용품을 받지 않겠다고 표시해서 비닐에 넣어서 온 것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호텔. 쌀국수를 담을 만한 그릇은 없었다. 어떻게 먹지 고민하던 찰나에

5. 또 전화가 왔다. 음식을 받으러 오란다.

6. 물음표를 100개쯤 띄운 채 내려가니 결제 중 오류가 난 것이 알아서 재결제 된 것이었다. 졸지에 쌀국수 6인분을 받았다. 괜찮다. 쌀국수는 조금 많이 먹어도 되니까. 문제는 먹을 그릇은 없었다.

7. 엄마와 초를 분다고 사 둔 케이크 통이 플라스틱이었다. 여기에 담아서 먹자는 의견이 나왔고, 순조로웠다.

8. 그런데 국물을 먹어보겠다고 그 통을 드는 순간 통 밑 부분이 부서지면서 밑으로 국물과 국수가 나왔다. 상상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테이블 위에 쌀국수 육수에 젖은 케이크, 날아다니는 면, 망가진 통이 널브러진 모습. 물론 찍어두긴 했지만, 개인 소장해야 할 것 같다.


나트랑에서 맞이한 새해 /  배달 음식이 온 방식....

 이 상황에서 웃음이 계속 터졌다. 지금 우리가 베트남인 것도, 음식이 2번 온 것도, 케이크가 난장판이 된 것도 너무 웃기기만 했다. 아마 한국이었으면 누군가는 굉장히 짜증 냈겠지만, 장소가 주는 특별함 덕에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결국 어떻게 먹었냐고? 그릇을 빌려서 편하게 먹었다. 처음부터 이럴 것을... 액땜을 거하게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짜증 나는 일이 몇 번씩이나 일어난 건데, 어떻게 웃고 넘겼을까. 과연 곧 맞이할 1월 1일엔 또 어떤 일이 있을지 궁금하다. 부디 딱 이 정도의 액땜만 하기를. 그리고 더 한 일을 겪더라도 이번에도 웃으며 넘어가길. 좋은 징조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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