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아쉬운 순간이 분명 온다. 나에게 그런 순간은 대부분 마음에 드는 도시를 떠날 때였다. 기대 없이 간 도시에 정을 줬는데, 짧게 잡은 일정 때문에 쫓기듯 떠날 때는 아쉬움이 크다. 그 도시의 진가를 너무 늦게 안 것 같아 미안하지만, 다시 올 날을 기약하며 떠났다. 가벼운 아쉬움들도 있지만, 길지 않은 내 여행들 중에 가장 아쉬운 건 세계여행 도중 한국에 들어오기로 한 결정이다. 애초에 귀국 날짜를 정해놓고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티켓도 없었고, 여유롭게 1년 휴학을 했었다. 그런데 8월 초 부모님과 프라하에서 휴가를 보내고, 우리는 오스트리아로 이동했을 때 문제가 생겼다. 태어나서 한 번도 생기지 않았던 피부병이 생겼다. 사실 아직까지도 원인이나 병명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처음엔 팔과 다리에 모기에 뜯긴 것처럼 빨갛고, 간지럽길래 찬물로 가라앉히고, 로션을 발라줬다. 며칠 조금 잠잠해지나 했는데, 간지러움 때문에 잠을 설칠 정도로 심해졌다. 근처 약국에 가서 물어봤지만, 스테로이드 연고 처방은 병원을 다녀와야 한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다. 조금 나아지다 심해졌다를 반복하기만 하고, 아예 호전되지는 않아서 결국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약간의 여행권태기를 겪는 중이었고, 혹시 상처들이 흉으로 변할까 봐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바로 샀다. 웃긴 건 티켓을 사고, 한국 갈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는 거. 그리고 3일 후에 비행기를 탔는데, 그 사이에 피부가 많이 나아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냥 한국에 간다는 사실 만으로 몸이 나은 것 같았다. 한국에 오자마자 간 피부과에서 연고와 약을 먹자마자 괜찮아졌다. 약간은 허무한 결말이다.
물론 티켓을 살 당시 잠도 설치고, 간지러우니까 얼른 병원에 가고 싶었다. 현지에서 가볼까도 했는데, 때마침 한국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아주 나쁜 결정은 아니었지만, 조금 여행을 스탑 하고 쉬었다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아직까지 든다. 사실 비행기에서도 치료하고 괜찮아지면 바로 다시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에 머물다 보니 매일 숙박을 고민해야 하는 여행이 힘들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일상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것도 잠시 또 여행을 떠나긴 했지만. 재충전해서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만약 그때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가고 싶었던 코카커스 3국과 터키를 보고 왔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더더욱 지금 같은 상황이 올 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현지에서 방법을 더 찾았을 것이다. 약간은, 아니 꽤나 많이 아쉬웠던 결정이다.